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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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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16. 2020

찰칵, 차알칵

어린 시절 사진이 한 장뿐인 엄마라, 20191210




아기의 왼뺨, 오른뺨을 요리조리 찍어본다. 

남들 눈에 다 비슷한 사진이라도 엄마 마음은 다른 이유다. 별자리처럼 많은 아가의 모습을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게 머릿속 서랍과 핸드폰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그것도 모자라 매일 일기를 쓰며 그날의 사진을 한두 장씩 붙여 저장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가의 일상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써 내려간다. 

그리고 가끔 지난 일기를 뒤적이다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찰떡이의 모습에 왠지 서운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나에겐 어렸을 적 사진이 없다. 

내 나이 여덟, 동생 나이 여섯 때 엄만 집을 나갔다. 

못난 아빠 때문이다. 엄마보다 20살이나 많았던 남자, 공부시켜준다는 핑계로 꼬셔놓고 전처가 낳은 딸까지 키우게 한 남자, 이 딸이고 저 딸이고 손을 댄 남자, 술만 마시면 손을 들고 집안 살림 모두 들던 남자, 그런 술을 매일 마셨던 남자. 



그런 남자를 견딜 수 없어 집 나간 엄마는 아빠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우리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날은 수프 딸린 고급 돈가스를 먹는 날이었다. 말간 국을 닮은 크림수프가 나오고 양배추 샐러드가 곁들여진 경양식 돈가스. 포크에 나이프를 들고 아마도 히죽 웃으며 입으로 욱여넣었을 갈색 소스가 촉촉이 배인 고오급 돈가스. 

여하튼, 엄마는 집을 나가 가끔씩 우리에게 돈가스를 사줬고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외할머니 댁에 우릴 맡겼다. 외할머니에게 맡기면 엄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선지, 버리기 편한 곳을 찾았던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순식간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마당에 사진 따위가 제대로 피사체에게 붙어있을 리 없다. 앞산 공원 길목 옆 기린 위에 앉아 찍은 사진, 예쁜 돌 찾겠다고 물속에 들어가 찍은 사진, 몇 장의 사진은 씹다 만 껌처럼 기억 아래에 붙어있지만 단물이 다 빠져선지 확실하지 않다. 아, 또 기억나는 사진이 있다. 내 독사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의 우리'가 살던 2층 주택에 딸린 계단 옆, 빨간색이 들어간 누빔 원피스를 입고 서있는 모습이다. 뺨은 촌 아이처럼 빨갰고 콧물도 흘렀던 거 같다. 

하지만 역시 모르겠다. 그 원피스를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누군가의 네다섯 살 무렵 사진과 겹친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현실의 내게 남은 유일한 어린 시절 사진은 돌사진 한 장이다. 이건 또 어떻게 남아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진만은 수십 년 동안 수십 번의 이사를 따라다니며 잘도 붙어있다. 희한한 것은 동생의 어렸을 때 사진은 백일 사진뿐이라는 거다. 

나는 돌 사진, 동생은 백일 사진. 

집을 나가며 엄마가 챙겨갔던 유일한 사진인 걸까. 사진을 추억으로 간직하기에 우린 너무나 어렸다. 전국적인 이사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는 그녀가 아니면 설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조만간 한번 엄마에게 슬쩍 물어봐야겠다. 무뚝뚝한 데다 유난히 과거일을 쉬이 잊어버리는 그녀는 어떤 대답을 할까. 언젠가 한번 내 돌사진을 보며 '그땐 여자아이가 남자 한복을 입고 찍는 게 유행이었다'고 지나듯 말한 적이 있으니 어쩌면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어떤 경유인지는 모르나 내 어릴 적 유일한 사진은 남장한 사진 한 장뿐이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아가의 사진을 할 수 있는 만큼 찍어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사진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은 마음. 



"네 뒤로 강이 보이지? 네가 태어나고 이 근처에서 엄만 몸조리를 했어. 해지는 하늘이 엄청나게 이쁜 곳이었지."

"아빠가 항상 널 이렇게 안아서 재우곤 했단다. 엄만 네 숨이 답답하진 않을까, 싶었는데 아주 잘 자더라, 우리 아윤이는." 

"네가 아기일 때 고양이들이 이렇게 네 냄새를 맡기도 했었어."



사진에 담긴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면 찰떡이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상상도 못 한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또 자기의 기억 조각을 살며시 보탤지도 모른다. 그 조각에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펼쳐져 있다한들 관계없다. 우리의 이야기가 유니콘 꼬리를 물고 풍선을 타고 하늘로 날아간다한들 괜찮다. 오히려 더 반길 일이다. 내가 두려운 건 아무것도 기억해 낼 수 없는 깜깜한 밤 같은 어제다. 



기억과 상상의 콜라주를 위해 오늘의 아기를 기록한다. 아니, 내일의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지금의 사랑스러운 아기의 모습을 언제고 꺼내 품에 안을 수 있도록 오늘을 평면의 세상에 저장한다. 시간을 멈춰 흐르는 시간에 담는다. 그렇게 어린 시절 사진이 한 장뿐인 엄만 하루에도 수십 장의 아기 사진을 찍고 있다.

웃으면 웃는 대로

울면 우는 대로

우리 아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찰칵, 차알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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