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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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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16. 2020

잠이 보약이다

밥이 보약 아니야?, 20191209





방구석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듯 오랜만의 낮잠으로 피로를 쫓았다. 

잠들 마음은 아니었다. 찰떡이를 그에게 맡기고 그저 침대에 잠시 등을 대어 짧은 휴식을 가지려던 게 두 시간의 단잠으로 이어져 버렸다. 아기를 낳고 나서, 아니 임신하고서부터 이런 오랜 낮잠은 처음이다. 



두 시간의 공백 후 무슨 일 있었냐는 얼굴로 태연히 거실로 나와 찹쌀떡 군을 보았다. 3년 전 산 짙은 밤색 소파 위, 찹쌀떡 군은 가로누워있고 그의 배 위에 찰떡이가 주먹을 꼭 쥔 채 엎어져 잔다. 늘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얼마나 잘 자는지 아가는 밥시간도 잊고 새근 잔다. 3시간 반의 수유 텀을 지나 다섯 시간 반 동안 공복 상태로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나른한 부녀의 모습을 어딘가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아가의 밤색 배냇머리칼을 보드랍게 쓸어내린다. 



우린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함께 낮잠을 잤구나.

꿈속에서 널 찾았다면 만났으려나.  



머리에 닿은 손을 떼려는데 킁캉 킁캉, 도리도리, 고갯짓을 하며 깬다. 

안 그래도 달덩이같이 말간 얼굴이 퉁퉁 부었다. 하얀 달덩이가 귀여워 쿡쿡거리고 웃자니 찹쌀떡 군 역시 나와 아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웃는다.


"둘이 부은 얼굴이 똑같군."


귀가 똑같네, 발이 똑같네는 들어봤어도 부은 얼굴이 똑같다는 얘기는 처음이다. 

신선하다. 그런데 부은 얼굴은 다 어딘가 비슷비슷하지 않나. 게다가 아가를 안고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얼굴도 퉁퉁 부어 있어 나란히 선 두 얼굴의 다른 점이라곤 성별과 크기뿐이다. 



정말이지 퉁퉁 부은 얼굴의 찰떡이는 사랑스럽다. 동그란 볼은 더 탐스럽게 통통하고 잘 잔 덕에 발그레한 선홍빛을 띤다. 좋은 꿈(먹는 꿈)을 꿨는지 생글생글 잘 웃기까지 한다. 나 역시 오랜만에 꿀 같은 잠을 자서인지 몸이 가뿐하다. 입술 아래 난 수포는 더 번졌고 저린 팔도 그대로지만 배 한가운데 깊숙한 곳을 누가 따듯한 손길로 문질 문질 한 것처럼 온기가 차오른다. 

내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보던 찹쌀떡 군은 말한다. 



"잘 잤나 보군. 역시 잠이 보약이야."

"밥이 보약 아니야? 밥인지 알았더니."

"아니야. 잠이야."



이상한 데서 단호하다. 

그러고 보면 늘 '밥 vs 잠'의 선택에서 잠을 택하던 나다. 먹는 건 그 어떤 간편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어도 잠은 그럴 수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잠이 특히나 많던 나를 어떤 이는 '고양이'나 '신생아'라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자고 머리 아프지 않니?'라는 질문도 자주 들었지만 천만에. 잠은 언제나 달콤하다. 연애나 초콜릿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잠을 올해 들어 제대로 든 적이 없다. 두 시간 단잠을 자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임신했을 땐, 예민해진 데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오래 자지 못했고 아기 낳고 잘 자기란 미션 임파서블과도 같다. 오늘은 찹쌀떡 군 덕에 진한 보약 한 사발을 쭈욱 들이킨 셈이다. 하지만 매일이 오늘 같진 않을 테니 잠깐씩 짬이 날 때마다 잠을 꼭 끌어안아야겠구나 싶다. 찰떡이가 낮잠 잘 때가 기회다. 스탬프 적립하듯 조금씩, 밀물이 들 듯 은근하게 보약을 삼키는 거다.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낮잠을 자는 하루의 시간 한 토막은 엄마에게 남은 하루를 살(육아를 할) 든든한 힘이다.



이제 다시 까만 밤이다. 

아가는 먼저 단잠에 빠졌다. 

찰떡아, 아빠랑 엄마 금방 갈 테니 먼저 꿈나라에서 놀고 있어. 벌써 보고 싶(지만 부디 그 꿈나라에서 한 번도 깨지 말고 내일 늦은 아침까지 푹 잘 자길 바란)다.


오늘도 사랑한다, 달덩이 우리 딸. 


-달덩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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