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의 이름은 '행복'씨였다.
그의 성이 무엇인가는 이 이야기에선 중요하지 않다. 그의 이름만큼 큰 인상을 주지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성이었으니까. 다만 우리는 그의 부모가 이름 짓는 데에 그다지 재주가 없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면 된다. 그는 행복 씨로 불렸고, 늘 불행을 몰고 다녔다.
행복 씨는 그렇게 눈에 잘 띄는 편이 아니었다. 그가 우중충한 불행을 몰고 다닌다는 사실을 잠시 덮어둔다면, 당신은 그의 존재를 곧 잊어버릴 것이다. 단순히 그가 아무런 특징없이 생긴 미완의 조각 같이 생겨서 그런 것 만은 아니었다. 비존재감은 불행의 실마리일까? 실제로 사람들은 그가 아예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실수로 행복 씨와 어깨가 부딪친 사람들은 길거리의 돌부리에 발이 걸린 것 같이 뒤를 돌아본 다음, 비로소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살짝 놀라했다.
행복씨는 태어날 때부터 유별나게 운이 없었다. 그의 출산일에, 만취한 택시기사는 행복 씨의 어머니를 산부인과가 아닌 정형외과에 데려갔다. 아마 거의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기를 받아본 의사가 된 그 불운한 정형외과의는, 갓 태어난 행복씨를 받느라 정신없는 통에 병원 가압류 처분을 받았다. 한쪽에서는 양복입은 사람들이 노란 딱지를 여기저기 붙이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고함소리를 자장가 삼아 아기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새근새근 잤다. 이때 행복씨의 어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그 뒤로도 그에게는 재수없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야구장에 갈 때면 파울 볼은 항상 행복 씨의 머리를 강타했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할 때에는 머리에 새똥을 맞았다. 실수로 발에 채인 조약돌은 이리저리 튕겨 달리던 차의 유리창에 박혀 교통사고를 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행복씨의 부모는 아직 어린 행복씨를 위로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어. 불행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행운이 올 거야.”
이외에도 행복 씨가 몰고다니는 불행에 대한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다. 행복 씨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가 사는 동네의 모든 주민들은 복권에 한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 또 한번은 행복 씨가 우연히 바에 들렀을 때의 일인데, 소심하게 맥주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던 행복 씨 뒤로 한껏 들떠있던 어떤 키 큰 남자는-분명 무언가에서 우승을 했을 것이다-자신이 딴 샴페인 코르크 마개에 맞아 코가 부러지고 기절했다. 앰뷸런스가 와서 코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고 있는 남자를 들것에 실어 나가는 동안, 행복 씨는 질겁하며 술집에서 도망 나왔다. 또 다른 일들로는 식료품점에서 산 우유가 잔뜩 썩어 있었는데, 보통 썩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열자 마자 폭발할 정도로 지독하게 썩어 있다던지, 그의 집을 털러 온 도둑이 발을 헛디뎌 두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문을 열지 못해 경찰에 잡히거나 하는 일들도 있었다.
행복씨의 머리 위로는 항상 미끄러져서 떨어진 화분들이 날아다녔고, 대게 그의 머리를 아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거나 옷 위에 진한 흙 자국을 남겼다. 그의 신발은 개똥으로부터 하루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와 같은 방향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은 항상 세찬 바람을 마주해야 했고, 눈에 들어간 먼지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행복 씨가 걷는 빙판길에서 사람들은 반드시 넘어졌으며, 그의 눈에 소풍 가는 아이들이 보이면 세찬 비가 내렸다.
이쯤 되면, 행복 씨가 혼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될 것이다. 몇 해 전 어렵게 사귄 여자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불행한 실수로 여자 친구가 커피 스푼을 삼키고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혼자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반려 동물도 키워 봤지만, 그중 개 두 마리는 집을 나갔고, 고양이 한 마리는 창문에서 중심을 잃어 떨어져서 죽었으며, 앵무새 한 마리는 ‘의자!’, ‘햄버거!’같은 알 수 없는 단어를 내뱉더니 모이통의 물통 안에 머리를 박고 익사했다.
그럼에도 이제 행복씨는 그가 불행을 몰고 다닌 다는 사실을 아주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어렸을 때는 그런 운명에 화도 내보았다. 어째서 친구들이 자신을 기피하는지, 수학여행은 왜 못 가는지, 그 흔한 장난감도 하나 없고 제대로 된 외식 한 번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는 부모님이 보였다. 그 애처로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행복씨는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불행한 일이 생길 때 마다 행복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작게 되뇌이는 것 밖에 없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행복씨는 외로움을 달래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인간적인 선함, 상냥함이 그의 천성이었다. 불행 때문이 아니었다면, 행복씨는 단순히 선하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행복씨는 주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일어날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 불행한 건 자신 하나로 족했다. 그래서 그는 낡아빠진 매트리스와 삐걱거리는 나무의자, 괴이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는 냉장고와 칠이 벗겨진 책상이 가구의 전부인 그의 방안에서 혼자 사는 것을 선택했다. 행복 씨의 유일한 낙은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책을 읽을 때 생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불행은 종이 날에 손이 베이는 것 말고는 거의 없다는, 우울한 사실 때문이었다.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듯이, 행복 씨는 거대 제약회사의 경리로 일 하고 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자체가 행복 씨에게 불행을 안겨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행복씨가 하는 일은 어디선가 엄지손가락 두 개 정도의 두께의 서류가 책상 위에 놓이면 일정한 속도로 자료를 정리하고, 조용히 파쇄하는 것이었다. 일 자체는 매우 단순했다. 누구도 그에게 무언가를 성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 일이 회사의 어느 부분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상상을 행복 씨도 해봤지만,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직장 사람들과 하는 말이라고는 ‘행복씨 이것좀…….’ 따위의 한 두마디 밖에 없었다. 9시에 출근하여 5시에 퇴근했다. 1시쯤 조용히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혼자 먹고, 저녁은 집에서 대충 해결했다. 일요일을 제외한 월, 화, 수, 목, 금, 토 모든 요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으며, 행복 씨는 그것에 대해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의 쥐꼬리만 한 월급은 그의 방세와 먹을 것, 가끔 사는 옷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일요일에는 전날 사다 놓은 식료품으로 요리를 해먹고,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이처럼 행복씨는 매우 단조롭고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일어날 일을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나 자신에게나 가장 덜 불행한 일이었다. 행복씨에게 이 모든 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매번 지루한 일상 끝에 잠이 들 때 마다, 행복씨는 작게 읊조렸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으니까.”
물론 행복 씨가 마냥 그런 상태로 평생을 살았고, 마침내 사라졌다면 우리는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은 많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행복 씨 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 날, 행복씨는 밤새 꿈을 꾸었다. 대단히 좋지 않은 꿈이었던 것이 확실했다. 평소같이 무덤에서 일어나는 좀비처럼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발작을 일으키며 갑작스레 깨어났으니까. 사과씨의 몸에선 식은땀이 흘러 잠옷을 흠뻑 적셨다. 입에서는 단내가 났으며, 숨이 가빴다. 악몽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괴물에 급박하게 쫓기고 있었고, 끝내 그것에 먹혀버리는, 아주 불쾌한 꿈이라는 것만 기억이 났다. 행복 씨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그 내용을 지워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그날은 악몽만큼이나 더 운이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발을 헛디뎠고, 머리를 벽에 박아 이마에 주먹만 한 혹이 났다. 일어나서 비틀거리다가 테이블에 놓아둔 컵을 홀랑 깨트려먹었고, 그 컵의 파편의 작은 조각을 밟아 발에 상처까지 났다. 셔츠에는 구멍이 나있었는데, 쥐가 밤새 쏠아먹은 자국이었다. 밥에는 돌이 한 무더기가 있어서 이가 거의 깨질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서 나왔는데,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신발이 짝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버스를 타기 직전에는 지갑을 두고 나왔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 집을 두어번 더 다녀온 뒤에야 간신히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이미 기진맥진이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으니까.”
사과씨는 중얼거리며 버스를 탔다.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그때 얼마 가지않아 갑자기 끼익하고 쾅 소리가 나더니 버스가 멈춰 섰다. 20중 추돌 사고였다. 사고에 휘말린 모든 운전자가 도로로 나와 제각기 떠들어 댔기 때문에 뒤늦게 온 경찰은 그 사건을 수습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중에는 버스 승객들 또한 버스에서 내려서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에 도로 위는 아수라장이었다.
추돌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행복 씨는 회사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라도 최단 거리로 질러가면 출근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마침 햇볕도 그다지 세지 않았고 날씨도 선선했다. 잔뜩 서둘러 길을 걷고 있는데, 게다가 갑자기 마른 하늘에 비가 내렸다. 행복씨는 들고 있던 서류 가방으로-도시락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지만-비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빗물 때문에 눈조차 뜰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행복씨는 편의점에 들어가 싸구려 우산을 샀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이 쨍쨍한게 아닌가. 날씨마저 갑자기 후덥지근해졌다. 축축하게 젖은 양복이 뜨거워지자 말도 못하게 불쾌해졌다. 그렇게 인상을 찌푸린 채로 걷고 있는데 나무 가지 위에 있던 이름 모를 새가 날아가며 똥을 갈겼고, 행복씨의 양복 어깻죽지에 명중했다. 손수건도 없고 휴지도 없는 가운데, 유일하게 닦을 만한 건 지갑 안의 지폐밖에 없었다. 최대한 적은 지폐를 사용해서 새똥을 닦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난데없이 허리께 깊이의 물구덩이에 빠져서 바지가 온통 흙탕물에 젖었다. 쓰러져 있는 ‘구덩이 조심’ 표지판을 다시 일으키고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돌부리에 걸려 치욕스러운 자세로 넘어지면서 손바닥에 흉한 상처가 났다. 멀리 회사 건물이 보일 때쯤, 사악한 마법사가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삽시간에 주위가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행복씨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아까 산 우산을 펼쳤지만 웬걸, 단추를 누르자 마자 우산 살이 손잡이와 대에서 분리되어 멀리 튀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저기 앞까지 튀어나간 우산 살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마침 돌풍이 불어 살을 저기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행복씨는 하는 수 없이 세찬 비를 맞으며 회사로 향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갑자기 불행이 세차게 치댔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으니까.”
행복씨는 회사 로비를 가로지르며 평소처럼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행복씨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유난히 기운이 빠져 들렸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평소와는 다른 팽팽한 분위기에 행복씨는 얼어붙어버렸다. 그의 지각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하필 그날 직원 감사가 있는 날이라 층 전체가 긴장하고 있는 날이었던 것이다. 깐깐한 눈으로 서류를 넘겨보던 감사원은 지각한 행복 씨를 놓치지 않았고, 그와 그의 부서에 징계를 먹였다. 아마 행복씨의 더러운 복장이 감사원의 심기를 더욱 거슬렀으리라. 덕분에 행복 씨의 쥐꼬리만 한 연봉은 감봉을 면치 못하게 되었고, 따지고 보면 감사가 있을거라고 알려주지 않은 상사에게도 책임은 있었겠지만, 평소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던 그의 상사는 행복 씨에게 엄청난 악담과 저주를 퍼부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으니까.”
행복씨는 중얼거렸다.
그렇게 폭풍 같은 아침 근무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직도 겨우 점심시간이라니!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행복 씨는 점심 도시락을 어딘가에 놓고 왔음을 깨달았다. 아마 사고가 난 버스일 것이었다.(참고로, 그의 도시락을 먹은 그 불행한 사내는 지독한 식중독에 시달리게 된다.) 행복 씨는 평소라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지만, 늦어 버린 점심을 먹기 위해 뒤늦게 뛰어 간 사내 식당은 막 문을 닫고 있었다. 행복 씨는 그냥 굶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행복 씨가 입사를 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한 공복감에 휘둘리면서 꾸역꾸역 일을 하고 퇴근을 하려는데, 예에도 없던 일이 추가되어서 몇 시간 동안 추가 작업을 해야 했다. 이 역시 그가 처음으로 겪어본 일이다.
그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진맥진하여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불행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의 한쪽 구두는 벗겨져서 사라져있었으며, 바지는 찢어져서 허연 속살이 보였고, 와이셔츠에는 케첩이, 손에는 가시가 잔뜩, 머리에는 흙먼지와 나뭇잎이 가득했다. 행복 씨는 기진맥진하여 냉장고 문을 열었지만, 정전이 돼서 냉장고가 꺼져 있었는지, 모든 식재료가 푸르딩딩하게 상해있었다.
그 순간 행복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꺼진 냉장고의 문을 붙잡고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을 보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어떠한 감정의 표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 속에 고정된, 수학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점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작아지기 시작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그는 작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작아졌다. 어떤 변화의 예감 같은 것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이내 빠른 속도로 작아졌다. 마치 어떤 전지전능한 디자이너가 그의 크기를, 존재를 점차 줄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절반으로, 그리고 다시 그 절반으로, 절반으로, 절반으로. 그리고 주인을 잃어 시체처럼 풀썩 쓰러진 행복씨의 양복 더미 사이로 행복씨는 자취를 감췄다.
이상한 형태로 쓰러진 그 허물 같은 양복 무더기만 아니었다면, 방 안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조차 느낄 수 없었다. 마치 행복 씨란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존재가 이 세상에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듯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몸이 된 작아진 행복 씨가 양복더미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꽤 시간이 흘러 밖은 시커먼 어둠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는 작아진 크기 때문에 양복더미를 거의 올라타다시피 해서 빠져나와야 했다. 그리고 뭔가 조금 달라졌다. 세심하게 관찰하면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보였다.
평소 행복 씨는 좀처럼 슬퍼하지 않았다. 아니, 슬퍼하지 않는 다기 보다는 슬픔에 무뎌 있었다. 그저 불행이 주는 슬픔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나,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만약 우유가 상했다면 그냥 담담하게 새것을 사오거나, 지갑을 놓고 오거나 누군가 자신의 불행 때문에 다쳐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행복씨는 체념을 공기처럼 들이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깊이 슬퍼하고 있었다. 한 평생의 체념에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온 몸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버렸다. 그리고 그의 작아진 크기만큼-작아서 슬퍼진걸까, 슬퍼서 작아진걸까 지금도 알 수 없다-슬픔은 더욱 짙은 농도를 띄었다. 농도가 짙어진 슬픔은 마치 소금처럼 하얗고 뾰족한 결정을 생성하고, 실제로 행복씨에게서 끝임없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슬픔의 결정은 행복씨의 몸 어딘가에 박혀 그를 더 슬프게 했다.
소동 끝에 양복더미에서 나온 행복 씨는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는 하얀 결정이 후두둑 떨어지는 채였다. 발바닥에서는 뾰족한 결정 때문에 피가 나고 있었지만 그는 그 사실도 미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느릿느릿 침대를 향해서 걸어갔는데, 멀리서 보기엔 움직임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건 정말로 작아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마 더 큰 상태였어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행복씨는 침대의 다리 기둥에 닿았다. 그곳에서 그는 몸을 숙여 바닥에서 무엇을 집더니,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올가미였다. 작아진 행복씨의 머리를 수월하게 통과하고, 그의 목을 졸라줄 작고 완벽한 매듭말이다. 불행은 그를 위해서 그 자리에 실오라기를 남겨둘 정도로 치밀했던 것이다.
적당한 발 받침대를 찾고 그것 위에 올라가서 목에 올가미를 메는 과정까지는 매우 간단했다. 사라진 온갖 물건이 침대 아래 있었던 것이었다. 행복씨는 그 중에서 언제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를 오래된 소설 한권을 밟고 올라가 매트리스를 받쳐주는 살 사이로 올가미의 한쪽을 걸어 메었다. 그리고 그의 어떤 표정도 없는 얼굴을 올가미 매듭 사이로 밀어 넣었다. 어느 영화에서 본 것처럼 올가미의 길이를 조절하고, 발로 책을 툭 하고 치워버렸다.
그가 목을 조르는 고통속에서 힘들어하다 그대로 죽었다면 애당초 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죽음은 흔하디 흔하다. 죽음은 쉽고 효율적인 탈출구다. 그러니 그렇게 사라진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어줄 필요는 없을지 언정 관심까지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행복씨 역시 그렇게 사라질 뻔 했다. 하지만 행복씨가 의식을 잃기 그 바로 직전, 그 얇고 작은 실오라기는 끊어져버렸다. 축 늘어진 오징어에 가까워지던 행복씨는 갑작스럽게 들이쳐오는 산소에 놀라 몸을 버둥거렸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통증에 발 아래를 바라보았을 땐, 큰 유리 조각이 발 아래 박혀있는 것을 보았다.
본능적으로 발에 박혀있는 그 결정을 빼내고 저 멀리 던져버렸을 땐 행복씨의 발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였다. 오른쪽 발 뒷꿈치는 한 마디 만큼이나 패여있었다. 그것은 마지막, 죽기 직전에 행복씨의 몸에서 나온 바로 그 결정이었다.
그 순간, 그 어떤 순간, 행복 씨는 무엇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너무나 작은 소리였다. “일어날……”까지는 정확히 들렸지만, 그 이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처음에는 무책임하게 끊어져 버린 실에 대고 무얼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옮아갔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나는데, 그는 갑자기 허공에 대고 무언가를 작게 지껄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커지는 소리에 따라서 그의 제스처도 격해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손이 움찔움찔 거리는 정도였지만, 곧 두 손이 허공을 휘저었고, 상체가 흔들흔들하더니 발까지 쾅쾅 굴러댔다. 소리가 커져가는 만큼, 그리고 몸동작이 격해지는 만큼 그의 크기도 곧 커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행복씨 그의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그렇게 커지는 와중에 그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얼굴은 구겨진 종이처럼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이내 원래 크기를 되찾은 행복 씨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접시를 방 건너편으로 던지고, 형광등을 깨트리고, 냉장고를 발로 찼으며, 의자를 책상에 집어던졌다.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책들을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지고, 책장을 엎어트렸다. 케챱과 마요네즈를 벽에다 칠하고, 프라이팬으로 스탠드를 후드려 팼다. 화장실의 세면대는 망치에 박살이 났고, 거울은 박살나 사방으로 그 파편을 튀어 보냈다. 오른쪽, 왼쪽, 아래, 위 할 것 없이 모든 면의 벽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쳤다. 그 정신없는 파괴의 순간에도 그는 무언인가를 계속 외치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떻게 들으면 지옥에서의 절규 같기도, 승리의 함성 같기도 했다. 그는 집안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었고, 얼마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탈진하여 그나마 온전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어느새 인가 옆집의 젊은 새댁이 항의를 하려고 그의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행복 씨는 그것을 자장가 삼아 잠에 빠졌다. 둥. 둥. 둥.
다음날 행복 씨는 그나마 성한 양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했다. 다른 모든 옷들은 도저히 옷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늦게. 전날에 이어 또 지각한 행복씨에게 그의 상사가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행복 씨는 양복 밖으로 나온 모든 곳에 상처가 가득했고, 그의 양복은 찢어진 곳 투성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행복 씨의 얼굴이 아주 이상하게 변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어제의 그 광기가 흉터를 남겨놓은 것처럼 그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이제 그 얼굴은 기묘한 느낌을 주었는데, 마치 악의로 가득 찬 어떤 존재를 보는 것 같았다. 그건 이전의 행복씨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눈빛은 이상한 생각으로 이글거리고 있었으며, 코는 무언가 냄새를 맡는 것처럼 씰룩씰룩 거렸고, 입은 누군가를 쉴 새 없이 비웃기라도 하듯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변한 것은 얼굴뿐만이 아니었는데, 걸을 때도 발을 구르듯이 쾅쾅거리며 걸었고, 두 손은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불행이 결코 행복 씨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불행은 그의 관까지 그를 따라다녔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장 측의 작은 착오로 인해, 관이 바뀌는 바람에 행복씨가 전혀 엉뚱한 사람들의 슬픔을 받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행복 씨는 '그날' 이후로 아주 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불행에 초연하게 되었다'라거나 '불행을 자신의 인생으로 받아들였다'라는 종류의 인간이 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의 불행을 아주 질색했다. 누군가 주어진 인생을 축복이라고 여기라고 한다면, 그는 그의 엉덩이를 기꺼이 걷어 차줄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의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씌우기로 마음먹었다. 이전의 행복 씨가 불행을 피해 다녔다면, 그는 이제 그것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깨진 유리조각을 밟은 젊은이를 보고 킬킬킬 웃었으며, 감사에서 꼴등을 한 자신의 상사가 해고되는 것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다. 구내 식당에서 그는 항상 자신의 국에는 얼마 없는 고기 때문에 식당의 종업원과 거의 매일 싸웠다. 그의 버스는 항상 모든 신호에 걸리고는 했는데, 운전수가 툴툴거리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상해버린 두부를 마트에 집어 던지고, 썩은 계란을 창밖으로 집어 던졌다. 어떤 날에는 그저 재미로 자신의 오줌을 물총에 담아 창밖으로 쏘아 대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머리에 새똥을 떨어지면 날아가는 새를 떨어트릴 기세로 화를 내었으며, 자신의 구두에 침을 실수로 뱉은 어떤 노인에게 멱살잡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매사에 툴툴거렸고, 화를 내었고, 깔깔깔 거렸고, 울그락 푸르락 했다.이제 이야기를 마쳐보자. 이 이야기는 행복 씨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죽음은 그의 불행과 같이 그를 늘 따라다녔는데,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늘 불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 그는 '피식'하는 웃음을 지으며 생을 마무리했다. 그의 마지막 미소는 어딘가 퉁명스럽고, 어딘가 불만족스러웠지만, 유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