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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 Mar 13. 2023

패배의식을 조장하는 나라

님아, 지금 선 넘으셨어요.



님아, 지금 선 넘으셨어요.


 땅덩어리는 좁고 인구밀도는 높아서 일까? 남의 삶에 이렇게나 관심이 많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최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첫째 아이가 네 살 무렵,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며 지나가던 한 할머니가 대뜸 물었다.

"네가 첫째야? 동생 있어?"

 정신없이 놀고 있는 와중에 뜬끔없이 훅 들어온 질문에 딸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고 결국 곁에 있던 내가 대답했다.

"혼자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하나는 외로워서 안돼. 둘은 낳아야지"

  당시 둘째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는 웃으며 다시 대답했다.

"그냥 하나만 잘 키우려고요."

 그런 나를 보며 할머니가 하신 말씀은 당시 내겐 적잖이 충격이었다.

"무슨 소리야. 둘째는 아들 낳아야지."

 나는 그 말을 들은 직후에는 내 귀를 의심했고, 이후에는 불쾌감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그저 옛날 사고방식의 노인이 하는 말이라고 흘겨들으면 될 것을 성질이 뭐 같아서 그렇게 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첫 아이를 임신하고 성별을 확인하러 가기 전까지 내내 뱃속의 아기가 딸이기를 바랐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번도 '아들을 못 낳아서' 슬펐던 적도, 아들을 낳아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토록 원하던 딸을 낳았기에 둘째 생각이 사라진 것도 큰 몫을 했던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한 할머니로 인해 나는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갈수록 가관이라는 말은 이럴 때!


 둘째 아이도 딸이었다. 딸 둘 아빠가 꿈이었던 남편은 뛸 듯이 기뻐했고, 나 또한 그를 보며 행복했다. 그런데 둘째를 낳으니 더 가관이었다. 딸 둘인 우리 부부를 보며 '셋째는 아들 낳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농담으로 그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야 수두룩했고,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해주시는 할머니들도 여러번 만났다. 순식간에 나는 또 다시 패배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지금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단 한번도 '아들을 못 낳아서' 불행하다고 느껴본 적 없었다. 아들을 갈망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마치 나는 아들을 갈망해야만 하고, 또 반드시 낳아야만 하는 데 낳지 못해 불행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는 가만히 있는 사람도 패배자로 만들어버리는 대단한 나라다. 나는 사실 그 사람과 어느 정도 친해지기까지는 그가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등의 사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저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포장으로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는 그것을 '정'이라는 포장으로 오지랖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리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패배의식을 조장하는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하는 듯 하다.



미혼이면 결혼,
결혼하면 애,
애 하나면 둘,
딸 둘이면 아들,
전세냐 자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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