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얼마 동안 쉬었다. 회계공부도 내가 하는 게 못 미더웠는지 엄마가 그만두래서 그만뒀다. 나는 내 의견이 없는 사람인 거 같다. 퇴사도 그렇고 내일배움카드로 하는 공부도 그렇고 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해서 관뒀다.
우리집은 또 이사를 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원래 살던 곳이 연립주택 1층이라 이웃들과 교류가 많았었는데 이사한 곳은 3층 빌라라서 이웃들과 만날 일이 잘 없었다.
집을 옮기기 전에 아버지랑 싸웠다. 얘기하자면 길다. 아버지는 외국에 나가 일을 하시는데 이사한 집에 처음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엄마는 밖에서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셔서 일찍 주무셨고 나는 아버지가 오시는지 몰랐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을 누가 쾅쾅 두드렸다. 아버지였다. 나는 급하게 열었고 아버지는 화가 잔뜩나서 "왜 불도 안켜고 문도 안열어주노?"라며 내게 손찌검을 하려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반항심 가득한 눈으로 치켜뜨고 쳐다봤다. 손이 얼굴로 날아오려 할 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때리려는 걸 멈추셨다. 그 뒤로 아버지와는 계속 불화였다.
나는 아버지가 싫어졌다. 나는 되도록 아버지와 같이 있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방에 들어오라면서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너무 싫어서 그 잡은 팔을 변기에 쑤셔박았다. 더럽다고 생각했다. 정말 나쁜행동이지만 난 그렇게 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와 같이 살면 안되었던 거 같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집에 엄마랑 동생이 있었고 나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바깥에서 집으로 들어오셔서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엄마는 화장실에 내가 있다고 알렸는데 그 말을 하자마자 확 열어젖혔다. 나는 그때 속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랑 더 멀어지게 되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씻은 내 탓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일로 인해 아버지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나도 퇴사 후 할 일이 없고 아버지도 출장다녀와서 쉬는 중이라 우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단둘이 마트를 가게 되었다. 마트에서 또 나는 아버지가 성추행했다고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쇼핑을 마친 후 아버지가 베지밀 음료를 주었다.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곳에 가기가 꺼림직했었다. 그런데 가서 음료를 받았다. 그리고나서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자신이 사준 빨간 노스페이스 털옷에 손가락으로 댔다. 나는 안그래도 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손가락으로 내 가슴에 닿았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덤덤하게 들었다. 아무렴 아버지가 딸한테 성추행을 했을까...나는 그때도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다.
나는 얼마 뒤 동생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와 몸싸움을 했다. 발로차고 벽에 팔이 부딪히고 긁히고 말이 아니었다. 그 시기에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과 부딪히는 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퇴사 후 공부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벌어둔 돈을 쓰러 다니기만 했다. 어느 날이었다. 도로 가에 있었지만 인적이 드문 곳을 혼자 걸었다. 거기에 있는 옷가게에 들어가서 옷을 사겠다며 한참을 입어봤다. 나는 회사 다닐 때의 몸이 아니었다.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카드지갑 한개를 사들고 밖을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커피를 절대 안마시지만 그때는 커피를 사러 카페에 들어갔다. 주문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드를 내밀었는데 종업원이 이렇게 말했다. "아 네가 OO구나."나는 내 카드에 이름이 씌여있어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데 귀접 비슷한 것이 시작되었다. 남자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옆에 엄마말고는 방에 아무도 없는데 내 가랑이 사이로 무언가가 닿았다. 나는 가만히 누워있었다. "얘 뭔데?"라고 말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다. 나는 일어나 엄마옆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귀신들(?)을 물리치려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트에서 아버지랑 같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게 싫어서 안경을 땅에 버렸었다. 엄마는 내가 안경이 없다고 아버지와 집 근처 안경점에서 내 안경을 맞춰주었다. 나는 안씻어서 엉망이었다. 안경점 주인은 가까이 와서 안경을 맞춰주다 내 몸에 냄새가 나자 인상을 썼다. 나는 그 당시 환청과 귀접으로 불안하고 무서워서 빨리 맞추고 집에 가고 싶었다. 안경을 대충 맞췄고 마지막에 그는 안경을 씌워주곤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나는 안경집도 받지않은 채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고 엄마는 아저씨한테 왜그러냐며 안경집을 내게 주었다. 근데 엄마의 왼쪽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엄마도 내 눈이 왜 이러냐고 했었다.
아마도 예전의 기숙사 룸메이트가 해준 말이 맞나보다. 그 동기는 "OO야, 때리려고 동작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때린거나 마찬가지야."라고 했었다. 여러가지 일이 다 떠오른다. 연예가에 학폭, 학폭이라며 말이 많은데 나도 학폭가해자였나 싶다. 고등학교때 집방향이 같은 친구와 버스를 타고 다녔었다. 항상 그랬듯이 친구랑 얘기를 하는데 옆에 앉은 모르는 여자애가 날 이상하게 보는 거 같았다. 그 애는 버스에서 하차를 하러 문앞으로 갔고 나를 빤히 쳐다봤었다. 나는 그게 기분 나쁘다고 때리려고 손을 높이 든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일이 내게 나쁜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집에 아버지만 빼고 셋이서 청소를 하러 갔다. 돈이 많이 있는게 아니라서 우리는 이삿집청소업체가 아닌 직접 청소를 하러왔다. 한참을 쭈그려앉아 청소를 하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와 동생은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었다. 이윽고 그 문 밖의 남자는 "네가 차 주차했나?"라며 때리려는 듯 손을 들었다. 억울했다. 그때의 기억을 동샘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또 밖에서 택시를 내린 아줌마도 내게 때리려는 듯 손을 든 적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정말 고등학교 때 버스에서 내가 한 행동 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 것일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