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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 Sep 17. 2020

엄마들도 사정이라는 게 있다.

다음 생에는 남자로 한 번 

 결혼 후 시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처음 든 생각이 있었다.


 ‘다음 생에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반드시 남자로 태어나야지.’ 


 만약 한국 여자로 태어난다면 절대로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나니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물론 다음 생을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마음은 그러했다. 이렇게만 보면 나란 사람은 정말 이기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나를 끔찍이 사랑하는 남편과 살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히 남편과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보니 여자에게 너무나 많은 역할이 주어진다. 아이를 낳고 보니 이건 뭐 말할 것도 없다. 나도 내 몸하나 건사하고 살기 힘든 정신머리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나도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인데 너무나도 많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아빠가 아이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지 않았다고 책망하는 사람은 없다. 아빠가 밥을 하지 않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다. 아빠가 야근을 하면 돈 버느라 얼마나 힘들까부터 생각하지 애를 저렇게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맡기다니. 쯧쯧. 할 사람은 없다.

 엄마가 아이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지 않으면 정신머리 없다고 말한다. 남이 뭐라 하기 전부터 엄마 스스로가 자신을 책망한다. 엄마가 밥을 하지 않으면 무슨 엄마가 저러냐고 욕을 한다. 엄마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 모성이 부족한 거 아닌가 의심을 한다. 아이가 아프기까지 한 날이면 엄마는 그야말로 대역 죄인이 된다.


 엄마들도 사정이라는 게 있다.

 나는 현재 전업주부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계속하고는 있지만 일반적인 시선에서의 나의 타이틀은 그냥 전업주부다. 예전에는 이 타이틀이 너무 싫어서 나는 사업자를 가진 어엿한 대표라고 소개했다. 쥐뿔도 버는 것 없는 대표. 쥐뿔도 버는 것 없던 시절, 재택근무를 택한 이유에도 내가 엄마가 된 현실이 굉장히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가끔 나의 속도 모르고 사람들은 가볍게 이야기하곤 했다.


 “집에서 일하면 정말 좋겠어요.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도 있고, 퇴근 시간이 따로 없으니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올 수도 있고요.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월차 내느라 눈치 보고, 어린이집 방학이라도 하면 휴… 나도 가능만 하다면 재택근무를 하고 싶은데 그럴만한 직업이 아니라서요. 부러워요.”


 정말 뭘 모르는 속 답답한 소리다. 물론 재택근무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재택근무의 장점은 사실 아이를 놓고 봤을 때의 장점이지 업무의 능률로만 따지자면 최악 중의 최악의 단점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음이 잘 통하지 않는다. 

 가령 회사원 엄마라면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있어야 한다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가 통한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 어쩔 수 없음이 어지간히 강한 마음이 아니고서야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특히나 월급처럼 꼬박꼬박 나오는 돈도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두 엄마 사이에서 누구의 모성이 더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가까운 ‘집’에서 ‘강제성이 없는’ 일을 하고 있노라면 흔히 겪는 딜레마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한 날이면(왜 그리 자주 아픈지…)

 ‘아… 그냥 어린이집 등원시키지 말고 데리고 있을까?’ 

 이 생각부터 하게 되고 실제로 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업무의 흐름이 끊어지고 다시 일을 손에 잡았을 때는 제로에서부터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마디로 애 엄마에게 재택근무란 굉장히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당시 내가 재택근무를 택한 것은 엄마가 된 내가 그나마 내 꿈을 놓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에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딘가에 묶여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것은 나와 남편을 비롯해 아이에게도 큰 위험이다.

 지금은 소득에 대한 나름의 가치 재정립이 이루어진 터라 다른 형태로 일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매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기가 무섭게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고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그 시간이 때로는 지겹고, 지치고, 지지리 궁상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나였음을 잊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매일 무거운 몸을 털고 일어나 간신히 산에 올라 ‘야호’를 외치지만 메아리는 울리지 않고 고독한 적막감만 맴도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곧 나의 수많은 외침이 뭉치고 뭉쳐 강력한 한방의 메아리로 돌아올 것임을 굳게 믿으며 오늘도 난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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