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유독 길거리 전도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길을 나서면 대게 혼자이고,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땅바닥을 보고 있고, 눈꼬리가 쳐졌기 때문인 것 같다. 요컨데 말을 걸기 좋은 쉬운 남자인 것이다. 그 전도인들은 종류도 다양하게 나에게 꼬인다; 예를 들면 그린피스 같은 NGO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메이저 종교 포교나, 조상신에 제사를 지내라거나, 뭘 좀 사달라거나.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그런 일을 당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제법 그런 것에 대한 내성이 쌓였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방금도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왠지 그런 사람들은 감이 딱 온다. 대게 2인조로 활동하고, 한 명이 나한테 말을 거는 사이 다른 한 명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우리 둘을 지켜본다. NGO 조끼를 입고 있지 않으니 그쪽 사람들은 아니고, 세련된 복장이나 십자가 같은 액세서리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기독교 인도 아니라는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그러면 대게 조상신을 믿으라거나 제사를 지내라는 종교단체에서 나온 게 분명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이 사람들에게선 묘한 패배의 분위기가 난다. 뭐라고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 '이 사람들은 엄청 불행하구나' 하는 것이 느껴진다. 옷차림도 너무 수수하다. 남녀를 통틀어 칼라티에 통이 넓은 면바지가 아닌 사람은 몇 보지 못했다. 머리도 잦은 손질이 필요 없는 수수한 머리다. 액세서리도 거의 없고, 체구가 항상 작은 편이다. 즉, 온몸으로 '나는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다'라는 신호를 자신도 모르는 새에 쏘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뭔가 최소한의 것만 맞추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말투도 계급(?)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대게 갓 교육을 받은 텔레마케터 같은 느낌을 준다. 정말 능수능란하게 접근한 사람도 있지만 드물고, 대게 칭찬을 폭풍같이 쏟아내고 갑자기 이야기 좀 하자고 대뜸 부탁하는 식이다.
그리고 말을 붙이는 방법도 전형적이다. 글쎄, 옛날에는 좀 더 화려한 방법을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대게 '인상이 좋으시네요' 나 길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전에 당했던 방법 중에 좀 화려한 것은
'아 제가 홍익대학교 심리학과 학생인데요~'
로 시작해서 그 자리에서 성격검사와 설문조사를 하고 한 시간가량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설문조사 항목에 신에 관한 항목이 없었더라면 뭔가 그대로 납득하고 따라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늘 만난 사람들도 전형적이었다. 다만 좀 어리숙했는데, 다짜고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그 남자가,
"와 정말 동안이시네요."
라고 칭찬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쪽이 나를 언제 봤다고 내 나이를 알고 있는 건가. 차라리 멋있다고 하면 기분이라도 좋을 것을. 문제는 나의 피식거림이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던지, 말을 계속 거는 것이었다.
"인상이 정말 좋으세요."
"와 엄청 선한 기운이 흘러나오시네요."
"이야기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
옆의 여자는 계속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고, 남자는 약간 애원조와 무기력조를 절반씩 섞어 놓은 듯한 어조로 내게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내 원칙 중 하나는, 절대로 이런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보내지 말자는 것이다. 어디선가 풍문으로 들은 말인데,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말을 거는 사람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고, 계급이 낮은 사람이 할당량을 못 채웠을시 여러 가지 가혹행위가 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무언가를 숭배하는 사람들일수록 계급의식이 확고하다는 일반화를 적용하면, 내가 그냥 휑하고 무시하며 가버리면 이 남자는 저 여자에게 깨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최대한 공손하게 보내주자는 게 내 원칙이다. 최소한 '죄송합니다' 한번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손하게 보내주면, 당사자들도 좀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 같다. 내가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시간이 없어서'
라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면, 딱히 강하게 붙잡지 못하는 것 같다. 자기들 끼리 웃기도 한다. 뭐 이런 병신이 있지 라는 웃음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겠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손함을 사용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 사람들은 웃으면서 돌아갔다.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칭찬을 몇 번 들었다는 것에도 기분이 좋기도 하다. 나는 칭찬을 들었고, 그들은 존중을 받았다. 나름의 윈윈인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나는 이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다. 언젠가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는 하다. 아니, 사실 놀려보고 싶다. 아마 그 사람들도 항상 자기들 이야기만 하니, 한번 쯤은 내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만약 내가
"내가 믿는 신은 발가벗은 채로 춤을 추면서 남국의 따듯한 땅으로 가는 신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의 그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에는 판타지 신화를 듣는 것 같은 묘한 스토리가 있다. 언젠가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이 고대 마야인의 달력에서 빌려온 듯한 개념의 '우주 4계절설'을 내에게 장황하게 설명했을 때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재미있었다. 한편의 판타지 소설을 듣는 기분이었다. 혹은 그 '조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그것은 내세인가? 아니면 기독교의 천국 같은 곳에서 머무는 건가? 그런 사후세계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나? 미래를 아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런 질문들을 퍼부어 보고 싶다. 분명 이상한 궤변이나 늘어놓을 것이 뻔하지만, 정답이 없는 이 세계에선 그것 또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얼렁뚱땅 끝내는 것 같지만- 그들을 막 대하지 말자고 제언하고 싶다. 그들이라고 해서 그러고 싶어 하겠나. 만약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거나 적당한 때에 적당한 도움이 있었다면 그런 종교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내가 그 위치에 있었을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철학자가 그랬듯이,
'그들의 왜소함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들을 긍정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