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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Sep 05. 2021

[책리뷰]-<초원,내 푸른 영혼&나의 삶,나의문학>

*인간의 정체성은 민족과 조국에 근원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독서 리뷰]-<초원, 내 푸른 영혼> &<나의 삶, 나의 문학>     


*인간의 정체성은 민족과 조국에 근원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아나똘리 김 지음, 김현택 옮김)     

(도서출판 뿌쉬낀 하우스)     


몇 년 전에 ‘고려인, 러시아-한반도 종주 자동차 랠리’ 과정을 보여주는 연속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조선말에 우리 한인들이 머나먼 타국인 러시아 땅으로 이주하게 된 기원부터 시작해서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까지 150년이 흐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한인들과 뜻있는 민족역사 활동가들이 손을 잡고 야심차게 추진한 프로젝트였다. 출발지인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각종 기념행사와 함께 의미 있는 출정식을 하고 출발한 고려인 동포들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으로 이어지는, 그 옛날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 경로를 따라 차를 타고 달린 후 북한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한반도를 관통하며 종주하는 랠리 행사를 펼친 것이었다.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 15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뒤돌아보며 우리 민족의 대동단결과 화합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북한을 통과해서 우리나라까지 내려오는 여정을 통해 남북한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희망을 담고 있기도 했다. 그 의미를 좀 더 극대화 시키고자 8월 초에 북한으로 진입하여 광복절인 8월 15일에 38군사분계선을 넘어서 한국으로 들어와 부산까지 도착해 종주를 끝마치는 계획으로 진행된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소수의 인원이 한두대의 차량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매머드급의 참여인원과 다수의 차량 대수로 구성된 랠리 팀이니만큼 진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랠리 현장을 생생한 현장 다큐멘터리로 조명했던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어서 집중하여 보게 되었다. 이런 의미 있는 기획과 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러시아 고려인 연합회의 회원들인 자동차 랠리팀의 팀장과 팀원들을 보면서 강한 민족애를 느낄 수 있는 면면들을 엿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원래 뿌리가 같은 한민족이라는 뜨거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올라오기도 했다. 게다가 이 랠리 팀이 한반도를 관통하는 것이 가능해지게끔 자국의 영토로 입국하는 것을 허용한 북한의 결정도 놀라웠고, 우리나라의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것에 적극 지원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 또한 대단해 보였다. 우리는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깨달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다큐를 통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질곡의 세월을 온몸으로 살아내느라 온갖 고생을 하며 러시아로 이주해 불굴의 의지로 살아남아 자손들을 번성시키게 되기까지 모진 시간들을 거쳐서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동포들의 한 많은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로 연관 다큐나 서적들을 찾아보면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동포들의 슬픈 인생 여정에 대해 연민이 생기면서 그 꿋꿋한 의지가 참 대단하다는 존경의 마음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었다.   

       

그때 러시아 한인들에 관한 자료들을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 [초원, 내 푸른 영혼]과 [나의 삶, 나의 문학] 세트였는데, 이 책의 구입과 완독을 통해 한국계 러시아 작가로서 러시아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우뚝 솟아올라 위대한 문학가로 자리매김한 러시아 이주 한인 3세인 ‘아나똘리 김’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소련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사할린 고등학교, 모스크바 미술대학, 고리키 문학대학을 거쳐 ‘러시아가 낳은 한국계 대문호’라는 명성과 찬사를 받고 있는 위대한 작가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 책 세트를 구입해 찬찬히 읽어보게 되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포스팅하고 싶을 만큼 의미롭게 다가오는 구절마다 밑줄을 치며 포스트잇을 붙이고 읽다 보니 책을 다 완독한 시점에서는 포스트잇의 개수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 많아졌다. 그만큼 책 내용에 빠져들었고 구절구절마다 매료된 부분이 참 많았던 것인데, 이렇듯 ‘아나똘리 김’이라는 훌륭한 대문호를 알게 된 것이 대단히 기쁘기도 했다.

한편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발견하게 된 ‘한민족 이산 문학 독후감 대회’ 포스터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나는 ‘아나똘리 김’ 책 세트를 갖고 있었는데, 그 책이 이 대회의 대상 도서목록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독후감을 쓰고 독후감 대회에 응모도 해보기로 결정하고 다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미 한번 읽은 바 있었던 책들을 재독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완독해 낼 수 있었다. 이번 ‘한민족 이산 문학 독후감 대회’는 5회째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작년에는 ‘아나똘리 김’의 저서인 [초원, 내 푸른 영혼]이, 올해는 [나의 삶, 나의 문학]이 대상 도서로 선정되어 있었다. ‘아나똘리 김’의 자서전과도 같은 이 두 권의 저서는 1탄 [초원, 내 푸른 영혼], 2탄 [나의 삶, 나의 문학]으로 그 내용이 연계성이 있게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의 성격이 있고 함께 세트로 묶여진 구성이라 나는 그 두 권을 한꺼번에 완독하였고, 그 덕에 내용에 대해 더 이해가 깊어지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시간을 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운 좋게도 학창 시절에 세계문학 전집을 접할 기회가 있었던 덕분에 고전문학을 많이 읽었다. 그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나 ‘검찰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대위의 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안톤 체홉’의 단편선과 같은 러시아 작가들의 문학을 통해 러시아 민중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러시아 문학 특유의 솔직하고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고 선명한 특징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광활한 대륙과 강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러시아인들의 정서적 특징이 잘 녹아들어 있었던 것이었으리라 생각되었다.

‘아나똘리 김’의 문학 또한 그런 러시아 문학의 특징과 맥락을 같이 하는 면이 분명 있었다. 그의 저서에서 러시아 문학에 전통적으로 녹아 흐르던 것 중 하나인 ‘강한 민중성’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작가의 특징을 꼽자면 전체주의의 특징을 가진 러시아라는 나라에서 작가로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성의 고귀함을 최대한 잃지 않고 지켜내면서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그의 숭고한 노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아나똘리 김’은 여느 러시아 작가와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면이 확연했는데, 그것은 바로 ‘한인 3세’라는 작가의 근원적인 정체성과 고유성이었다. 그가 러시아 이주 한인의 자손으로서 조선 전기 『매월당집』·『금오신화』·『만복사저포기』 등을 저술한 문인이었으며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조선 전기의 학자 ‘김시습’의 후예라는 본인의 뚜렷한 정체성을 늘 가슴속에 자부심으로 품고 살았다는 점이 매우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아나똘리 김’은 젊은 시절에 미술 학교에 진학했었던 이력이 있었던 만큼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는데, 운명과도 같이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결국에는 러시아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인정받게 된, ‘천상 예술가’로서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가 러시아에서 태어나 자라 러시아 언어로 글을 써서 위대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장편 <다람쥐>, <켄타우르스의 마을> 등을 포함한 러시아어로 된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전세계 18개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 만큼, 그를 훌륭한 러시아 작가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작가의 가슴에는 언제나 ‘한’으로 대표될 수 있는 한국인만의 고유한 정서가 자리잡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아픈 근현대사의 상징과도 같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격동기 시절 역사와 고통의 세월 속에 휘말려 들어가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의 자손으로서 깊이 고뇌하며 꿋꿋하게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그 속에서도 한민족으로서의 고유성을 결코 잃지 않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 끝끝내 빛을 발한 강인한 한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바로 ‘아나똘리 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초원, 내 푸른 영혼]과 [나의 삶, 나의 문학]의 작가 ‘아나똘리 김’은 카자흐스탄부터 시작해 러시아의 농촌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외모도 언어도 러시아인이 아닌 이민자로서 타국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내야만 했던 한인들의 힘든 삶의 현장을 일생을 통해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는 소비에트 연방 시대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군생활을 하며 고귀한 인간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인간이 마치 하나의 기계 부속처럼 취급되는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또한 사회주의 정치를 닮은 러시아 문학계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를 뚫고 러시아 문단에서 최고로 인정을 받아 러시아 현대 문단의 주류 작가를 넘어서 거장으로 자리잡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었다.

마치 자서전을 써내려가듯 에세이 형식으로 기록한 이 책들을 읽으며, 감수성이 예민한 한 예술가가 다이내믹한 삶 속에서도 지켜낸 예술을 향한 드높은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문학에서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겪어나가는 현실적인 인간사의 여정을 통해, 한 인간을 넘어선 한 위대한 예술가가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잃지 않고 지켜내며 살아가려 했던 피나는 노력에 감동을 받았다. 타국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로서 항상 민족적 정체성을 찾아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 속에서 겪었던 가혹하리만큼 고통스러웠던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작품 속에 녹여 냄으로써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은 흥미로우면서도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데 있어서 영혼의 울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최대 기여자로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를 꼽을 수 있다고 했다. 톨스토이의 문학 속에서 인간의 삶 속에 공존하고 있는 공포와 인간성의 말살, 서로를 기만하는 적대감과 잔혹성 등을 비판하면서 인간성 회복의 실마리를 내면의 부활로써 찾고자 애썼던 점이, 작가의 삶에 대한 가치관과 상통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낯선 소련 땅에 내동댕이 쳐지듯이 이주하여 힘들고 외로운 삶을 강인한 의지로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했던 한민족의 후예로서의 그에게는, 러시아 작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한국인의 ‘한’이라는 정서가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러시아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미 충분할 만큼의 그만의 독특함과 깊이로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가는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학식이나 영민한 머리가 아니라 쉽게 증명해 보일 수 없을 만큼 신비하게도 저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강한 기운, 즉 ‘영혼의 힘찬 분출’로 대표될 수 있는 ‘혼’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듯하다. ‘한인 3세’라는 그의 독특한 민족적 배경과 삶의 과정에서 누적된 그만의 특별한 경험들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체득된 자신만의 특이한 깨달음, 그리고 그것을 한 층 더 넘어서는 자신의 고유한 내면적 특성과도 같은 민족성, 인간성, 재능 같은 것들이 작가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의 선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러한 작가의 신념과 통찰을 통해, 몸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나 타국의 언어를 쓰며 살아가고 있지만 ‘한인’으로서의 정체성만큼은 언제 어디서나 잃지 않고 살아가면서 커다란 자부심으로써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감동스러웠다.  

작가가 자신의 문학관을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 개개인의 유일무이한 특징을 탐구하는 작가’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많은 작가들이 어떤 사회적 계층이나 인간들의 부류에 속한 다양한 삶의 형태를 그려내고 있는 것에 반해, ‘아나똘리 김’ 자신은 전우주적인 인간 개개인의 존재성과 휴머니즘에 입각한 삶의 태도를 그리는 것에 더 적극성인 작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인간 그 자체, 그리고 그 개개인의 고유성과 정체성, 그리고 존재성과 근원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섬세하고 예민한 예술가가 조국 땅에서 살지 못하고 타국에 살면서 변화무쌍한 시대적인 광풍의 회오리 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모진 일생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으니, 그런 쉽지 않은 인생에서 예술가로서 타고난 그의 여린 감수성이 상처받고 사그라들지 않을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잘 지켜내면서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삶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혼란한 시대의 광풍 속에서 조국을 떠나 머나먼 러시아 땅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겨우겨우 생존의 기반을 꾸려 놓았는데, 그마저도 스탈린 압제의 격동기를 겪으며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긴 채 황량한 중앙아시아 땅으로 강제 이주되며 또다시 내쫓겨버린 고려인들은 한 많은 역사의 고난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다. 작가는 그 과정 속에서도 타고난 예술적 감성을 잃지 않고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예술혼을 불태웠다. 작가의 자서전과 같은 이 책을 통해 한민족의 슬픈 근현대사를 자세히 알게 되었고,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참 아프게 다가왔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에 의해 낯선 땅 러시아 동부의 사할린에 끌려온 한인들은 4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지만 살이 에이는듯한 강추위가 감도는 척박한 땅에 맨몸으로 내동댕이쳐지듯 강제로 이주한 한인들은 좌절하고 절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니라, 그 불모지의 땅을 한국인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근성으로 근면, 성실하게 일구어내어 뿌리를 내리고 일가를 이루어 발전적인 삶을 이어가며 자손을 번성시켰다. 분명 한국인의 DNA는 다른 어느 민족과도 차별화된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아나똘리 김’의 어린 시절부터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책을 통해서도 그런 한국인만의 강점과 훌륭함을 에피소드 곳곳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 강대국에 치이면서 뼈아픈 시련의 세월을 겪어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고통스러운 역사에 대해, 책을 읽는 내내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만으로 점철된 눈물을 흘리거나 목이 메어 울컥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강인하고 지혜로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불끈 올라와서 뿌듯한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한편 2021년 8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100여 년 만에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고국의 땅으로 모셔오는 일명 ‘장군의 귀환’이 이루어졌는데, 때마침 그 시점에 ‘아나똘리 김’의 책을 읽었던 나는 그 감회가 더욱 특별했다. 너무 늦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봉오동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었던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을 이제라도 조국 땅으로 모셔와 국립 대전현충원에 봉환하여, 그토록 그리워했을 조국의 땅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과업을 수행한 대한민국 정부의 결정과 추진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 통치하며 야만적인 수탈을 일삼고 있던 구한말에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의 포수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조직하였고, 뛰어난 사격 실력을 바탕으로  의병 군대를 진두지휘하며 항일 의병투쟁에 몸을 던졌다. 백두산과 만주 벌판을 종횡무진 누비며 많은 일본군들을 토벌하며 일제에 큰 타격을 주어서, 일본에게는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으며 우리 민족에게는 ‘백두산 호랑이’ 또는 ‘축지법 장군’으로 불리울 만큼 용맹하고 훌륭했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독립운동가가 바로 홍범도 장군이었다. 일제는 그런 홍범도 장군을 체포하기 위해 그의 아내와 아들을 인질로 삼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끄떡도 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홍장군의 태도를 보고 그 가족을 모두 몰살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후로 1910년에 한일 강제병합이 일어나고 일제의 폭압이 더욱 거세지던 시기에 우리나라 안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던 홍범도 장군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연해주 일대로 넘어가 독립군을 양성하고 군대를 조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국에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시기에 북간도에서 ‘대한독립군’을 창설하여 뛰어난 전력으로 함경도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여 일제에 커다란 피해를 주는 작전을 여러 번 수행하였고 커다란 승리를 거두다가 급기야 1920년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찬란한 항일투쟁 중 하나인 ‘봉오동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당시 일제는 신식 무기로 단단히 무장을 한 현대식 군대였고 우리 독립군들을 토벌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시기였는데, 신식 무기도 없던 우리 독립군은 봉오동의 지형을 잘 활용한 뛰어난 작전을 지혜롭게 펼쳐서 일본군을 대패시키고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이 ‘봉오동 전투’의 대승을 기점으로 만주 일대의 독립군들의 항일 독립운동의 의지가 더욱 불타오르게 되었고 이후로 항일 무장투쟁이 더욱더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는 기점이 된 대단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후로 이어진 일본군의 보복전에 대해 힘차게 맞섰던 일제 항거 최대 대첩 중 하나인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에서 또한 ‘홍범도 장군’은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훌륭한 ‘홍범도 장군’조차도 일본군의 대대적인 한민족 토벌 하에서 더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5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그토록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 만주에서 다시 연해주로 옮겨갔고, 소련군의 일원이 되어서 ‘조선군 대장’이라고 쓰여진 ‘레닌’의 친필 증명서까지 받았다는 이유로, 해방 이후 반공을 주창하던 남한에서는 그를 한동안 배척하고 철저하게 은닉했다고 한다. 이 또한 ‘아나똘리 김’의 저서 [초원, 내 푸른 영혼]과 [나의 삶, 나의 문학] 의 배경이 되었던 비극적인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뜻하지 않게 휘몰아치는 삶으로 떠밀려 들어갔던 한민족의 슬픈 여정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그 시대가 함께 중첩되면서 울컥하면서도 의미롭게 다가왔다.           

더욱이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관까지 맡아 일제의 폭압 시절 일제를 두려움에 떨게 하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혁혁한 공을 세운 ‘홍범도 장군’조차도 1923년 군복을 벗고 난 다음 연해주의 집단농장에서 노역을 해야만 했고, 1937년 11월에는 스탈린의 야만적인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떠밀려 나게 되었다. 이후로 극장의 매표원으로 일을 하다가 1943년 10월 25일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초원, 내 푸른 영혼]과 [나의 삶, 나의 문학] 에 등장하는 평범한 한인 민초들의 삶이야 오죽했을까 짐작이 되면서 서글픈 마음에 순간 목이 메어오기도 했다.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으로 선두에 꼽힐만한 홍범도 장군은 조국이 해방된 이후에는 그간의 독립운동의 공을 인정받고 크게 보상받아야 마땅했을 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후 남한과 북한 어느 정부도 홍장군을 챙기지 않고 외면했다고 한다. 공산 정부인 북한에서는 그들의 절대자인 일명 ‘김일성 장군’과 비교될 수 있다는 위험성과 함께, 중국이나 옛 소련에서 그가 ‘공산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민족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한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홍장군을 외면하였고, 당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구호를 외치며 반공을 주창하던 남한에서는 홍장군이 소련군에 들어가 ‘레닌’의 친필 증명서와 선물까지 받았다는 이유로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를 주저하면서 소외시켰다는 것이다. 결국은 남북한 이념대결의 대혼란 속에서 일어난 한민족 역사의 비극의 한 페이지가 추가된 것이었다. 이후로 역사를 재평가하면서 1962년에 이르러서야 우리 정부는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긴 했다고 하는데, 그런 뒤에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가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 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의 품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면서, 조국을 떠난 100여 년 만에 조국의 땅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한다. 한 맺힌 동포의 상징적 의미로서 매우 뜻깊은 일이 실현된 것은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나똘리 김’은 러시아어로 작품을 쓰며 러시아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러시아 문인이지만, 그의 정체성은 ‘한인 3세’로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역경을 생각하면 슬픔과 애절함이 치고 올라오면서, 격동기 세계정세 속에서 휘돌아 치는 회오리바람과 같은 운명에 휩쓸려 뜻하지 않게 조국을 떠나 낯선 땅 중앙아시아로까지 흘러가야 했던 한국인들의 한 맺힌 삶이 애달프다. 그러나 결코 좌절하며 사그라들지 않고, 성실과 끈기, 그리고 뛰어난 지혜와 명석한 두뇌를 지닌 우리 한민족은, 그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가에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의 노력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그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참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국인 대한민국 또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끝에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국이 되었고,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진입하여 여타 다른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BTS’를 비롯한 ‘한류’ 또한 한민족이 얼마나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문화민족’인지를 잘 증명하고 있다. 뜻밖의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펜데믹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슬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방역체계의 훌륭함과 정부 정책에 협조적인 성숙한 국민의식 또한 빛나고 있다.           


이번에 [초원, 내 푸른 영혼]과 [나의 삶, 나의 문학]을 다시 한번 완독하면서 ‘아나똘리 김’이라는 탁월한 문인의 삶을 통해 한민족의 뚜렷한 정체성과 우리 민족의 강인한 기상, 그리고 지혜롭고 명석한 두뇌를 활용해 세계 어디에서나 그 뿌리를 잘 안착하며 살고 있는 한민족의 끈기, 문화적으로 특별한 코드를 갖고 있는 예술적인 DNA를 발견하게 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불끈 솟구칠 만큼 행복감이 느껴졌다. 굴곡이 심했던 삶 속에서 힘들고 모진 갖가지 경험을 하면서도 타고난 예술가로서의 ‘섬세하고 예민한 정서’를 섣부르게 놓쳐버리지 않고, 운명과도 같은 자신의 삶을 잘 인식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고려혼이 내 작품의 뿌리다. 조국을 등진 삶의 응어리가 핏속에 흐른다’라고 말한 ‘아나똘리 김’에게 깊은 존경을 표하며 결코 쉽지 않았던 그의 인생 여정에 대해 커다란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

특히 ‘평생을 자기가 태어난 마을에 살며 이웃 마을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에 귀 기울일지어다.’라는 어느 중국 철학자의 가르침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수록 큰 공감이 느껴졌다. 즉, 어린 시절을 보낸 환경과 풍광의 기억,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의 경험이 그 사람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정서적 바탕으로 녹아져 일생을 통해 유유히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20세기 초 조선 땅을 뒤로하고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이주했던 나의 할아버지 김기영 씨와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목표는 남의 하늘 아래서 한민족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한 인간의 정서적인 정체성은 그의 몸이 어디에 있던지 간에 상관없이, 그의 민족과 조국에 정신세계의 근원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숙명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편 그리스어로 ‘동방의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이름의 ‘아나똘리 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생겨서 검색을 해 보다가, 작가가 조국의 산천을 늘 동경하고 그리워하며 살았으며 러시아의 대문호가 된 이후에 대한민국 땅으로 옮겨와 그의 집안 선조들의 얼을 간직하고 있는 동해안 강릉 지역을 찾아가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는 후일담을 확인하게 되었다. 일생을 그토록 간절히 그리워하던 조국의 땅을 방문한 그 순간에 한국의 동해 강릉 고향 땅에 겹겹이 쌓인 산비탈 밑의 논두렁길과 개울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향긋한 초록빛 풀 내음을 한껏 들이키며 당장이라도 풀썩 주저앉아 목놓아 울고 싶을 뿐이었다던 작가의 고백에서, 러시아인이 아닌 한민족이라는 자신의 근원적인 정체성을 찾아서 일생을 통해 심리적 방황을 경험해야 했던 그의 깊은 고뇌가 느껴져서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였다.      

나는 [초원, 내 푸른 영혼]과 [나의 삶, 나의 문학]을 읽으면서 작가로서 너무도 완벽한 그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표현력과 아름다운 필력이 감동스러워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경외감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특히 [나의 삶, 나의 문학]에서는 예술가로서 운명적으로 안고 가야 할 필연적인 고독과 고통에 대해 작가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표현하였는데, 큰 공감이 되면서도 한 예술가의 인간적인 그 외로움을 상상하니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민족의 비극적 역사라는 관점과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여러 지점에서 감동을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글을 써내려가는 뛰어난 표현력을 지닌 작가로서의 훌륭함에 존경심이 생겨서 대문호 ‘아나똘리 김’에게 팬심이 가득해졌으니 아마도 앞으로 ‘아나똘리 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게 될 듯하다.


추가적으로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느껴져서 꼭 언급하고 싶었던 점이 있었는데, 작가가 러시아어로 쓴 책을 한국어로 다시 옮긴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적으로 어색한 구석이 전혀 없이 작가의 문학적 표현력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시종일관 떠나지 않았던 만큼, 이 책의 번역자 또한 문학적으로 감각이 탁월한 실력자라는 믿음이 들게 한 섬세하고 훌륭한 번역 또한 매우 서정적으로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끝으로 [초원, 내 푸른 영혼]과 [나의 삶, 나의 문학] 에 나타난 ‘아나똘리 김’의 삶을 통해 되돌아볼 수 있었듯이, 나라가 굳건하게 지켜지지 못해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내동댕이 쳐져서 처절한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했던 우리 한민족의 아픈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다짐과도 같은 경각심도 느끼게 되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진리를 가슴 깊이 되새기며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다시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라를 빼앗기지 말 것이며, 더 나아가 세계를 주도하는 부강한 국가로 더더욱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이기심을 내려놓고 합심하여야 할 것이다. ‘개인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려면 ‘굳건하고 강건한 조국’이 든든하게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의미로운 구절]     


<초원, 내 푸른 영혼>

p15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나는 늘 색깔과 선, 그리고 예술적 이미지를 생각한다. 우리 영혼의 세계는 신이 우리에게 준 예술의 박물관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마음속에 여러 그림들로 가득 찬 화랑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살아 온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나는 완성된 그림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p16

한 사람의 마음은 그가 어린 시절에 본 주변의 경치에 의해 형성된다. 또 그의 마음은 이 경치를 닮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 법.     


p21~22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것, 흘러간 세월은 공허 속으로 모든 사물과 사건, 기쁨과 슬픔을 삼켜버린다. 남아 있는 것은 기껏해야 기억 속에 어슴푸레 떠오르는 그 무엇, 바로 모든 일들이 일어난 배경에 있는 이 지상의 공간뿐이다. 사람들이 웃고 울고 태어났다가 사라져간 그런 공간 말이다. 이처럼 과거란 존재하지 않지만 기억 속에서 그것을 꺼내어 환상이라는 재료를 사용하면 어떤 구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모든 개개인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으레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이었든 우리는 그 알 수 없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p25

두려움을 털어버리고 희망을 갖고 살려면 우리는 아주 작지만 따뜻하고, 또 사랑스러운 그 무엇을 필요로 한다.     

p26

정든 고향을 떠나 넓은 세상에 나가면 누구든지 새것을 얻기 위해 옛것을 잃게 된다.    


p43

물질적 부를 축적함으로써 행복을 얻는다는 게 그리 믿을 만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p45

몇 백 년 전 이 지구상에 단 한 명의 인간도 살지 않던 때에 이 세상에 태어난 거인 같은 산들 앞에 서면 인간은 너무나 작고 하찮은 존재이다.     


p67

사람들은 대부분 신이 계속 인간들 가운데 누군가를 부단히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 이러한 신의 창조작업이 한순간도 중단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현재의 상태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그들 안에 있는 어떤 것도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각자 죽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믿으려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갓난아기로 울며 태어난 후 곧 맹렬히 삶이라는 경주에 뛰어든다.

그러나 심한 질병으로 찢어지는 듯한 가슴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면, 어는 날 밤 갑자기 크게 뜬 두 눈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면서 자신의 타고난 미완성의 운명을 깨닫게 된다. 모든 삶이 다 지은 집 마냥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죽은 영혼을 사로잡는 하나의 허상이다. 자신을 속박하던 삶의 매듭이 하나씩 풀릴 때, 그제서야 사람들은 놀라운, 이상한, 그리고 비관적인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알고 보면 아무리 걸어도 끝까지 가지 못하는 법이니,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끝까지 못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p68

내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살다 떠나온 땅의 자연과 그곳 풍경일 따름이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으니 내 운명의 각 장면을 이루는 세상 여러 곳의 그림들이 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그리고 영화 역시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p75

인간 모두의 영혼 속에 숨어 있는 하나의 중요한 질문, 즉 “내가 사랑하듯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이 질문은 우리 존재의 기초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 예를 들면 다른 사람, 자신의 운명, 자신의 삶, 그리고 신과 관계된 것이기도 하다. 그때는 지금의 나처럼, 우리 존재의 중요한 조건을 뚜렷하게 규정할 수는 없었지만(사실 그럴 수 있으려면 평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어린 가슴은 이 고통스러운 비밀을 살며시 감지하기 시작했다.     


p84

나는 혈관 속을 흐르는 피뿐만 아니라 골짜기를 흐르는 강물처럼 내닫는 실제의 삶 역시 인간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p93

나는 사랑하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울 때는 두려움 없이 무슨 일이든 끝까지 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누군가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어려운 일에도 겁 없이 기쁜 마음으로 정면 대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p102

그러나 무엇을 주제로 삼든 상관없이 내가 쓴 모든 작품의 냉용에는 변함없는 하나의 원칙이 스며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늘 한국적 세계에 속하는 인간의 영혼세계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로서 나와 같은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것이 그렇게 기쁘고 고마운 일일 수가 없다.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통해 나는 수많은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 큰 유산의 작은 부분들만 활용하는데 그쳤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물려받은 모든 정신적 유산을 내가 마음껏 구가하는 것을 억누를 실제 삶의 제약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한’ 즉 가슴속에 몰래 감추고 있던 꿈들 가운데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깨달은 한 인간의 섬세하고 예민한 인식 태도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p108~109

20세기가 진행되면서 거대한 땅 러시아에서는 수많은 극적인 사건들이 전개되었지만 이전부터 내려오던 문화적 유산은 이 민족의 정신적 힘인 든든한 주춧돌로 늘 남아있다. 그 어느 정치집단도, 방향감각을 상실한 지도계층 집단도 이 풍요로운 유산을 앗아가거나 탕진할 수는 없었다. 뿌쉬낀, 레프 똘스또이, 도스또옙스끼가 후손들에게 물려준 이 유산은 그 어느 누구도 약탈할 수 없는 러시아 민족의 영원한 가치인 것이다.     


p119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 뒤돌아보면 인생이란 늘 운명의 장난이었다. 나의 모든 삶은 가장 값진 과정을 거쳐 내가 본격적인 작가가 되도록 예비되어 있었다. 평탄한 무지갯빛 삶뿐만 아니라, 인생의 또 다른 뒷면도 아는 그런 작가가 되도록 말이다.     

요컨대 나는 삶의 가장 낮은 바닥부터 초연히 우뚝 서 있는 최정상까지 이르는 인생학교를 다녔다.  


p145~146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자유와 순수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진지함이 있었다. 고의로 나쁜 일을 저지른다는 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 후에도 삶이 나에게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강요한 것은 여러 차례 있었다. 매번 상황을 잘 헤아려 발을 헛딛지 않고 자신을 제대로 가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비양심적인 삶을 증오하고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기본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혐오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나는 줄곧 버리지 않았다.     


p153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조직화된 악의 위력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 있는 사람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전체주의의 위협은 보편화된 불행 속에 사는 사람들을 완전히 소외된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p177

창작을 하며 사는 삶, 이것 역시 양심적인 삶이다. 화가나 작가도 모든 희망을 오직 자신의 양심적인 작업에 건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와 비슷하다. 자신의 형에게 쓴 여러 통의 편지에서 자기 자신을 노동자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싶다고 한 위대한 화가 반 고흐의 견해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고 또 그 깊은 의미를 공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p181~182

추악함 앞에서 아름다움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을 따로 간직한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할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내 마음에 찾아들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아름다움을 이 막강한 악의 힘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하늘에 계신 신이 이 아름다움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그때 어찌 알았겠는가?     


p183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굳이 예술 창작에 몰두하여 그것을 천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만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다. 자신의 의지나 지혜보다 훨씬 강한 그 어떤 힘이 충만하여 책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예술가는 비로소 모든 것을 무릅쓰고 창작에 매달려 이상한 꿈과 흡사한 그런 삶을 사는 모험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p194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사는 것은 더 이상 삶이 될 수 없다     


p195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살던 시기를 여러 차례 경험한 민족은 점차 삶의 맛을 잊게 되고, 인생의 여러 가지 축복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모든 것을 포기한 가난뱅이의 궁핍한 삶을 살게 된다.  


p209

우리는 신의 형상을 따라 순수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악의 힘이 팽배한 세상에 살면서, 바꾸어 말하면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는 원래 본성을 타고난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p216

예술이나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실용주의자의 의식과는 다른, 변형된 어떤 독특한 의식이다. 내면적인 현상인 직관적 상상력과 환상에 의존하여 외면적 대상인 그림을 그리다 보면 화가의 정신세계는 필연적으로 계속 분열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런 분열 상태에서 둘 사이의 경계선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끊임없이 여행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목표 지점을 찾는 데 필요한 확실한 이정표 하나도 없이 말이다.     


p231

우리가 시와 소설을 쓰는 것은 쓸데없는 허영심이나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 분명, 그렇지 않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원사가 어느 날 우리 가슴속에 몇 개의 푸른 싹이 돋아난 조그만 줄기를 접목시켜 주면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정원사는 누구의 마음속에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지를 반드시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이것을 발견할 수는 없으니 그저 내게 일이난 일을 곰곰이 생각하여 담긴 뜻을 깨우칠 뿐이다.     


p266

한 작가로서 또 직적인 호기심이 강한 한 개인으로서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뒤돌아보며 이 세상에 사는 모든 개개인이 운명으로 타고난, 그 신비로운 신의 섭리가 삶 속에 발현되는 과정을 가늠해 보는 일이다.     


p285

군대에 들어가 사병 근무를 하면서 체험한 나의 경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같이 추한 것들 뿐이었고 그 안에 어떤 신비로운 요소도 없었다.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라야 익명의 조직이 개개인에게 가하는 무감각하고 잔인한 폭력뿐이었으니까.

타인의 자유와 삶을 파괴하려 드는, 또 실제로 파괴하는 힘인 군대와 관련된 모든 것, 즉 군대 자체, 군대식 생활, 그리고 전쟁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레프 똘스또이 같은 천재적인 예술가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다 해도, 번뜩이는 기지와 빼어난 솜씨가 넘치는 멋진 묘사라고 해도, 사실 그것은 철저한 거짓에 불과하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은 어떤 아름다움도 그 안에 담아낼 수 없으니, 죽음이 그렇듯이 그것 역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추한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303

러시아 문학 전통 속에는 감옥이나 감방 혹은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삶을 다룬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도스또옙스끼의 <죽음의 집의 기록>, 체호프의 <사할린 섬>, 솔줴니쯔인의 여러 작품, 그리고 샬라모프의 <꼴르이마 이야기> 등이 바로 그런 예들이다. 전 국가적인 노예상태, 국민에 대한 감시, 무자비한 강제노동, 냉혹하고 비정한 인간관계, 이런 모든 것들은 그저 문학작품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감옥과 강제수용소가 국가조직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던 러시아의 기이한 운명에 대한 치밀하고도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었다.


p308

‘살인하지 말라’고 성경에도 쓰여 있듯 얼핏 보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때가 20세기 후반이었다는 데 바로 문제가 있었다. 20세기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 중요한 기독교 계율은 유물이 되었고, 인간에게 다른 인간을 살해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세계대전, 죽음의 포로수용소, 대규모 인종학살, 일본의 두 도시를 파괴한 핵폭탄들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는 이미 살인은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답변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는 평화를 경멸하고 거부했다.   


p310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실 하나의 중요한 동기에서 시작된다. 살인자는 마치 장기를 두면서 말이 ‘죽는’ 것처럼 남의 목숨을 빼앗으려 든다. 온전히 살아남아 자신이 생존하려면 아무런 의지도 없는 장기판의 말도 다른 말을 ‘먹어치워’ 버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쩌면 크고 작은 모든 장기의 말들이 처해 있는 공통된 운명인지도 모른다.   


p311

생명력 있고 진실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남의 것을 탈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양보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비록 희생양이 될지언정 징벌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술가는 창작의 토대가 되는 무수한 신비로운 이미지들을 위해 생존권을 양보하는 존재이다. 예술가의 영혼이 존재를 위한 양식을 얻는 원천은 자신의 사회적 생산품이 아니며 자신의 소유물도 아닌 그 어떤 다른 무엇이다.     


p325

20세기를 살고 있는 수억에 달하는 인류 역시 자신의 모습을 상실하고 이와 유사한 그림자로 변해 버렸다. 그들의 외형상의 존재는 환영과 같다. 개인의 자아는 완전히 상실되었다. 그 결과 한 인간이 있던 자리를 그림자가 대신 메우고 있는 것이다.

소외의 징후가 나타나면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그림자가 되어 버린다. 특히 우리 인간, 20세기의 인간은 운명에 의해 결정된 이 현실 세계에서 때로는 영혼을 상실한, 공허한 존재로 서 있을 뿐이다.     


p327~328

유명한 러시아 시인 마리나 쯔베따예바가 자신의 시에서 쓴 것처럼, 나는 “비인간적 존재들이 우글거리는 정신병원의 삶”을 원하지 않았으며 또 “들판의 늑대들과 함께 울부짖는”것도 거부했다. 그때 군대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반대로 나는 자신의 시대에서 벗어나, 두 눈을 크게 뜨고 온 몸을 꿈속으로 내던진 채 약속된 새로운 왕국인 아름다운 ‘시의 나라’로 비행하는 법을 익혔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그 시절에 나는 많은 시를 썼다.     

자신이 속한 역사적 시간에 그저 위치하는 게 목적이라면, 사람은 그저 그 시기에 태어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그 시대의 인간”이 되려면 이 시기를 상당 기간 살면서 하나의 인격체로 완전히 성장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동양적 인간,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이라고 불리는 어떤 철학적 우수 같은 것을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한국 사람인 나는 러시아어로 쓴 자신의 시와 산문 속에 영혼을 담으려 했다.   


p331~332

작가의 길을 가면서 거쳐야 할 최초의 관문들을 통과하면서부터 이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목숨을 끊고 싶은 순간을 여러 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위대한 고독만이 나를 진정한 작가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때마침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군대를 제대해 온갖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결코 잃지 않았다.     


p335

그 마을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고, 또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신 있는 걸음으로 아무 걱정 없이 이 낯선 마을을 향해 걸었다. 그 순간 내가 선택한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게는 어떤 의심도 들지 않았고, 이 세상을 살면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마른 들풀과 바스락거리는 다람쥐, 질주하는 말처럼 움직이는 회오리바람이 함께 존재하는 이 초원지대가 내 자신의 영혼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이 메마른 땅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는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두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들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높은 하늘을 유유히 맴돌고 있었다. 그래도 초원은 늘 고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것이 초원이 타고난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 초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왔다.



<나의 삶, 나의 문학>     


p47

나는 고집스럽게 많은 글을 썼고, 지금도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 글쓰기는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단순히 사는 방법을 탐구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p48~49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은둔 생활을 하던 시절, 내 영혼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킨 소설가 레프 똘스또이였다. 한국의 옛 시인 김시습의 후예로 소련 땅에 떨어져 외로운 삶을 살고 있던 나 자신을 포함해서 똘스또이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삶의 적대감, 잔인성, 기만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거부하며, 세상의 질서가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사회의 외면적 공간보다는 오히려 개개인의 내면세계 안에서 찾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교훈성이 강한 똘스또이의 여러 철학 논문 가운데 특히 내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는 삶의 부당성을 비판한 것이었다. 남의 삶을 단순히 자기 삶의 수단으로 사용할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한 개인이 타인을 단지 자신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경우들을 예나 지금이나 수없이 보고 있지 않은가?     


p51

아무도 모르는 모스끄바의 한 변두리에 있는 건설 현장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쪼그리고 앉아 원고와 씨름하면서, 나는 삶의 참뜻과 또 그 깊고 신비로운 행복을 체험했다. 당시의 내가 진정한 의미의 작가에 가장 가까웠다고 말하는 것은, 그 시절에는 글 쓰는 일 이외의 어느 것도 내게 소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61~62

자신의 똑똑한 머리나 높은 학식을 자랑스레 떠들어대는 것은 문학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어떤 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힘찬 분출이다. 그것이 도대체 어디에서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는지 알 수도, 또 알 길도 없다. 요컨대, 작가가 되기 위한 어떤 학습과정이나 학교도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신성한 영혼만이 시인과 소설가를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교육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자면 사람은 의당 어떤 내면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할 텐데, 그게 바로 재능이라 불리는, 신이 내려 준 선물인 것이다.     


p139

나는 작가가 책을 쓰는 일은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시, 단편소설, 장편소설 등과 같은 문학 작품들은 사랑과 영적인 정열에서 탄생하는 기이한 존재들이다. 그 작품들은 자신만의 이름과 유일하면서도 위대한 운명을 부여받는다, 완성된 책은 반드시 출판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산아가 될 수밖에... 그렇다. 하지만 내 자식과 같은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왜 그리도 힘들고, 더럽고, 또 치욕스런 일들이 많았던가!   


p170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던 강하고 끈끈한 작가적 형제애를 느껴보려고 작가 클럽을 찾아가곤 했다. 남들로부터 고립되지 않고서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시와 영감을 받은 소설을 쓸 수 없는 외로운 팔자를 타고난 까닭에, 시인과 소설가들은 글을 쓰지 않는 한가한 시간이면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p171~172

동료 작가들과 마음을 터놓고 따뜻한 정을 나누려고 작가 클럽을 찾았지만, 내가 거기서 경험한 것은 오히려 침울하고 냉랭한 소외감과 전보다 나를 더 강하게 압박해 오는 외로움뿐이었다. 특히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 다음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엄습해 오는 그 허탈감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때야 비로소 사람들이 그렇게 집요하게 알코올과 마약에 매달리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형제애를 느끼기 위해 사람들에게 매달려 보았지만 모든 게 허망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원래 유약한 존재인데다가, 또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형제애 같은 것은 아예 있지도 않았고, 또 있을 수도 없었다. 하나의 결사가 가능한 것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형제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공통된 것을 사랑하거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쩨데엘을 드나들던 우리 작가들이 함께 찾아 헤매던 것은 원고지 뒤로 슬며시 모습을 나타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이었으며, 또 우리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던 대상은 외로움이었다.     


p177

나는 왜 책을 쓰는 것일까? 우선은 지루해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알코올이나 마약의 도움 없이 괴로움과 우울함에서 벗어나, 그리고 사는 것이 따분하다고 엉뚱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서 말이다. 요컨대 지금까지 내가 일관되게 간직하고 있는 예술 및 창작관은, 문학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러시아의 일부 급진적 비평가들이 주장했던 사회 전체 또는 민중 전체의 구원 수단으로써의 예술보다는 개인적인 구원 수단으로써의 예술인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지혜와 영혼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작가가 어느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굳게 믿고 있다. 자기 자신의 영혼 세계에 기초하여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 작가의 일이고 보니, 그가 인간의 영혼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정확하고 조화롭게 조율된 한 개인의 영혼세계는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인간 세상보다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영혼이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은 외형을 갖고 구체화되는 인간 세계로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혼을 소독하고 청소하는 일에는 작가가 기여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또 그러자면 철두철미하게 진실해질 필요가 있다. 그게 어디 예삿일인가?


p192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 가운데 하나는, 어떤 존재가 탄생하려면 반드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을 하려면 사랑의 대상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농촌에서 나는 러시아 고유의 영혼을 두 눈으로 응시하고 깨달을 수 있었으며, 또 그것을 가슴 절절하게 사랑했다. 그 결과 완전한, 나만의 예술언어가 탄생했다.     

p238

아름다운 것은 사악할 수 없으니 그것은 선한 언어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 창작은 그 최초 단계에서 바로 이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그다음 단계에 가서야 비로소 다양한 형태의 민족 언어로 번역된다고 추상화해볼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은 신이 내려 준 재능을 타고난 예술가 각자의 영혼 깊숙이에서 신비롭게 진행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들 역시 정신적 특징 속에 자기 민족 고유의 여러 징후들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다.     

각 개인은 이와 같은 민족 고유의 특징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산물인 공통된 의식과 심리 상태에 근거한 사회 관습과 특징도 지니고 있다.     


p239

지상의 모든 사람들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이 유일무이한, 결코 반복되지 않는 그 무엇은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픔, 그 커다란 슬픔의 근원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바로 그 순간부터 이 슬픔은 이미 드리워져 있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결코 되풀이되는 법이 없는 완벽한 독특함이라는 이름을 가진 슬픔이다.     

이 처절한 실존적 슬픔 역시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전 인류문명의 근원적 언어, 바로 그 소리 없는 말씀인 것이다.     

p240

작가로서 나의 관심은 각 개인마다 갖고 있는 유일무이한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민족의 이름을 앞에 내걸고 행동하지도 또 내가 쓴 글이 어느 특정 민족 문화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소설 속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각 개인의 인종적, 심리적, 사회 문화적 기반이 아니라 그 인물의 영혼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그 무엇이었다. 작품들은 이 우주적 고독 속에 스며드는 슬픔이 가득 배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떠돌이여서가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우주의 방랑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을 나는 글 속에 담고 싶고, 또 그것이 내 운명이라 생각했다.     


p245

내 문학관을 압축하면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 표현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창조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또 각 개인의 내부에는 독특한 정신적 체험의 비밀이 자리한다. 그런 내적 체험을 판에 박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 단 한 번 왔다가 떠나가는 인간 주체 그 한 사람만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삶 속에 묻어 있는 갖가지 감정과 고뇌의 망망대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 개인이 경험하는 유일무이하며 독특한 고뇌와 느낌, 매 순간 번개치듯 나타나는 영혼의 떨림과 마음의 상처를 섬세하게 더듬어 가는 일은 온몸을 던져 평생 매달려도 좋을 정말 흥미진진한 작업이라 믿고 있었다.     


p287

각 개인은 곧 인간 전체이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하면서 내가 도달하게 된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저마다 타고 난 두 개의 운명 가운데 하나는 출생과 사망이라는 두 시점으로 둘러싸인 ‘작은 나’에 속하고, 또 하나는 인류 전체의 운명과 연결선상에 있기에 인류에게 부여된 태초부터 종말까지의 시간 전체를 포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삶과 운명이 지니는 이러한 이중적 의미를 발견하고 난 다음부터 나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지구 저쪽 편 끝까지 달려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지구상의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p288

“평생을 자기가 태어난 마을에 살며 이웃 마을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에 귀 기울일 지어다. 허나 결코 그곳을 찾아갈 일은 아니라.” 라는 내용의 오래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중국 철학자의 가르침도 이와 비슷한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p292

20세기 초 조선 땅을 뒤로하고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이주했던 나의 할아버지 김기영 씨와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목표는 남의 하늘 아래서 ‘한민족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동방의 한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아주 먼 옛날부터 세계 여러 곳의 큰 나라들을 향한 불타는 가슴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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