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이켜보니 1부지에서 여사원들과 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수 선배는 처음엔 거리를 뒀었지만 지내다 보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내가 쌍욕을 듣고 멱살이 잡혀서 피가 났을 때 같이 있었다. 그런 걸 지켜보며 내가 안쓰럽다여긴 것인지 어느 순간 잘 대해주었다. 감자도 택배로 사서 나눠주고 했았다.
나는 공장생활 동안 가족과 멀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월급은 엄마가 관리를 했었는데 내가 회식 때 술 마시고 얼굴을 다쳤을 때 엄마는 내게 소고기 육회를 만들어 주었었다. 나는 살이 찢어지면 육회를 먹어야 하는 가보다 했었다.
근데 그 같은 방 썼던 여자선배는 방을 얻어 나가기 전에 내게 돈백만원을 좀 빌려달라고 했었다. 나는 내가 돈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어렵다고 말했다. 그전부터 조금씩 안 맞았던 거 같은데 아마 돈을 빌려주지 않은 이유로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 여자 선배는 고과평가 이후로 원래 타고 다니던 코란도가 아니라 아반떼 신형으로 차를 교체했었다. 나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이 없어 내게 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차를 바꿨으니까.
간호 실습 때는 응급실에서 병동, 병동에서 외래진료로 옮겼었다. 마지막 실습지였던 호흡기 순환기 내과는 간호조무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호조무사 특성상 몇 년씩 공부하는 게 아니라서 나이대가 다 어렸는데 같은 간호조무사를 하지만 친하게 지내진 않았다. 순환기내과는 심장을 보는 곳이었는데 여자방사선사들이 일을 했었다. 심장을 보기 위해 상의를 탈의하고 검사를 했었다. 헌데 심장리듬이나 파동을 검사해놓고 남자 의사가 와서 얘기를 하는데 여자환자들한테 옷을 입으라거나 상의를 덮으라는 얘기를 전혀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환자들이 인기척을 듣고 당황하며 얼른 상의를 가렸었다.
그리고 간호조무사 실습 당시 혈당 잴 때 찌르는 침에 긁힌 적이 있다. 두명이서 좁은 상에서 환자들의 혈당을 쟀는데 다른 간호조무사실습생이 다쓴 침을 폐기통에 넣다가 내 다리를 긁었다. 나는 병원에 알렸고 병원에서는 B형간염 피검사를 3번 받게 해줬다. 다행히 난 B형 간염에 걸리진 않았다. 근데 그 실수한 실습생은 나한테 사과 한마디 없었다. 내가 잘못했더라도 자신이 실수한건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그 간호조무사실습생이 자신이 들은 얘기를 해준 게 생각이 났다. 그 일이 터지기 전에 해준 얘기엿는데 다른 실습생이 혈당재는 침 모르고 새것으로 교체 없이 여러명한테 썼는데 아무사고도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잠시 만났던 남자 동창과는 헤어지고나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보게 된 계기도 엄마들끼리 알고 지내서 서로 연락을 하기 때문에 그 동창의 딸(애기가 생겨서 급하게 결혼한 걸로 안다) 돌잔치를 가게 되어 만났다. 그는 아주 멋있고 듬직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찾아가면 안되는 곳에 간 거 같았다. 그러나 다 지난일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내가 올 줄 전혀 몰랐던 거 같다. 내가 건넨 인사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고 돌잔치를 봤는데 돌잔치 하이라이트를 할 때 난 내가 정말 잘못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돌잡이가 끝나고 행사 진행자가 부부에게 아이의 돌잡이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그가 황급히 아내의 말을 가로막았던 거 같다. 진행자가 이상하게 생각해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뭐 그렇게 돌잔치가 끝이 났다. 그 후에 전해들은 얘기로는 술을 엄청 먹어서 죽진 않았지만 차사고가 났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의 어머니가 해준 얘기를 했었다. OO는 결혼 안하냐고 물었다고 했다. 나의 결혼을 물었다고. 나도 내가 결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다. 아마 못하고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주변에는 제 짝을 만나 결혼도 잘하는데 나만 혼자남게 될 거 같기도 하다.
중간에 법무사무원 공부를 배우러 가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친해지게 된 동갑내기 여자애가 있었다. 그 애랑은 짝지였던 언니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지내다 잠시 취직을 해서 법무사무원으로 일을 하며 안만났었다. 그 사이 그 애는 변호사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관두고 공무원 준비를 해서 공무원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만났는데 다시만났을 때 그 애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 애한테 나는 면허증을 자랑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 애도 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구입해서 차를 몰고 다녔다. 우리는 차를 타고 논산에 가서 강아지를 입양해오기도 하고 늦은 저녁에 울산 간절곶에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예전만큼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그 법무사무원 인력 양성 교육을 다닐때는 그 대학의 남학생과 연애아닌 연애를 했었다. 그 애는 후에 그 남학생과 헤어진 이유를 내게 얘기했었다. 아마 당했다고 생각한 거 같다. 그 남학생은 애가 있었고 한참 어려서 어딜갈 때 드는 비용을 그 여자애가 다 낸 걸로 알고 있다. 그 일을 계기로 그 여자애는 손해보는 짓은 절대하지 않았다. 논산에 강아지 입양하러 갈 때도 내가 무거워서 기름값이 더 든다며 눈치를 줘서 기름값을 내가 낸 적이 있다. 지나고나니 내가 왜 그랬는지 후회가 된다. 그 뒤에도 부당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뒤로 더 이상 그 여자애한테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왠일로 그 여자애가 카톡이 왔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아마 결혼한다는 문자였던 거 같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고 후에 연락이 다시 닿아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 내 병명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자 바로 나더러 다시 연락하면 차단 할거고 동생과 정신병원에나 가보라고 했었다. 나는 마치 내가 큰 잘못을 한 사람인양 황급히 전화 끊었고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왜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려하고 어울리려 했었는지 내가 너무 어리석은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