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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 Sep 17. 2020

슈퍼우먼과의 타협

내려놓기와의 싸움

 어느 날 집안일과 육아, 그리고 나의 꿈 사이에서 힘들어하며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하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주 수입원이었을 때는 내가 집안일 군소리 없이 다 했잖아.”


 이 말은 내게 적잖이 충격이었다. 강력한 펀치를 맞은 것처럼 잠시 말을 잊지 못하고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속사포로 말을 했다.


 “와.. 정말 너무하다. 그래. 정말 고마운 일인데, 근데 솔직히 나도 그때 밤낮없이 일하고 당신 몫까지 돈 번다고 힘들었잖아. 그리고 솔직히 뭐! 그때는 우리 둘 뿐이었고, 내가 늦게 퇴근하고 오면 밥 차려주고 설거지하고 그게 다였잖아. 그 당시 집안일의 강도랑 지금 상황을 어떻게 비교를 해? 솔직히 뭘 그렇게 많이 했는데? 우리 둘 먹을 밥하고 설거지 왜에 무슨 집안일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솔직히 오빠가 싱크대 한 번을 닦아봤어? 아니면 애 태어나고 내 하루 일과가 된 것처럼 매일 바닥 걸레질을 하길 했어? 애 반찬을 한번 만들어봤어? 하다못해 애 어린이집 일지를 한번 써봤어? 나는 지금 내 일도 해야지. 애 반찬도 만들어야 하지, 우리 빨래며 애 빨래며 적어도 삼일에 한 번은 돌려야지,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을 부르고 일정을 조율하는 것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왜 나 혼자만 다 감당해야 하는데?

 솔직히 오빠는 내 꿈, 내가 하고자 하는 일 응원한다고 말로만 그러고 퇴근하고 와서 고작 해봐야 애랑 한두 시간 놀아주는 것 외에 뭘 그렇게 했는데? 말로만 응원한다고 하고 결국엔 저녁밥도 내가 다 차려주길 원하고 애도 내가 다 챙기고 운동복 빨래 안 했다고 투덜거리고..

 오빠는 새벽같이 나가서 운동하고 회사 가버리면 그만이지. 나는 아침부터 애랑 씨름하고 겨우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종일 종종거리다 다섯 시면 하던 일 다 팽개치고 헐레벌떡 애 하원 시켜 저녁밥 준비해서 먹이고 대충이라도 집안일하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져. 나도 누가 내 저녁밥 차려줬으면 좋겠어. 아니, 난 안 먹어도 좋아 그냥 쉬고 싶어. 매일 입는 운동복 빨아대는 건 쉬운 줄 알아? 막말로 투덜거릴 시간에 오빠가 퇴근하고 와서 돌릴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몇 개 더 사면되는 걸 가지고 그렇게 말을 해?”


 다 퍼붓고 나서도 속이 시원하지가 않았다. 내가 집에서 일을 하는 입장이니 잠깐 쉬면서 빨래 돌리고 잠깐 설거지하고 그러면 되지 않냐는 말이 또 생각났다.


 “오빠가 보기엔 잠깐이지 그 잠깐 시간 다 합치면 족히 2시간도 넘어. 그리고 일을 쭉 집중해서 해도 모자랄 판에 잠깐잠깐 집안일하고 난 언제 집중해서 일하는데? 나 애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나면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거의 매번 끼니도 거르고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지도 않아.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리고는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될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너무 상처를 받기도 했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음 날 남편은 조용히 편지를 쓰고 출근을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내가 슈퍼우먼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은 나의 꿈을 응원하고 도와주겠다는 번지르르한 말만 하고 막상 까놓고 보니 제대로 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 직후 우리는 빨래를 주말에 한 번만 하기 위해 남편의 운동복(당시 남편은 매일 새벽 출근 전 배드민턴을 쳤다.)과 아이의 옷을 몇 벌 더 구매했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만 함께 했다. 대신 저녁밥은 가급적이면 외식하지 않고 내가 차려주려고 노력하고, 주말에는 남편이 한 두 끼 정도는 만들어 준다.


 이렇게 우리도 여느 부부 못지않게 서로 더 잘 살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었다.


 가끔은 다시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내가 택한 재택근무의 삶이지만 집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눈에 들어오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가 어질러놓고 간 책과 장난감들도 정리해야 하고, 설거지도 쌓여있고,  남편들은 절대 모르는 수많은 집안일이 존재하고 또 존재한다. 이것들을 못 본 체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기까지 나도 내공이 필요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많은 내공을 요하지는 않았다. 나란 사람은 특히나 집안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주중에는 집안일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해버리니 마음이 편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아, 우리도 주중엔 집안일 스트레스로부터 좀 편해 지자. 전업맘, 워킹맘 가릴 것도 없다. 전업맘이면 주중엔 애 보느라 진 빠지고, 워킹맘이면 일하느라 녹초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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