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갑자기 구역질을 느꼈다.
무언가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 그는 늘 일어나던 것처럼 7시에 일어나 세수와 면도를 하고, 조용히 계란 프라이에 삭은 김치, 눅눅한 밥 몇 술을 떠 먹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음식에서 '맛'이라는 요소를 추출해 버려서 생김새 이외에는 음식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는 회사 급식을 먹고, 몇 번의 나른함을 묵묵히 참아가며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을 하는 것이다. 그는 늘 그래 왔고, 오늘도 다른 점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집에 돌아가는 그 길 위에서 이유모를 구역질을 느꼈다. 구역질은 그의 위장을 갑작스레 강타했고, 그 위장의 비명이 식도로 타고 결과물을 내놓는 것을, 목구멍의 노력으로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그는 매우 놀랐고, 구역질은 곧 가라 앉았지만, 집에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을 느꼈다. 정체모를 괴한이 자신의 삶을 집 밖에서 노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남자는 굉장히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었다. 전날 구역질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상쾌한 아침이었다. 이례적으로 그는 콧노래 까지 불러가며 출근을 했다. 하지만 밝은 예감은 언제나 틀린다고, 그는 곧 어제와 같은 격렬한 구역질을 느꼈다. 회사의 번쩍이는 정문까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남자는 창백한 안색으로 구역질을 진정시키며 회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의 구역질을 제어하지 못했는데, 그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구역질은, 말하고 있던 목구멍의 빈틈을 지나쳤고, 그대로 그의 앞에 앉아있던 어떤 부장의 머리 위에 그대로 쏟아졌다. 끔찍한 정적이 흐르고, 그대로 발표는 마무리되었고, 그가 몇 개월이나 공들였던 프로젝트는 없어져 버렸다.
그날 오후 늦게, 그는 반차를 내고 병원을 방문했다. 아직도 그 이유모를 구역질의 여진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였다. 의사는 피곤에 절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의 설명을 대충 들으며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그리고 컴퓨터에 무언가를 짧게 타이핑하더니, 그에게 한마디 했다.
"신경성 위장염으로 보이니 스트레스를 받지 마시고 약을 드십시오."
남자는 알 수 없는 알약들의 이름이 표시된 처방전을 받아 들고 우울하게 병원에서 나왔다. 남자는 그 처방전이 자신의 상태를 조금도 낫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약국에서 처방전이 종이 포장에 싸인 알약과 교환되어 나왔다. 남자는 약봉지의 우울한 무게를 느끼며 약국에서 나왔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구역질을 느꼈다.
이후의 일은 말 안 하지 않아도 뻔히 알 것이다. 구역질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구역질은 그의 일상생활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밥 먹을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구역질은 예측 불가능하게 올라왔다. 심지어는 그가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구역질의 빈도는 점차 잦아졌다. 한 번은 그가 구두를 신는 그 사이에 두 번 씩이나 올라오기도 했다. 회사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도, 밥숟갈을 들 때도 구역질이 났다. 보고서를 낼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그러므로 그가 그의 쥐꼬리만 한 퇴직금과 정산된 반 달치 월급을 받고 퇴사를 결정한 것은 놀랄 만 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몸 조리를 잘하게. 혹 어떨지 모르잖나. 완쾌되면 다시 회사에서 봄세."
그가 쏟은 토사물을 뒤집어 썼던 부장이, 그가 사표를 낼 때 한 말이었다. 진심이라고는 전혀 담겨져 있지 않다는 걸 남자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묵묵히 짐을 챙겨서 회사에서 나왔다. 나오는 길에 그는 또 한번 구역질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의사들은 각각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신경성이라는 평범한 대답부터, 알 수 없는 세균성 질병, 바이러스, 혹은 새로운 신드롬이라는 진단까지. 여러 가지 약을 처방받고, 일종의 수술 같은 것도 받아보았지만 소용은 없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갖가지 민간요법이나 종교, 무속신앙 같은 것들도 시도해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기괴한 장식품을 사보기도했고, 굿도 받아보았고, 며칠을 물만 먹는 괴이한 요법도 해보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남자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 갔다. 몸무게의 앞자리 수가 단 몇 주만에 바뀌었고, 몸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머리도 듬성듬성 빠지기 시작했다. 눈은 점점 시체의 그것과 같이 흐리고 초점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의 구역질 만은 불길한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그래서 결국 남자는 삶을 포기해버렸다. 구역질은 그에게 강제로 삶을 놓아버리도록 했다. 그는 그가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버리고, 집안의 모든 것을 헐값에 경매에 팔아버렸다. 모든 일은 이틀도 걸리지 않고 빠르게 처리되었다. 마침내 그 도시에 남자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자, 그는 적은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났다.
남자의 여정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의 여정은 묫자리를 찾는 것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는 죽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 죽을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구역질로 가득한 그의 삶에는 죽을 자리조차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어디에나 사람들이 들끓었고, 그에게 불쾌한 관심을 가졌으며, 아무도 자신의 땅에서 그 남자가 죽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저 사람이, 저곳에서는 이 사람이 남자를 방해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죽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고, 경찰은 그를 거칠게 병원에 쳐 넣으려고 했다.
그래서 남자는 아무도 없는, 죽을 곳을 찾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동반자로 그의 구역질을 데리고 있었다. 식사로는 꿀을 탄 물을 한잔 마시는 것으로 족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꽁꽁 싸매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 수 없었지만, 두툼한 옷 아래에는 거의 가죽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몸이 감추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여정을 걸어 다녔고, 아주 불가피한 상황이 터졌을 때만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는데, 그가 몰고 다니는 어떤 불길한 기운이 그에게 말을 걸려는 모든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위협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걷고 또 걸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끝에 어떤 높은 산에 오르게 되었다.
이곳은 그에게 좋은 묫자리일까? 그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럴 것 같다는 좋지도 않은, 그렇지만 나쁘지도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산을 올랐다. 그의 산행에는 어딘가 비장한 무성영화 같은 면이 있었다. 구역질과 더불어 꽁꽁 싸맨 옷이 더웠기 때문에, 그는 산을 오르면서 그가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 던져버렸다. 그의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그에게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은 없었다. 구역질이 나면 거리낌 없이 그의 길에 토사물을 뿌렸다. 꿀이 다 떨어지자 그는 물만 마셨고, 물마저 다 마셔버리자 배낭을 버렸다. 옷가지도 하나씩 벗어서 팬티바람이 되었다. 그의 걸음은 점차 느려졌고,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산을 올랐다.
남자는 마침내 산의 정상 언저리에서 동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죽을 자리로 적당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점유되고 있었다. 그 동굴의 주인은 어떤 노인이었다. 노인은 덥수룩하게 머리털과 수염이 자라 있어서 얼굴 윤곽조차 확인하기 힘들었다. 거친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은 체구가 꽤 커서 어딘지 모르게 곰 같은 인상을 풍겼다. 노인은 팬티 바람에 앙상한 시체 같은 남자를 발견하자 놀라움의 표시로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노인은 이내 자신이 하던 일로 눈을 돌렸다. 남자는 다른 곳으로 갈 기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곳에서 그의 여행을 끝냈다.
그리고 구역질하는 사내와 노인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노인은 거의 모든 순간, 남자가 그의 동굴에 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낮의 대부분의 시간을 산에서 식량을 모으는데 썼고, 밥을 하고, 투박한 칼로 공예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필시 그것으로 생필품을 살 돈을 마련하는 것 같았다). 밤에는 불을 피우고 잠자리를 준비한 다음, 잠을 잤다. 가끔 노인은 조용하고 서정적인 노래를 불렀고, 주머니에서 나무 피리 같은 것을 불었다.
남자는 동굴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동굴에서 벽을 등지고 푹신한 이끼 위에서 하늘만 쳐다보았다. 동굴에서는 그는 해가 뜨는 여명부터 달이 차오르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밤중에는 별이 쏟아지듯이 반짝였다. 남자는 잠이 오면 시간에 상관없이 한 낮이라도 눈을 감았다. 배가 고프면 이따금 노인이 그에게 주는 거친 빵과 야생 열매, 투박한 나무잔에 담긴 물을 받아 먹었다. 그동안 노인과 남자는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서로 평범하지 않은 형태의 친절을 베풀었다. 어쩌면 두 사람의 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우정일 지도 몰랐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절대 표현하지 않는 사이 말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계절이 몇 번인가 바뀌고, 남자는 하늘만 쳐다보았다. 노인은 나무를 캐고, 밥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었다. 높은 산중에서만 흐르는 특별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 날 해가 내리 쬐는 정오, 남자는 문득 자신의 구역질이 멈추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 구역질이 멈추어 있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구역질은 그것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없어졌다. 독수리 한 마리가 그 동굴의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남자는 몸을 일으켜 그가 기대어 있던 동굴의 이끼에서 일어났다. 녹슨 기계가 움직이는 것 같이 온몸이 삐걱거렸다. 하지만 구역질이 빠져나간 자리에 다시 생의 의지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위태롭게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노인과 마주쳤다. 노인의 등에는 나무가 한 가득 실려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이 사람은 낯설구나. 그는 몇 년 째 여기 살았지.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혐오가 말끔히 사라졌구나. 그는 이제 춤추듯이 움직인다."
노인의 마치 그곳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노인이 그를 보면서 다시 말했다.
"그는 한번 죽었다가 살아났구나. 이제 그는 다른 사람이다."
얼마 뒤 , 남자는 산을 내려왔다. 노인은 그에게 자신의 여벌 옷과 봇짐을 챙겨 주었다. 그들 사이에 작별하기 위해 많은 말이나 행동은 필요하지 않았다. 남자와 노인은 서로에게 존경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남자는 산 밑으로 내려갔고, 노인은 다시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남자는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집도 구했다. 마치 예전의 삶과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의 삶에는 한번 죽었다 살아난 사람 밖에 느낄 수밖에 없는 어떤 중대하고도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