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드 Sep 17. 2020

내 이름은 어디에

나는야 B급 엄마, B급 아내, B급 며느리

 나는 한 가정의 엄마이고 아내이다. 결혼 후 시댁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내가 왜 이 사람을 선택해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부터 흔히 말하는 B급 며느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며느리로서의 역할은 우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과도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나니 많은 것이 나를 짓눌렀다. 그 당시 신랑의 사업이 힘들었기에 나는 가장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음에도

“집안일을 내가 좀 해야 하는데.. 미안하고 고마워”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무언가 내 직무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 것과 같은 찝찝한 마음을 항상 품고 살았다.

 당시에 별 보고 출근해서 달보고 퇴근하는 직장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내가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결혼하고 아내로서의 역할을 지나치게 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닌지  불편한 마음이었다.


 물론 착하디 착한 남편을 만나 그 당시에는 집안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면 정말이지 고마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사업에 하루 종일 몰두하며 많은 에너지를 쏟고 집에 와서  편히 쉬고 싶었을 텐데 가장이라는 이름 하에 돈 한 푼 가져오지 못한 그 착잡한 마음을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었을까. 그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더 늦게 퇴근하는 나를 위해 밥을 짓고 즐거운 이야기를 해주었으리라.


 사는 게 힘들기도 했거니와 나도 내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던 터라 아기 낳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 첫 아이를 낳았다. 이 때도 경제적으로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이 전에 말도 못 하게 힘들었을 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임신이 되었다가 절망감에 임신 테스트기를 부여잡고 맨바닥에 있는 힘껏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며 남편을 탓하는 괴성을 질렀던 적이 있었던 터라 두 번째 임신 사실에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맞이했다. 사실 약간의 체념이 섞인 기쁨이랄까.


 나의 나쁜 마음 때문이었는지 첫 임신에서는 계류유산이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때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이를 늦게 갖기를 바랐던 것과는 달리 하루라도 빨리 갖고 싶어 했던 사람인지라 한 순간에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는 상실감이 더 컸을지 아니면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 모두 다 남편 때문인 것만 같았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기에 임신 소식이 기쁘지 않았고, 임신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했던 내가 미웠고, 그 근간이 된 이런 상황을 만든 신랑이 미웠다. 돈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남편이 미웠다. 상황이 이렇지 않았으면 유산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내가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불안과 분노의 감정으로 바닥에 너무 세게 주저앉아 이런 일이 발생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를 바닥에 주저앉혀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오로지 기쁨과 환희로만 맞이해야 할 나의 뱃속 첫 생명을 분노와 불안으로 맞이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어쨌거나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가고 1년 후 다시 새 생명이 내 안에 자리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딸이 태어나고 또다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결혼 후 달라진 생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분이 나를 잠식해갔다. 나는 그냥 내가 아니라 엄마일 뿐이었다.

 누가 모성은 본능이라고 했던가.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모성도 학습이고 후천적인 것이더라.  엄마라는 역할이 이 정도로 힘들고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라면 교과 편성에 엄마 수업을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마가 된 이후의 삶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후에 든 생각은 엄마 수업이 애초에 정규 교과목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정이었고, 모든 여성이 이 수업을 들었다면 현재 이 세상에서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니 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은 맞지만 그 외적으로 수반되는 고통 또한 적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모두 모성애가 부족하고 자기의 삶만이 중요한 이기적인 엄마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서 오는 행복감이 다른 무엇보다 큰 사람이 있고, 그와는 별개로 나의 발전이 수반되어야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도 같이 커지는 사람이 있다.


 나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 삶이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냥 좋기만 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자기애가 강한 편이다. 또한  성공에 대한 열망도 크다. 성공이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엄마로서의 성공은 아니다. 내 자식의 자랑을 나의 자랑으로 삼는 것이 엄마의 성공이라면 나는 나 자체로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스스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된다면 나의 아이도  본받아 그러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그저 묵묵히 내가 정한 목표를, 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조차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더 흔들리고 흔들린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지금은 아이에게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는 아닐지..

 그러면서도  자식을 자랑거리로 의기양양한 엄마들을 보면 약간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러한 나의 성향 때문이겠지만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들이 그 속에서 행복하다면 내가 그 행복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우먼과의 타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