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름도 없는 이들
그의 심장이 뛰게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가버리자 때마침 태어난 닮은 손녀딸을 보며 살았다. 내 사랑이다 생각하며 살았던 거 같다. 하지만 이번엔 사랑하는 동생이 불치병에 걸렸다 병원에 입원한 아픈동생을 보고 온 하루 이윽고 밤깊은 그날 그의 심장이 멈췄다.
사인은 심장마비.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심장도 뛰는게 무의미하다여긴것일까 그는 살만큼 살았다 생각한걸까. 며느리가 시아버지인 그의 목숨을 붙들려고 했지만 그의 심장이 멈추는것을 막지 못했다. 다 잠든 시각에 모두가 그러하듯 그는 외로이 이승을 떠났다.
그녀도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신속하게 병원에 가서 의학으로 살아났다. 그녀는 심장 질환으로 많은 약을 먹으며 살아냈다. 27년생인 그녀는 이 생을 좋은 시절이라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렇게 편한 날이 없다며 과거 이야기 보따리를 늘어놓기도 했었다. 그녀의 삶은 그 당시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았을 뿐이지 마지막엔 그녀의 몸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삶도 순탄하진 않았다. 일찍 시집에 들어 일본군의 영향을 피했지만 첫아들을 낳자마자 잃었다. 어린 18살 새댁이 무얼 알았을까? 첫 출산한 아이와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었고 후에 낳은 자식들이 평범하기를 바라며 살았지만 세상은 내 맘같지 않았다. 자식의 불행을 그녀는 보듬었다. 손자를 제 새끼처럼 키웠다. 사고를 치고 돈을 요구해도 그녀는 들어주었다. 나이가 들어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막내딸 시골집에서 지내며 애들의 밥을 챙겨주었다. 첫째 손녀딸이 막 취직을 했을 무렵 불행 닥쳐왔다. 사위가 쓰러졌다. 이미 돌이킬수 없는 상태였지만 병원에서는 가족들과 만날 때까지 겨우 마지막을 붙잡고 있었다. 그 뒤 천수를 바라보는 나이의 그녀는 더이상 그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딸에게 두 번의 장례를 치르게 할 수 없었으리라 그녀는 그럴싸한 얘기를 하며 막내딸 집을 나왔다. 나는 이제 병원이 가까운 도시에 있어야 위급할때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도시의 딸집으로 갔다 그녀는 어딜가나 눈칫밥 신세였다 그곳에서도 오래있지 못하고 결국 요양병원에 가게 되었다 병원에 들어가 자식들과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되도록 자주 얼굴은 볼 수 있었다 다들 이제 가실 때가 됐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큰병을 얻어 먹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다 잠들 듯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