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간도 못채우고 그만두다
나는 구청 일자리 참여 기간만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고용센터에 가서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왠지 실업급여가 꽁돈처럼 느껴졌다. 실업급여를 타는 동안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나는 고용센터같은 곳에서 보내주는 일자리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다 할 만하겠다하는 일자리를 받게 되었다. 그 할만할 것 같은 일자리도 공장일이었다. 경력이라고 하기에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공장에서 6년가량 일하지 않았는가.
나는 실업급여를 1-2달 타고 곧바로 구직활동을 하러 갔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그 전의 공장은 무슨일을 하는지 모르고 갔지만 이번에는 잘 알아보겟다는 마음에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인터넷에 그 회사를 검색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고 갔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공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는데 면접담당자는 그리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는다며 아줌마들도 하는 일이라고 얘기해줬다. 그래서 안심했다. 그곳에서 합격이 되었으니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곳에서의 일은 매일이 12시간일이었고 2교대였다. 첫 출근날 담당자가 이렇게 얘기해주었다. "야간근무는 없습니다." 알고보니 그 공장은 외국인노동자가 많았고 야간근무는 외국인노동자가 했다. 우리는 주간 근무만 하면 됐는데 주간 12시간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격주로 토요일까지 근무기간이었는데 저녁에도 잠이 안와서 고생했었는데 그 일을 하고 부터는 낮잠을 자도 저녁에 잠을 잘잤다.
아침 8시부터 출근이었고 저녁 8시 쯤에 퇴근하였다. 그 공장이랑 우리집은 꽤 멀어서 나는 새벽6시에 출근준비를 했었다. 그렇게 1달 정도했었나 나는 어쩐일인지 금요일에 퇴근하고 와서는 집에서 난리를 쳤다. 그래서 경찰들이 우리집에 오고 난리가 났었다. 엄마는 더이상 날 공장에 보내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출근해야하는 다음날인 토요일에 날 깨우지 않았다. 나는 출근시각이 지나서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을 했다. 그러다 스마트폰을 떨어트렸다.
그 곳은 휴게실이 남녀가 들어가는 출입문이 같고 벽을 하나 두고 나뉘어 있었다. 나는 되게 사소한 그런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주의 마지막 근무날 퇴근 하기전에 정수기 위에 종이컵이 놓여있었는데 종이컵 안에 위생용품을 두고 나왔다. 나는 그걸로 그치지 않고 내 사물함에 개인 위생용품을 꽂아두었다.
퇴근할 때는 사람들이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 나갔는데 나는 다른 출입구로 이동했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빴는지 앞의 사람이 연 문을 발로 세게 열어젖혀버렸다. 그리고 사과도 하지 않고 탈의실에가서 퇴근 준비를 했었다. 왜 그랬는지 후회가 된다. 그 곳에 다니는 동안에도 환청과 귀접이 있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근데 환청이 들렸다. 나한테 왜 왔냐며 욕설을 했다. 나는 환청인지 실제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었다. 집에와 바보같이 엄마한테도 얘기를 해주었는데 엄마는 듣고만 있었다. 귀접도 밤낮 계속되었다. 밤에는 퇴근하는 버스에서 낮에는 휴게실에 앉아있으면 귀접이 일어났다. 나도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것도 후회한다. 앉지 말고 귀접에 응하지 말고 서있을 걸하고 말이다.
그래서 새로 취업한 공장에서 수습기간 3개월도 못채우고 잘렸었다. 나는 문제가 많았다. 집이 멀어서 아침마다 뛰어왔어야 했는데 회사 출입문 옆의 열린 문으로 뛰어들어가곤 했었다. 출입문에 경비원이 출근하는 내게 물었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 맞냐고 나는 수습사원이라고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그날 잘렸다.
나는 뻔뻔하게 잘린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랫더니 날 자른 아저씨가 말했다. "다들 너랑 일하기 싫다더라." 나는 잘릴만 했다. 나는 "지금 가도 돼죠?"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오늘까지는 일 다하고 가고 내일은 나오지마라고 했다. 나는 잘린 마당에 더 일하고 싶지 않았다. 제자리에 와서도 나가고 싶어서 출구쪽을 봤었다. 당장이라도 그 공장을 나가고 싶었다.
그 공장일도 경쟁이었다. 나는 첫출근 날부터 눈밖에 났던거 같다. 질문이 너무 많았다. 근로계약서를 쓰는데도 이것 저것 물어봤었다. 그리고 공정일을 배치해주는 사람이 왔는데 점심시간과 휴게시간을 알려주려고 할 때 같이 입사한 여자애가 저번에 말해준거라며 말을 잘랐었다. 나는 듣지 못했고 일을 할 때 시간관념이 없어 늦게 일을 하러 갔다 그래서 같이 일을 하는 동갑내기 베트남 여사원한테 너는 그 쌀국수집에서 계속 일하지라는 말을 들었었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더이상 일하기가 힘들어졌었다.
공장일도 경쟁이라고 한 건 첫날 생각해보니 합격이라고 갔지만 온 사람들은 나 포함해서 10명이었다. 계장은 합격 인원이 9명이라고 했었다. 아무래도 수습기간동안 하는 거봐서 정직원이 되는 거 같았다. 지금 적으며 생각해보니 사회가 무섭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는 또 환청인지 모를 소릴 들었다. 같이 일하는 아줌마 중에 한 명이 동료들한테 다 박카스를 돌렸었는데 잘렸다는 말을 듣고 제 자리로 오니 '그 박카스 너한테 준거 아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기에 오기가 생겼는지 오지말라던 아저씨 말을 뒤로 하고 다음날 박카스랑 작업복을 챙겨 와서는 여자 반장에게 박카스를 돌려주고 작업복을 두고 왔다. 분명 여느때랑 다름없는 출근시간이었는데 대장(?)여사원 말고는 아무도 일을 하러 오지 않았었다. 나는 또 이상한 짓을 했다. 출근할 때 이용하는 출입문을 안에서 잠그고 다른 출입구로 나왔다.
그거 때문인지 나는 집으로 돌아갈 때 화단을 잘못 밟아서 무릎 양쪽이 다 아작났다. 당연히 스마트폰 액정이 산산조각 났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버스로 1시간 걸리는 거리를 집까지 걸어서 왔다. 지금은 많이 후회한다. 좀 덜 질문할 걸, 휴게시간을 입사동기 여자애한테 물어볼 걸, 불만을 가지지 말 걸하며 후회한다. 한마디로 난 그곳에 적응을 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