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피라미드를 넘어, 맵의 끝으로
노이타가 어디 새로운 관광지인가 하고 들어오셨다면, 반쯤 낚이신 겁니다. 노이타는 지구 상에는 없는 지명이니까요.
Noita는 픽셀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던전 로그라이크(던전을 탐험하고 죽으면 모든 게 초기화되는) 게임입니다(현재는 얼리 액세스 버전, 18,500원). 'Baba is you' 게임을 만든 제작자가 참여했다고 해서 알게 됐는데, 엄청나게 특이합니다. 그중 가장 특이한 점이라면 픽셀 물리법칙 구현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물에 들어가면 젖고, 기름에 불을 붙이면 주변 픽셀이 타버립니다. 독을 뒤집어쓰거나 불이 몸에 붙으면 물로 빨리 들어가서 씻어내야 합니다. 나무에 불이 옮겨 붙어서 스크린 전체가 불바다가 되기도 하고, 적이 뿌린 독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면서 아수라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조작이 간결하기는 한데, 간결한 만큼 열 받는 상황이 많습니다. 적들이 너무 빡세거든요. 그냥 곱게 죽을 것이지 괜히 옆에 있는 기름통을 건드려서 터지는 바람에 내 몸에 불이 붙는 경우가 허다하고, 적이 뱉는 공격의 궤적에 독이 남아있어서 체력이 쑥쑥 닳아버립니다. 한 놈씩 나오던 놈들이 갑자기 보스 같아 보이는 몬스터와 같이 나오는데, 그때는 그냥 죽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이 혼자 무쌍을 찍는 슬래셔 종류의 게임을 찾는다면, 이 게임은 당신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할 겁니다. 처음에 상쾌하게 뿅뿅뿅 쏘는 기본 지팡이 주문을 보면서 저도 그런 기대를 했었는데(게다가 바로 전 게임이 Gato Roboto였습니다), 이 게임은 차라리 다크 소울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조금 연식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고전 게임 '페르시아 왕자'와 같은 느낌이랄까요.
와드(마법 지팡이)가 잘 나와야 쑥쑥 잘 갈 수 있는 소위 '운빨좆망겜'이지만, 컨트롤로 어떻게든 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와드에 여러 가지 주문을 넣을 수 있고, 한 탄을 깰 때마다 와드를 편집할 수 있는 구간이 나오면서 한 스테이지에서 먹었던 주문들을 조합합니다. 와드와 먹은 주문을 잘 조합해서 괴랄할 정도로 효율이 좋은 세트를 만들 수 있는가 하면, 실수로 잘못 편집하면 다음 스테이지에서 그냥 앉아서 죽음을 맞이해야 할 수 도 있습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파도 파도 끝이 없이 나오는 새로운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얼리 액세스인데도 말입니다! 그냥 아래로 쭉쭉 내려가도 되지만,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전에 와보지 못한 곳으로 통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어 여기는 어디로 통할까?' 하는 옆 길로 새면, 미친 듯이 새로운 장소와 몬스터와 상황에 당황하게 됩니다. 어이없이 죽는 건 덤이고요. 만약 엔딩을 보려면 우직하게 아래로 내려가는 게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보통 옆으로 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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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주의: 만약 아래 내용을 직접 플레이해보시고 싶은 신 분이라면, 이 아래는 읽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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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50번쯤 죽어서 현자 타임이 왔는데, 그냥 시작하자마자 엄청나게 사기 와드와 주문을 먹어버린 겁니다. 위의 사진은 신나게 딴짓하느라 찍은 사진입니다. 지형지물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뚫게 해주는 세트인데, 그걸 통해서 일반적으로는 갈 수 없는 맵의 옆구리를 뚫어버렸습니다(위 세 번째 그림). 시작하자마자 플레이어는 거대한 산과 산 아래 광산으로 이어지는 아래로 향해야 하는데, 저는 그 산 위로 올라와버린 겁니다. 하지만 산 위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눈이 있어서 주문으로 녹였습니다. 솔직히 눈 안에 뭐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매우 실망했죠.
사실 적당히 제정신인 게임이라면 뚫고 나서 얼마 안 이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계속 맵이 이어집니다. 게임 리스폰하자마자 나오는 목초지와 같은 풍경입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물 웅덩이가 보입니다. 물 웅덩이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피라냐들이 있군요. 개 사기 무기로도 사정거리가 닿지 않아 처리가 어렵습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물러나야 하지만, 저는 개 사기 무기가 있죠. 저는 땅을 뚫었습니다.
호수 아래를 빙 둘러 간 것이죠. 다행히 지반도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여기까지, 뚫어놓고 스크린 샷을 찍으러 산의 옆구리까지 돌아간 겁니다) 물이 쏟아져서 잠기면 꼼짝없이 죽는 터라 조금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무사히 반대쪽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반대편에는 약간 높은 둔덕이 있고, 그 뒤로 계속 목초지가 이어집니다.
계속 걷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설마 이게 끝인가? 그냥 무작위로 배치된 지형지물이 끝없이 반복되어 나오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스릴감 있는 지하 탐험과는 달리 적도 한 마리 없고 꽤나 지루한 여정이었거든요. 밝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막이 나옵니다. 사막이라고?라는 생각이 두근두근 들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기 시작합니다.
잠깐 이야기를 다른 데로 돌리자면, 저는 이런 종류의 게임을 좋아합니다. 뭤도 아닌데 돌아다니다가 숨겨진 요소를 발견하는 거요. 전사나 전략가 스타일은 아닙니다. 아주 옛날에 메이플 스토리 할 때도, 몬스터를 잡고 레벨을 올리는 거보다 처음 보는 맵을 탐험 하는 걸 즐겼더랬죠. 지금 즐겨하는 데스티니 가디언즈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관을 구성하는 치밀한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 말입니다.
여하튼 사막을 계속해서 걷습니다. 그런데 조금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모래 아래 플레이어 만한 해골들이 가득합니다. 솔직히 여기서 아래로 뚫어서 뭐가 있나 확인해볼까 했는데, 모래 구멍 뚫다가 모래에 묻혀서 죽을까 봐 못했습니다. 이 게임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거든요.
그러다 엄청나게 거대한, 마치 공룡과 같은 모습을 한 해골을 발견합니다. 어찌나 큰지, 공룡의 눈만 해도 플레이어의 수십 배는 되어 보입니다. 아래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저는 확인하진 못하고 눈에만 들어가 인증사진을 남겼죠.
아, 그냥 사진 찍고 놀기만 한건 아닙니다. 공룡 옆에 요상하게 생긴 샛길이 있어서 내려가 보니 '모래 동굴'이 나옵니다. 어찌나 무섭던지. 발을 들이면 그래도 못 나올 것 같아 저는 도망쳤습니다. 일단이요.
그리고 아주아주 긴 사막이 이어집니다.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논문 생각도 좀 했고, 지금 돌아가고 있는 실험이나, 미래에 대한 생각도요. 대학원생으로서의 6학기가 책 넘기듯 머릿속에서 지나갑니다. 걸어가는 도중에 밤이 찾아왔고, 해가 밝습니다. 지하에 있을 때는 이런 효과가 있는 줄 몰랐는데, 묘하게 차분해지는 느낌이 납니다. 단 세 가지 색으로 표현한 배경의 산맥들이 마치 히말라야의 준엄한 산맥을 연상케 합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산이 나옵니다. 안에는 광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란 불꽃이 보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이게 그냥 일반적인 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갑자기 피라미드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젠장! 나는 그냥 맵의 끝이 보고 싶을 뿐이라고! 어찌나 놀랐는지, 계속 올라가다 보니 문이 보입니다.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개 사기 무기로 뚫어보니 뚫립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도망쳤습니다. 일단이요. 그리고 발걸음을 다시 정상으로 돌렸습니다.
피라미드의 정상에는 뭔가 있었습니다. 맵의 왼쪽 끝, 광산의 마그마 연못 옆에서도 봤었던 에메랄드 타블렛과 함께 엄청나게 좋아 보이는 뭔가가 있습니다. 꿀꺽했습니다. 먹자마자, 피라미드가 흔들립니다. 그대로 무너지는 게 아닐까 했는데, 그러지는 않더군요. 아마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몬스터들이 난리 치다가 폭발성 오브젝트를 건드린 게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후회가 되는 부분인데, 조금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지진이라는 스킬을 써볼걸 그랬습니다.(아 어차피 편집을 할 수가 없구나) 주문 지진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피라미드 안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찟하게 생긴 몬스터가 보입니다. 오오.... 너무 무서워. 저런 끔찍한 몬스터가 있다니. 저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분명 지하 동굴에도 저렇게 생긴 몬스터가 있긴 한데, 플레이어의 1/5 수준으로 작거든요. 파리 같은 거요.
그 뒤로도 사막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파괴 불가능한 지형이 나옵니다. 아주아주 단단한 암석이라는 설명에서 제작자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굳이 지형의 아래를 파보지는 않았지만, 더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왜 저렇게 울퉁불퉁하게 만들어놓은 걸까요?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의 점프 시스템(사실 점프랄 것은 없고 제트팩 같은 느낌으로 공중부양을 하는 거지만)을 적절하게 잘 이용해서 이 파괴 불가 지형을 올라갈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합니다. 마치 산양처럼요.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위의 지형은 닿을 수 없는 배경이더군요. 그리고 어둑어둑한 맵 안쪽으로 점프를 높게 뛰니 마름모꼴의 무언가가 보입니다. 안에는 무언가가 희미하게 있고요.
조금 더 옆을 가보니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굴곡이 심하게 져있는 지형을 밝고 올라서, 마름모의 정상으로 가봅니다. 마름모는 12시 방향을 제외하고는 뚫을 수 없는 벽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 사기 무기로 아래를 뚫어보죠. 그리고 패시브(클릭하여 발사되는 주문이 아니라 항상 적용된 상태로 있는 주문, 게임 내에서는 Perk으로 나타나 있음)가 있습니다. Essence of Light라고 하네요. 빛의 에센스라니! 엄청 좋은 거잖아?!
아닙니다. 개 구데기 템이에요. 아마 여기까지 온 플레이어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제작자가 일부러 넣어둔 듯합니다. 이 여섯 방향으로 발사되는 투사체는 지형지물에 닿을 때 폭발하면서 플레이어에게도 피해를 입힙니다. 그러니까 그냥 걸어가면 아래쪽으로 발사된 세 갈래의 투사체 때문에 피가 닳는 겁니다. 1발에 2씩 닳던 거 같은데, 젠장, 피해를 안 입으려면 계속해서 발사 주기에 맞춰 점프를 해야 합니다. 이런 뭔 거지 같은......
여기서 중대한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된 거죠. 맵을 타고 다니는 플레이를 하거나 개 사기 무기로 굴을 뚫어서 진행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저 미친 패시브 때문에 체력을 계속 잃게 될 것입니다. 즉, 지형지물과 계속 붙어서 활동해야 하는 곳이라면 길가에서 노잼사 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일단 미친 패시브를 단 상태로 어떻게든 옆으로 가볼 길을 찾아보기는 했습니다만 점프로 닿을 수 있는 구간은 없었습니다. 물론 길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체력을 지속적으로 잃어가는 관계로 그럴 수 세밀한 조사를 할 수 없었죠. 당장은 이렇게 엔데의 여정이 끝이 납니다.......
라고 하려다 다시 돌아와서 피라미드로 갑니다. 오는 길에 사막에서 타이밍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반피 이상을 까이고 맙니다. 잘 알고 있는 지형에서도 까딱하면 절반까지 피를 한순간에 잃는데, 영 좋지 못한 시작이네요.
피라미드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입니다. 저는 무서워서 최대한 천천히 진행하고 싶은데, 미친 패시브가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스텝이 조금이라도 꼬이면 그대로 패시브에 처맞고, 보스몹 같이 잘 죽지 않는 몬스터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저는 손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패시브 때문에 멀리서도 몹들한테 어그로가 끌립니다.
그 와중에 한 가지 정말 아쉬웠던 건, 피라미드의 위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면 위를 먼저 갔을 것 같습니다. 보통 피라미드라고 하면 보물을 꼭대기 쪽에 놓는 게 보통이 아닐까 해서요. 아까 에메랄드 타블렛을 부분에서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말이죠.
그리고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아까 봤던 그 끔찍하게 생긴 몹 2마리와 탄광에서 보스몹 같이 나오는 인간형 몹에게 둘러싸여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개 사기 무기로도 쉽게 죽지 않더군요.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러니까 탄광에서부터 죽 순차적으로 통과해서 오는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엄청나게 먼 여행을 떠나온 느낌입니다. 게임오버 화면을 보고 있자니 짧게나마 후련하기도 하고, 미련도 좀 남습니다. 여기 엔데가 잠들다-하고 비석이라도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싶기도 하고요.
저렇게 증거사진으로 남긴 스크린샷을 보다가, 여행기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올려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장소와 사건을 기록하고, 브런치에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엔데의 첫 번째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다른 곳을 여행하고, 후기를 올리겠습니다. 여행은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