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공대생이 쓰는 보통의 대학원 일기
세상은 불합리함의 총합과 같다. 불합리함은 프랙털처럼 모든 구성 요소에 필수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건 학교도 마찬가지다. 다음 예시를 보자.
학교 건물 3층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건축법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통 장애인 화장실은 접근성이 좋은 1층에 있기 마련인데, 이 건물에는 1층과 3층에 있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도통할 줄 모르는 학교가 의도적으로 설계를 했을 리는 없고(나머지 층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 내막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학교 부지는 건축법상 5층 이상 올릴 수가 없는데(토지 용도상), 7층 이상으로 층 수를 올릴 필요가 있던 학교가 현재 3층을 1층으로, 현재 1층은 지하 2층으로 설계했다(건축법 상 지하로 파는 층 수는 상관없다). 접근 가능한 대지가 3층으로 연결되기만 한다면 그곳이 1층이라고 우기는 것은 가능하다. 다행히(?) 산 중턱을 깎아 만들었으므로, 건물의 뒤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하나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앞에서 보면 8층짜리 건물이지만, 뒤에서 보면 5층짜리 건물이 되는 것이다. 다만 법적으로 1층이면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야 할 뿐.
이런 구닥다리 법 때문에 내가 있는 3층에 뜬금없이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물론 나는 대단히 만족한다. 첫째로, 장애인 칸은 일단 다른 변기 칸 3개를 합친 것보다 더 넓다. 여름같이 습할 때, 땀을 벌벌 흘리며 좁은 변기 칸에 앉아 있는 건 그 자체로 고문이나 다름없지만 장애인 칸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넓은 면적에서 나오는 쾌적함이 차원이 다르다고나 할까. 둘째로, 팔걸이가 있다. 이 팔걸이로 말할 것 같으면 감히 차의 보조석 위쪽에 달려있는 손잡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차가 덜컹거릴 때 무의식적으로 보조석 창문 위의 그 손잡이를 무의식 적으로 잡게 되는 것처럼, 변기에 앉아 거사를 치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잡게 된다. 손잡이를 꽉 움켜쥐면 금속의 차가운 느낌과 함께 묘한 안정감이 들고, 결과적으로 조금 더 힘을 주기 편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이외에도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이만 줄인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장애인 화장실이 얼마나 좋으냐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장애인 화장실을 애용하는 공대생들의 공분을 사게 만드는 기믹이 있었으니까. 바로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적외선 자동 물 내림 장치'이다.
이 '적외선 자동 물 내림 장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아니 작동했어야 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사람이 앉자마자 적외선 감지기의 변화가 있으면 일단 물을 내린다. 이건 나쁘지 않다. 어쨌거나 약간 더 청결한 느낌은 있으니까. 그리고 앉은 사람의 등을 기준으로 새로운 기준을 잡고, 사람이 볼일을 다 보고 일어나면 다시 변화를 감지하고 물을 내린다. 물을 내리기 위한 손잡이를 사용하기 힘든 장애인 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적외선 감지의 변화'라는 게 대단히 미묘하다는 것이다. 조금만 앞으로 몸을 숙이면 이 미친 감지기가 사람이 떠났다고 판단하고 물을 내린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다시 허리를 곧게 펴면, 사람이 앉았다고 다시 물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게 얼마냐 화나냐면, 이 짓거리를 5번 정도 반복하면 물이 10번 내려지는데, 엉덩이가 다 축축해져 있다. 청결은 둘째 치고, 뭔가 희롱당한 느낌이 든다. 비데와 정 반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변기에 앉아서 허리를 곧게 피고 있으면 허리 아래쪽이 뻐근해진다. 그래서 계속 몸을 수그리고 있자니 팔꿈치가 내 얼마 없는 대퇴근에 진한 키스자국을 내놓는다. 손잡이를 잡는 것도 잠깐이지, 볼일 보는 내내 잡고 있을 수도 없다. 사람이 볼일을 보면서 얼마나 몸을 많이 흔드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물론 조금만 고찰해보면 이런 문제가 생긴 원인을 알 수 있다. 변기 만드는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일부러 저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문제의 원인은 옆 칸의 일반 화장실 변기 칸을 가면 금방 알 수 있다. 일반 화장실의 급수관이 딱 저 정도 높이에 있다. 따라서 저 '적외선 자동 물 내림 장치'가 설치되어야 하는 등 아래쪽 부위(엉덩이 쪽) 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보니 생긴 일인 것이다. 만약 장치가 낮게 설치되어 있다면 그냥 변기 뚜껑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런 미친 사태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이 벌어진 원흉은 애당초 3층을 1층으로 신고하고 얼렁뚱땅 화장실을 만들어서 생긴 학교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현명한 경영대생, 명석한 두뇌의 이과생, 혹은 다른 학부의 똑똑한 이라면 시설 관리부에 이야기한다거나, 건축부에 문의를 한다던가 하는 지속적이고 사려 깊은 해결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대생은 이런 엿같은 상황을 반드시 자기가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는데, 우리 층의 공대생들도 나와 같이 느낀 것이 분명했다. 어느 날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니 레이저가 나오는 부분에 청색 테이프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속으로 이 화장실을 공유하는 그 익명의 공대생에게 축하를 건넸다. 너무나 훌륭한 해결책이었으니까. 나는 그날 안심하고 뽀송뽀송하고 쾌적하게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리고 다음날 장애인 화장실 문 앞에 이런 쪽지가 붙었다.
'화장실에 테이프 같은 걸 붙이지 마세요. 떼기 힘듭니다.'
아, 생각이 짧았도다. 화장실을 항상 똑같이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아주머니께 뭇 학생의 엉덩이 따위는 그다지 고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기사 우리의 비천한 엉덩이 따위는 썩어 문드러져도 아랑곳 안 하시겠지. 나는 얼마간 다소 패배감에 젖어서 그냥 축축한 채로 화장실을 사용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적외선 장치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음과 동시에 아주머니가 청소하기 쉬워했다. 이후로도 양말을 씌워놓기도 했고(근사한 등산용 양말이었다), 마카로 적외선 센서 부분을 칠해놓기도 하고(효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전원을 빼놓으려고도 했지만(하지만 이음새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에는 모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종종 저 화장실을 볼 때마다 세상의 불합리함을 생각하곤 한다. 8층짜리 건물을 5층짜리로 짓게 한 학교나, 1층은 무조건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는 건축법이나, 앨보를 쓰지 않고 그대로 급수관을 사용한 시공업자나, 화장실은 무조건 원래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학교 관리 지침 같이 불합리한 것들이 세상엔 넘쳐난다. 이 세상 어느 것도 합리적인 것이 없다.
하지만 불합리할수록 빛을 발하는 게 엔지니어다. 불합리한 세상에서 찾는 합리적인 해답은 언제나 불합리한 법이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엔지니어는 절대 최고의 답을 찾지 않는다. 최선의 답을 찾을 뿐이다. 최선의 답은 그 자체로 불합리함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저 화장실을 찾아갈 때마다 예비 엔지니어로서 무언가 성찰하는 느낌이 든다. '무엇이 엔지니어링 인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고 할까.
결국 결말은 위의 사진과 같다. 휴지를 적외선 센서의 주위에 두르는 것 만으로 모두가 행복해졌다. 만약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적외선 센서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저 옆에 있는 휴지를 센서 주위에 두르면 된다. 이제 물 내림 버튼으로 물을 내릴 수 있는 행복한 세계가 시작됐다. 물론 아주머니도 청소하기 매우 쉽다. 이렇게 해 놓은 후 종종 전날 해놓은 휴지가 사라지기는 하지만, 이게 대단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문에 쪽찌가 붙지도 않는다. 모두가 행복하다.
불합리한 세상에 불합리한 해답이 나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