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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Aug 27. 2015

돈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

요새 몇 달간 돈 때문에 신열을 앓았다. 

  수입은 없고 모아둔 돈으로 생활하니, 마치 퇴직금으로 생활하는 늙은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목을 조른다. 안색이 하얗게 변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여기서 몇 푼, 저기서 몇 푼을 나에게서 갈취해갔다. 나는 멍하니 그들에게 돈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고, 뒤늦게 지출을 아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 유령은 꽤나 사나웠고, 나는 나의 안위를 위하여 굴복했다.


  그 사나운 유령에게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삶을 강제하는 그 악당을 어떻게 맞이 할 것인가?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음모론자가 풀어본다면, 모든 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청춘에 대한 '환상', 내지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금요일 밤의 난잡한 파티, 불같은 연애, 여러 가지 조잡한 물감으로 칠해진 낭만, 넝마주이 같은 패션 트렌드, 고급 레스토랑, 외국 여행 같은 것이 젊음의 특권이라면, 그래, 가난도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그건 정말이지 고귀한 특권이다. 그건 사과가 그려진 노트북,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보다 좋다! 그 특권은 나로 하여금 소고기 스테이크 대신 유통기한이 다 되어 세일하는 돼지고기를, 커피 대신 물을, 롱티 대신 싸구려 홍차를 먹게 한다.  

  

  가난이라니!


  가난 속에서 진짜 낭만을 찾을 수 있다. 돈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의 낭만을 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싼 스위트룸에서 맞는 달빛은 사람이 적은 공원에서 돗자리를 피고 앉아 맞는 달빛보다 아름답지 않다. 기껏해야 같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달릴 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샵을 발견하고 감탄할 수 있다. 벤츠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도서관에서 마음에 맞는, 어떤 작가의 양장본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패드는 그런 경험이 불가능하다. 오래된 셔츠에서 기분 좋은 느낌이 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돈이 드는 행위에 대하여 사악하고 빈정거리는 웃음을 날릴 수 있게 된다. 

"어이구, 비싼 가방을 드셨네요. 뭐가 들어있지요? 깡통?"

"와 좋은 차네요, 할부가 얼마나 남았죠? 부모님 등골은 좀 괜찮으신가요?"


  우리가 가난에도 불구하고 돈을 쓴다면, 그것은 정말로 숭고한 일이 되어버린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러하다. 돈의 가치가 올라간다. 우리가 가난 속에서 사치를 부릴 때, 우리는 잠시 삶 속에서 루이 14세를, 진시황을 불러온다. 하여 가난한 젊은이들의 취미가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취미라야, 우리의 지성이  독수리처럼 날카로워 지고, 감성이 벼려질 수 있는 것이다. 가난이 섬광 같은 기지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가난은 체면을 세워준다. 부모님에게 돈빌리 는 것, 밥을 얻어먹는 것,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 등등, 나를 약하게 만드는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좋은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훌륭한 과외선생이다. 가난을 인정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높다는 것을 알리는 나팔과도 같다. 입은 옷이  보잘것없으므로 어깨를 쫙 펴야 하며, 얼굴에 바를게 없으므로 활짝 웃어야 한다.


  물론 가난은 젊을 때만 좋다. 가정이 있으면서도  궁핍하다는 건 직무의 유기에 가깝다. 젊음의 가난은 자랑거리이지만, 황혼의 가난함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또 가난이 생명을 위협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럴 땐 주저 없이 도움을 받는 편이 낫다. 그 어떤 명제도 생명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그리고 가난과 빈곤은 구별되어야 한다. 가난이 삶을 살아가며 나오는 결과라면, 빈곤은 삶을 강제하는 이유가 된다. 가난이 자존심의 척도가 된다면, 빈곤은 영혼의 타락과 관련이 있다.

  

  돈이 떨어져 가면 어떠한가! 원래 내 것이 아닌 것이고,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에는 내 목이 너무 높고, 내 생활을 버리기에는 너무 즐겁다. 통 안의  에피쿠로스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리고 돈이 란 건 무릇,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 아닌가? 너무 신경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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