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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ul 14. 2021

[일상의 단상]-<인간과 자연>

*인간도 자연의 일부였다.*

[일상의 단상]-<인간과 자연>

*인간도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단상]


이름도 예쁜 ‘문학산’에 올랐다.

산세가 험하지 않으면서도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평평한 둘레길을 자박자박 걸으며 지루해 질만 하면 조금씩 다이내믹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어진 산길이 걷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나같은 산행 초보가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발을 들여놓아도 내치지 않을 만큼 대체로 걷기에 완만한 길이 이어지는 것이, 어느 누가 찾아가도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 줄 듯한 편안함을 주는 산이었다.

나에게 등산 취미가 있지는 않기에 산을 자주 찾게 되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오늘처럼 함께 동행할 산행 동무들 덕분에 산에 오르는 날이면 나오기를 참 잘했다는 뿌듯한 행복감을 만끽하게 된다.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양질의 휴식과 힐링을 제공해 준다는 면에서 산은 마치 자애롭고 포근한 엄마와 같다. 이름 모를 들꽃과 갖가지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으로 이끌어주는 산길을 걸어가노라면, 이모저모 내가 잘 모르는 흥미로운 그 무엇을 새롭게 보여주며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 마음 넉넉한 친구 같기도 하다.


자연은 사람이 인위적인 힘을 보태어 세상에 내어놓은 그 어떤 것들과는 분명 다른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산, 강, 바다, 하늘, 동식물, 햇빛, 비, 바람....’

자연의 모습은 그 형태에 있어서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생산물들과는 그 근원부터가 다른 자연은 본디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거나, 인간이 알 수 없는 우주의 어떤 기운에 의해 저절로 생겨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종교인들이 ‘하느님’에 의해 만들어진 위대한 피조물의 대표격이라 믿는 인간을 비롯해 대자연 또한 절대자의 작품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사람에 의해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자연은 충분히 편안함을 주는 듯하다.


어쩌다 코로나19라는 뜻밖의 팬데믹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지만, 우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국내외 여행을 하며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호시절을 분명 살았었다.

나는 허리가 안좋아서 비행기를 오랜 시간 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늘 있었고, 선천적인 저혈압으로 인해 비행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생체리듬상 좋지 않았던 이유로, 몇 박을 비행해야 할 만큼 먼 곳보다는 이동거리가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을 더 선호했었던 것 같다.

예전에 가보았었던 여행지 중에는 홍콩이나 싱가폴처럼 도시화의 절정에서 고층빌딩숲과 화려한 쇼핑천국인 번화가 거리가 인상적이었던 곳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와 찬사를 보냈던 곳은 자연환경이 경이로웠던 곳이었다.

특히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을 꼽으라면 장가계(張家界)나 계림(桂林)과 같이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대자연의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그 스케일과 아름다움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감탄했던 곳이다. 지구상 어느 곳의 환경이 이렇듯 웅장할까 싶게 거대하고 어마어마했던 자연의 원모습에 압도되어 경외감마저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것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하늘과 땅과 물과 숲 등 자연의 근원적인 이미지를 강렬하게 느꼈었고, 그 감동이 상당히 컸었기에 당시의 감상을 어떤 식으로든 남겨두고픈 의욕이 솟구쳤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곧이어 휘돌아치는 현실적인 일들에 곧바로 적응하느라 그 여행의 리뷰를 짧은 글로도 남겨두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아마도 언제고 그곳으로 또다시 여행을 가서 좀 더 여유롭게 그 대자연과 재회하고 그 아름다움을 만끽한 후, 한층 깊고 밀도 있는 감상을 남길 거라며 나중으로 미루면서 여유로운 마음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어쩌다 들이닥친 뜻밖의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삶의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들을 겪게 되었다. 그중 가장 큰 제약은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쉽게 못떠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한들 이제는 자유롭게 비행기를 탈 수가 없는 슬픈 현실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일상의 모습들이 이제는 끝없는 기다림과 인내의 연장선상에서 위험도까지 감수해야 하면서 어렵게 얻어내야 하는 조건부의 희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해버린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중 하나가 산에 오르게 된 것이다. 기껏해야 동네 공원 산책 정도나 하던 내가 둘레길을 찾아 걷게 되고 때때로 등산도 가보게 되었다.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제약이 따르는 기간이 너무 길게 이어지다 보니 그 답답함이 켠켠히 쌓여 갈 때쯤, 산행 친구님들의 제안으로 등산할 기회가 생기면 마다하지 않고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도심을 떠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덧 평화로운 정서가 올라오고 기분도 리프레쉬되어 한층 안정이 되었고, 그러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기회가 되었으니 자연을 벗삼아 걷는 것이 참 감사한 시간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등산 고수들과 템포를 맞출 만큼이 되지 않는 ‘등린이(등산어린이)’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두 번, 세 번... 산에 오르는 시간을 늘려가다 보니 등산과 걷기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


오늘 ‘문학산’에는 세 명의 길동무님들과 함께 동행하였다. 한 친구는 전국 100대 명산을 종주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품고 있을 만큼 산행 경험이 풍부한 등산 고수였고, 또 한 친구는 건강증진을 위해 등산과 걷기를 이제 막 시작해 보려 한다고 하니 운동 구력이 거의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등산 고수 친구님의 리딩 덕분에 초행인 산행길을 헤매이지 않고 잘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생생한 안내를 받아 가면서 함께 걸었다. 등산길에 동행한 산행 친구님들과 숲길을 걸으며 다양한 소재를 소환해 와서 산길에 흘려보내듯 자연스레 많은 수다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이나 살고 있는 환경, 가족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마다 걸어온 길이 달랐던 만큼 서로 다른 경험들을 다채롭게 갖고 있다는 것 또한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기혼은 기혼대로, 미혼은 미혼대로, 그간 살아온 경험을 포함해 현재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들이 있었다. 길동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일이 결코 녹록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놓을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심리가 되는 것도 아마도 자연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현대인들은 긴장하며 서로를 경계하고 사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렇듯 마음의 빗장을 풀고 평안한 마음이 되어 솔직하고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은 평화로운 대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인간 또한 그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 갈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문이 터져서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며 끊임없이 수다를 이어가다가 문득 어느 한순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말수가 확 줄어들었다. 그때가 바로 언제냐 하면, 어김없이 오르막길에 접어들어 숨을 허덕거리는 그 순간이었다.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듯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에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허덕허덕거리며 죽을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걷기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말을 할 여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내 곧 평지가 나타나고, 살짝 내리막길도 찾아왔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서 뭔가 심심할 만하면 또다시 오르막이 펼쳐진다. 산행길에서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는 이런 반복되는 과정들은 흡사 다이내믹한 우리 인생과 닮았다.


생각해 보면 대자연은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번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개발붐이 일면서 자연을 무차별하게 무너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그린벨트’를 설정하기도 하는 등 나름의 노력도 해왔지만, 그 또한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자연보호구역을 해제해 버리면서 자꾸만 자연을 잠식해 들어가는 무모한 잘못을 저지르며 살고 있다. 그렇게 자연을 파괴하는 일들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로 인해 사막은 더욱더 건조해지고 비가 많이 오던 지역은 더욱더 폭우가 심해지는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이상기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급기야 우리 지구인들은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판데믹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고,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제약을 받으며 인간이 이렇게 삶을 지속해 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염병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생활 속 ‘거리두기’를 해야만 하는 현실을 한번 비틀어 생각해 보면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자연이 재생할 시간을 주어야 하듯, 사람들 간에도 서로 거리를 두며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재정비할 시간을 각자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쉬어가며 회복해야 차차 상생할 앞날을 기약할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을 듯하다.


오늘 ‘문학산’ 산행을 하면서 초록초록한 식물들에 매혹되다가 저 멀리 재빠르게 뛰어가는 청설모를 발견하고 즐거워하기도 했고, 어느새 고요한 숲 속을 채우고 있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도 가졌다. 늘 그 자리에 있기에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었던 대자연은, 그 속으로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어느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뭇잎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잎맥이 신기하기도 하고 자생적으로 피어난 들꽃들의 아름다움이 환상적이기만 하다.

이렇듯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꼈던 그 순간에는 조물주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면서 신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산길에서 만난 인간의 모습 또한 그렇게 대자연에 녹아든 자연의 일부임에 틀림이 없었다.


문득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가 했다던 말이 생각난다.

‘생명이란 환경에 대해서 작용하는 행동을 통하여 자기를 갱신(更新) 해 나가는 과정이다.’

인간의 탐욕이 심해질수록 자연환경이 파괴되면서 지구와 인간이 갈등을 일으키는 단계가 되었고, 급기야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판데믹 상황에 빠져 허우적대는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어리석은 인간이 당장 편한 것들만 추구하고 욕심을 부려대다가 그 과욕이 환경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결과로 재앙에 가까운 오늘날의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그동안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기보다는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오판하고 오만방자한 실수를 반복했던 인간들은 뒤늦은 후회와 반성도 하게 되었다.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려면 인간 스스로 반성하고 변해 나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곳곳에서 내고 있다. 그래야만 생명을 유지해 나가면서 공생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그 끝을 알 수 없이 광활한 은하계의 수많은 행성들 중에 하나일 뿐인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생명체인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인간의 편의만을 위해 늘 하던 대로 하고 살면서 자연을 병들게 하다가는 결국은 인간 또한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인 듯하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생활화하는데 올인해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의 끝에서 허덕거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질 어떤 방법이라도 모색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인간의 속성이 고맙기도 하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자신도, 지구의 모든 생명체도,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생명과 죽음의 갈래길에서의 향방을 결정하게 할 것이란 걸 잊지 말아야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평소 도심의 빌딩 숲에서 생활할 때에는 늘 하던 대로 테이크아웃 커피컵을 아무 생각 없이 손에 들게 되는 게 일상이었고, 새로운 현실인식이 잘 안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처럼 뜻밖의 산행길에서 만난 아름답고 경이로운 대자연 속에서는 그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왔던 자연에 대한 색다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고, 더 나아가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확장시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의미로운 시간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인간은 현실인식과 자아성찰을 위해 깨어있으려고 늘 노력해야 하고 끊임없는 재교육도 필요한 존재인 듯하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이래저래 뜻깊고 기억에 남을만한 오늘 ‘문학산 산행’이었다.


한편, 나는 산다람쥐 같이 사뿐사뿐히 가볍게 산을 잘 타는 전문 산악인 같은 친구들 따라 등산 다닐만한 체력이 아니란 걸 확인한 ‘문학산 산행’이기도 했다. 현재의 나에게는 무리한 등산보다는 ‘둘레길 걷기’ 정도가 버겁지 않게 딱인듯! 내 저질체력에 대한 ‘주제파악’ 제대로 하고 온 산행이기도 했다. 어쩌면 등산 한번 다녀왔다고 해서 여기저기 삭신이 쑤시는 이 버거움을 망각할 때쯤 새로운 마음으로 또다시 산행길에 따라나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 불편함이 많은 반면 이렇듯 고통과 힘듦도 잊을 수 있다는 여러 장점도 있다. 하지만 오늘 절실히 성찰하게 된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은 늘 잊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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