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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 Apr 07. 2023

시발비용에도 앞서는 모성

너무 미운데 너무 예쁜 그대여


미운 을 넘어선 ‘망나니’ 같은 4살


  둘째가 39개월이 되었다. 워낙에 고집불통에 5살 위 언니를 이겨 먹는 성격이라 주의를 줄 건 주면서도 크면 이보다는 나아지겠거니 하고 키웠다. 첫째도 쉬운 아이는 아니었는데(엄마에게 쉬운 아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둘째는 정말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제는 역대급 최강의 날이었다. 이런 날은 또 남편이 늦는 머피의 법칙이랄까. 잘 시간이 되어 양치를 하자고 하는데 눈앞에서 이름을 몇 번씩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하는 아이의 모습에서부터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놀리듯 깔깔 웃는다. 결국엔 모른 척 하니 바닥이며 장난감에 침을 뱉는다. 화가 나 아이를 방에 억지로 들여보내니 울고불고 대성통곡이 시작되었다. (무조건 버럭 화낸 것이 아니다. 좋은 말로 몇 십분을 회유하다 터져버렸다. 엄마들은 공감하시죠..)


 방에서 나온 아이는 다시 바닥에 침을 뱉고 시위를 시작한다.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화가 나서 양치하자고 버럭하는데 아이는 물 마실 거라며 정수기 쪽으로 향한다. 관심을 주지 않으려는데 아이는 물을 일부러 윗도리에 쏟았다. 속이 부글거리지만 참았다. 윗옷을 가지러 간 사이에 아이는 바지에도 물을 쏟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감정에 윽박지르니 아이는 엉엉 울면서 나를 깨물고 꼬집고 때린다. 나는 일부러 아이의 팔을 잡고 살짝 깨물었다. 너도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라는 의미에서였다. 오은영 박사님이 보면 분명 엄마를 금쪽이로 바꾸지 않으셨을까 싶은 대목이다. 아이는 혼이 나면서도 절대 지지 않고 악에 바쳐 소리를 지르듯 자기의 할 말을 따박따박한다. 무슨 39개월이 말을 이리도 논리적으로 잘하는지 더 화가 난다.


 ”아니!! 내가 물 마시고 치카 하러 갈라고 했는데 엄마가!!! 으아앙“

 엉엉 울면서도 할 말은 따박따박 다한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전까지의 모든 행동이 나의 눈에 거슬렸을 뿐이었다.  


 화내는 엄마와 난리 치는 동생 사이에서 첫째 아이는 나의 화를 식히고 동생을 회유하느라 진땀을 뺐다. 엄마가 화내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둘째에게 언니의 회유는 큰 힘이 없었다. 지칠 때로 지친 나와 첫째는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둘째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고 방 앞에서 시위 중이었다. 우린 잘 거라고 방문을 닫으려니 또다시 악에 바친 소리를 지르며 대성통곡이 시작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잠자리에 모두 누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또다시 시작이다. 아이는 목이 마르다, 쉬가 마렵다, 응가가 마렵다, 손을 씻겠다 등등 갖은 이유로 나를 수십 번 일으켰고, 또다시 나는 폭발했다. 결국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엉엉 울게 두었다.


  마흔에 이런 강성의 아기를 키우려니 내 몸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다. 한 시간이 넘는 실랑이에 이미 지친 나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끝까지 힘들게 구는 둘째 덕에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까지 겪었다. 숨이 갑자기 잘 쉬어지지 않고 공포스러운 감정에 휘말렸다.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진작에 지친 첫째에게 오늘 미안하고 고맙다고, 엄마가 화내는 통에 우리 첫째가 고생했다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니 이내 잠이 들었다. 둘째 아이의 울음은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는 언니만 사랑하나 봐. 나는 안 사랑하나 봐. 내가 이렇게 귀여운데!”

엉엉 울면서도 한다는 소리가 기가 막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진을 빼서 아이가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얼른 이 상황을 끝내고 잠에 빠지고 싶었다. 겨우 둘째를 달래며 사과했다. 엄마가 우리 둘째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그런데 나쁜 행동을 많이 해서 엄마가 화를 못 참았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끝까지 손을 다시 씻겠다며 다시 한번 나를 대환장하게 했지만 본인도 지친 끝에 이내 잠이 들었다. 나 또한 너무 지쳐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안쓰러워할 새도 없이 내가 먼저 곯아떨어졌다.


  어제의 여파로 마음이 종일 편치 않다. 가슴 한구석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무겁고 답답하다. 둘째를 원에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해가 쨍쨍인데 징화에 우산쓰고 등원한 해맑은 둘째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까지 할 일이었나 생각하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제 막 39개월이 된 아기와 나는 뭘 위해 그렇게 싸웠나 싶다.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좀처럼 하지 않는 쇼핑을 하러 나섰다. 시발비용을 쓰려고! 산뜻한 봄 원피스 하나 사려고 했던 마음이었는데 한 시간 가량 쇼핑 후 내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아이들 옷과 과자들.. 내 거라고는 세일 중인 4,500원짜리 흰색 티셔츠 하나였다. 시발비용 앞에서도 모성이 앞서는 걸 보니 엄마는 엄마구나 싶었다.

첫째에게 미안해서 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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