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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Aug 06. 2021

[일상의 단상]-<고모의 방>

*어린날의 독서는 그의 정서적 토대가 된다.*

[일상의 단상]-<고모의 방>


*어린날의 독서는 그의 정서적 토대가 된다.*             


우리는 뜻밖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맞이하였다. ‘지구촌’이라는 말에 걸맞게도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전 세계적인 펜데믹이기에 하늘길도 막히게 되고 해외여행도 자유롭지가 못하다. 백신 접종이 순차적으로 잘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국내여행도 조심스럽고 하다못해 집 주변에서조차 자유롭게 어딜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많이 조심스럽다. 나는 요즘 최대한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기도 하면서 되도록 조심하려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니 하루의 동선도 일정하게 되고 생활이 단조로운 편이며 집에 머무르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해야 하고 현실의 삶은 계속 이어져 나가야만 한다. 휴가철이니 휴식기가 주어졌으나 어딜 가기도 조심스러운 데다가 사실 좀 귀찮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라의 방역정책을 대단히 잘 따르는 모범 국민으로서 집콕 생활을 실천하면서 만끽하기로 했고 집에 머무는 시간을 한층 더 늘렸다. 베짱이처럼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음악도 맘껏 들었다. 한편 넷플릭스 등을 통해 집에서도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라고 확신하는 1인인지라 극장에 가고 싶은 충동은 억제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최대한 사람 없는 시간을 잘 골라 영화 관람하러 극장에는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호시탐탐 극장 나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휴가 기간 동안에 집에서 여유롭게 지내면서 안쓰는 것들을 찾아내어 버리고 쓸만한 것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도 했으며 책장정리도 하였다. 작년 이맘때 이사를 하면서 참 많은 책을 버리기도 하고 나눔도 했건만 그래도 책장 속 책들의 양이 만만치 않은 것은 이후로 또 계속 사들였기 때문이란 걸 문득 깨닫게 된다. 사고 버리고... 또 사고 또 버리고… 반복되는 루틴을 벗어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책을 추려내고 또 정리를 해나갈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책들을 들쳐보며 골라내고 정리하던 중에 책장 맨 아래쪽 한구석에서 누런색의 뚱뚱한 서류봉튜를 발견하였다. 뭔가 중요한 것이라 버리지 않고 둘둘 말아 한구석에 보관하고 있었을 듯한 직감을 느끼며 그 서류봉투를 열어보았는데, 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이어리 몇 권이 있었다. 파스텔톤의 노란색과 보라색이 섞인 예쁜 시화가 프린트되어 있는 하드커버 다이어리에 엄지 손가락만하게 작은 금빛 자물쇠까지 걸려 있는 그것은 내가 어린시절에 쓰던 일기장이었다. 마치 사진첩처럼 케이스도 있었고, 자물쇠를 여는 열쇠도 없어지지 않고 일기장 자물쇠 고리에 함께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림일기를 쓰는 초등 저학년이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오랜 것들은 이미 없어졌고, 서류봉투에 남아있던 것들은 초등 고학년 이후로 쓴 일기장들이었다. 그거라도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딱히 바쁠 것도 없이 한가한 휴가철의 어느 날 오후를 책장 아래에서 우연히 발견한 내 유년시절의 일기장을 들춰보며 시간여행을 하듯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일기장을 들춰보는데 나도 모르게 회상에 잠기며 감성적이며 감각적인 상태가 되기도 했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와 언니하고 다투고 나서 속상했던 이야기, 아마도 학교에서 숙제로 내줘서 반강제로 이루어졌었던 듯 군인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았던 이야기 등등... 마치 소설을 읽듯이 재밌기도 했다. 한편 어떤 부분은 너무 유치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나 아닌 누구에게는 이 일기장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다가 뭔가 일관성이 있게 중복되듯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가장 많은 에피소드가 한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에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았는데, 책과 연관된 일을 일기로 쓰는 날에는 ‘고모’와 ‘고모의 방’에 관한 일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어린날부터 책을 읽는 게 좋았다. 활자로 된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가리지 않고 유심히 들쳐보며 읽는 게 습관화되었다. 아이 때부터 호기심이 많은 편이어서 집에 굴러다니는 신문이나 아버지의 전국지도책 같은 것들을 포함해 그 내용에 대한 이해 여부를 떠나서 무조건 읽는 것을 즐기는 그런 아이였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의 책읽기는 더욱 가속이 붙게 되었고, 집안의 어느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가고 해가 지는 것도 모를 만큼 집중하곤 하였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아서 좋았고, 게다가 칭찬도 덤으로 들을 수 있었으니, 그런 상황들이 어린 나의 책 읽기 습관 형성에 격려와 더불어 촉진제 역할이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을 땐 외롭지 않았고 시공간을 초월하듯 자유로웠다.               


나의 책읽기 습관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는 분을 꼽자면 고모였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만하다. 나의 증조할머니가 늦둥이로 낳으셨던 막내아들의 딸이었던 고모는, 내 아버지에게는 막내 삼촌이자 나에게는 막내 작은할아버지의 장녀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집안의 장손이었기에 고모의 아버지이면서 내 아버지에게는 막내 삼촌이었던 막내 작은할아버지는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그다지 많이 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당시 고모는 내 아버지와 같은 항렬이었으나 나의 아버지와는 나이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는 편이었고, 촌수로는 조카인 나와는 열 살도 채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어린 내 눈에도 그다지 큰 어른으로 보이지는 않았었던 듯하다. 나는 그런 고모를 큰언니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무척이나 따르고 친근하게 지냈었다.          


고모네 집은 내가 어린날에 살았던 곳인 내 고향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가 종갓집의 장손이었고 여러 사정으로 인해 내가 어렸던 한시절에 우리 가족은 증조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본가에서 함께 살고 있었고, 고모의 아버지인 막내 작은할어버지는 결혼을 하면서 분가를 해서 자녀를 낳고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증조할머니는 늦둥이 막내아들을 멀리 보내기가 싫어서 결혼으로 분가를 시키면서도 본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마련한 집으로 내보냈고 이후로도 막내아들의 살림살이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가까이 살았던 덕에 제사 때나 모이는 다른 친척들과는 다르게 고모네 집과 우리집은 평상시의 일상을 공유하듯 빈번히 교류하며 살았고, 고모의 방은 내 어린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채워준 매우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단언컨대 고모의 방이 어린날 나의 책읽기 습관에 토대를 마련해 준거나 다름이 없었다.               


고모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여상을 갓 졸업하고 한 중소기업의 경리사원으로 취직을 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직장인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는데, 경기 남부 외곽에 위치했었던 내 고향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가 주도로 기획된 공업단지가 생겼고 그에 따라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던 터여서 고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되어서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던 듯하다.      

마을의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던 촌락의 아가씨답지 않게 피부톤이 하얗고 예쁜 외모에 목소리도 명랑한 하이톤인 데다가 말투도 상냥했고 꾸미기를 좋아했던 고모는, 동네에서는 새침떼기 어여쁜 처녀의 이미지였고, 어린 내 눈에도 참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결혼을 하면서 본가에서 분가를 했던 고모의 아버지는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은 농사꾼이면서 고스톱과 술을 좋아하셔서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늘 본가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런 집안 형편에서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을 둔 장녀인 고모의 입장에서는 여상이라도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대학 진학은 꿈도 못꾸었을 터였으니,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밝고 긍정적인 고모는 직장에도 원만하게 적응해 잘 다니고 있었고 월급을 꼬박꼬박 타게 되니 경제력도 생겨서 한층 활력 있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한창 외모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던 20대 초반의 젊은 아가씨였던 고모의 방에는 예쁜 옷들과 하늘하늘 원피스들도 걸려 있었고, 귀여운 캐릭터 인형들과 갖가지 화장품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고모의 방에 틈만 나면 놀러 갔었고, 내 유년기의 상당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내가 고모의 방을 그렇게 좋아했던 데에는 꼭 예쁘고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고모의 방을 좋아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고 그곳에서 내가 자리 잡고 앉아 있던 곳은 늘 한결같았는데, 거기는 바로 고모의 책장 아래였다.      


고모의 방 한켠에는 낡은 책장이 있었다. 고모가 여상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주산, 부기, 타자, 경리, 회계, 교련... 그런 책들이 꽂혀 있던 그 책장에는 날이 갈수록 큰 변화가 생겼다. 고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변화였는데, 이전에 꽂혀 있던 책들이 차츰 없어지고 새로운 책들로 가득가득 채워져 갔다. 고모는 여상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을 해서 중소기업의 경리 아가씨로 살아가야 했던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던지 월급을 타면 수많은 책들을 사들였다. 아마도 책장의 수많은 책들이 고모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기능을 했던 것 같다. 고모는 주로 전집류를 사들여서 예쁘게 진열을 하듯 각종  책들을 반듯하게 꽂아 두었는데, 특히 전집류는 책의 크기가 일정하고 그 모양새가 가지런해서 방 전체를 깔끔하게 보이게도 하면서 뭔가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 효과도 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고모가 사들인 그 수많은 책들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바로 내가 되었다. 고모는 책을 사들여서 책꽂이에 꽂아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책장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것까지만 했을 뿐, 고모가 그 책들을 꺼내 읽는 모습은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귀가한 고모는 어쩌면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의 고모는 얼굴에 마사지 크림을 바르거나, 스킨을 듬뿍 머금은 솜뭉치를 양 볼에 얹어 놓거나, 오이를 잔뜩 썰어서 얼굴 여기저기에 붙이고 누워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예쁜 옷들을 펼쳐 놓고 정성스럽게 다림질한 후 탁탁 털어서 옷걸이에 걸어놓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책을 포함해 무엇이든 활자를 읽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틈만 나면 고모의 방으로 달려가 고모에게 아양을 부려서 허락을 받아낸 후에 그 책들을 하나씩 뽑아서 책장 아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읽기에 빠져들었다. 책을 펼치면 책등이 벌어질 때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나 새책이오!’하는 메시지를 책이 나에게 보내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새 책을 펼칠 때 느낄 수 있는 그 신선한 느낌과 특유의 책냄새가 나는 정말 좋았다.

그때 고모가 책장의 책들을 읽어도 좋다고 나에게 처음 허락했을 때에는 반드시 고모의 방에서만 읽을 수 있고, 고모의 방 밖으로는 책을 가지고 나갈 수 없다는 규칙을 정해 주었다. 아마도 내가 책을 갖고 나가서 잃어버릴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고모의 책장 아래에서 책을 읽는 시간들이 늘어가던 어느 날, 얇게 슬라이스 된 오이 조각들을 얼굴에 촘촘히 얹고 누워있던 고모는 이제부터는 책을 집에 가져가서 읽어도 좋다고 갑작스레 나에게 말했다. 그 대신 한꺼번에 여러 권을 가져가서는 안되고 한 번에 한 권씩만 빌려 갈 수 있고, 그 책을 다 읽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고 난 이후에 또 다른 책 한 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규칙을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난 후 '이 책들을 너라도 읽어서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덧붙이는 고모의 말이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애매하게 이어졌는데, 당시 국민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고모의 그 마지막 말이 마치 한숨처럼 들리기도 하면서 왠지 모르게 조금 슬픈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그때  슬픈 느낌이 들었는지에 대해서 당시에는 명확히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고모는 남들처럼 대학에도 진학할  없었던 여상 출신의 경리 아가씨였으니,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지적 허영심 채우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돌아치는 현실적인 삶을  수밖에 20 초반 직장인이었던 젊은 아가씨의 체념과 포기의 회한이 담긴 말이었을 듯하다.               


어쨌든 나는 그 시절 고모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읽으며 나의 유년의 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인 '빨강머리 앤' 전집을 읽으며 고아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몽상을 즐기는 주인공 ‘앤’의 상상력에 매료되었고, ‘앤’과 ‘다이애나’의 예쁜 우정에 순수한 감동을 느꼈다. 게다가 당시 니는 막 사춘기의 초입에 들어설 나이였기에 그녀와 길버트의 로맨스에 가슴 설레어했었다. ‘빨강머리 앤’ 전집을 한 권씩 차례차례 정독해 나가다 보니 ‘앤’이 결혼 후 낳은 아들들과 딸들의 삶까지도 이어졌는데,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이 된 1차 세계대전에 ‘앤’의 아들 중 한 명이 참전하여 전사하는 상황까지 전개되다 보니 역사와 세계정세에까지도 호기심을 확장시켜 나가기도 했다.     


한편 나는 세계문학전집을 번호 순서대로 읽어 나갔다. 펄벅의 '대지'는 소설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삼대가 넘는 세대가 교체될 만큼 분량이 많고 길이가 긴 장편소설이어서 읽기 힘들었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 꾸준히 읽어서 완독해 냈었다. 그때는 자연의 재앙 앞에서 굶주림을 못견뎌 아기까지 잡아먹어 버리는 기괴한 장면을 읽으며 끔찍하기만 했고,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그 속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두려워만 하면서도, 이해가 안가면 안가는대로 휙휙 넘겨가며 당시 내 수준에서 소화가 되는 정도만큼만이나마 끝까지는 읽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책을 통해 홍수와 기근에 시달리며 중국인들이 어떻게 살아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중국 문화와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얼핏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어 보았을 때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도 많았는데, 어린 시절에 고전을 접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그 내용을 얼마만큼 잘 소화해 냈던가에 상관없이 책의 가독력과 스토리의 이해능력을 키워준다는 면에서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등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생 시절에 이르기까지 내가 고모의 방에서, 또는 고모의 책장에서 우리집으로 책을 가져와 우리집의 어느 구석진 곳에서, 어딘가에 자리잡고 틀어박혀서 읽었던 책들은 내 정서적 토대를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살면서 여러 번 깨달았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 고모의 방에서 보냈던 나의 유년시절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간 현재 다시 생각해 보아도, 어린 날에 책을 읽는 것은 한 인간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바탕이 되기에 분명 의미로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내 어린 시절 고모의 방은 나에게는 참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공간이었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20대 초반의 어여쁜 아가씨였던 당시 고모의 아름다운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 그림으로 그리라고 해도 그릴 수 있을 만큼 당시 고모의 방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덧 중년의 아줌마가 된 조카인 내가 이제는 할줌마가 된 고모를 만나 옛이야기 나누며, 그때 고모 덕분에 내 유년시절이 참 행복했었다고, 많이 고마웠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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