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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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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13. 2020

가끔 혹은 자주

당신은?, 20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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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자괴감 리스트


자격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닥까지 지쳐 더 이상 손가락 꼼지락 하기조차 싫다.

손가락 끝에서 내장 안까지 곱은 느낌이다.

아기를 안느라 살찌고 굽은 어깨와 등이 초라하다.

뜨거운 물에 푸욱 몸을 담그고 느긋하게 씻고 싶은 소망을 달에게 빌고 삼사일에야 한번 샤워한다.

세수 한 번 하지 않는 날이 많다.

거울 본지가 오래됐다.

집 밖을 나갈 때 화장한 지가 오백 년 같다.

잠옷을 벗을 일이 없다.

아기가 오랫동안 악을 쓰며 울 때 망연자실 멍한 적이 있다.

될 대로되라는 마음으로 산다.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고 싶다.

나도 한때 꾸미기 좋아하고 예쁨 받는 여자였음을 기억한다.

그 생각으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아기가 자라느라 늘어났던 배(를 비롯한 전신)를 보며 ‘살찐 아줌마’가 되었음을 인정한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고 푹 잔 날은 두세 밤 정도다.

아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기도 힘들다.

진수성찬은커녕 밥 한번 차려먹기조차 어렵다.

‘애기 엄마가~’라는 말이 싫다.

다시 태어나면 큰 바위로 태어나고 싶었으나 돌은 수명이 너무 길어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

아기가 이제야 세 달이라는 사실에 아득하다.

가끔 이유 없이 그냥 화가 나고 다 싫다(그 '다'에 나 또한 포함된다).

가지 않은 혼자의 삶을 상상해 본다.

하루에 수십 번 참을 인忍을 새기기도 한다.

설레는 경험을 할 일이 줄었다.  

아기를 곁에 두고 책을 읽으려 펼쳤다가 두 세줄 읽지도 못한 채 바로 덮는다.

제왕 수술한 곳이 아직 아프다.



공감하는 엄마들이 있을까, 궁금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육아는 어떨까.

멀리서 보면 달달하고 폭신한 솜사탕이겠지만 그 솜사탕을 이루는 가느다란 설탕실은 사실 엄마와 아빠의 땀과 노력을 갈고 이어 붙여 만든 건 아닐까.


아기를 임신하고 낳는 과정도 힘들지만 기르는 건 평생의 장기전이라 더 크고 지속되는 힘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시간을 살아내는 이 세상 모든 부모들,

특히 엄마들, 존경합니다.


절레절레, 오늘 난 글렀어요.

할 거 다 미뤄두고 그냥 잘래요.

쌓인 젖병도 어질러진 거실도 펼쳐놓은 빨랫감도 뒤로 하고 새근새근 잠자는 아가 옆에서 그냥 잘래요.

꿈에서 하죠, 까짓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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