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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Aug 27. 2015

꿈 속에서

우리의 머릿속에서 매일 매일 벌어지는 일들

결국 이 퍼즐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이 동화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에 달렸다고, 나는 최종적으로 결론 내렸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 만으로도 적들에게는 꽤나 큰 위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들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내가 돈키호테라는 점이다. 모든 등장 인물 중에 가장 어리다는 점ㅡ물론 육체적인 의미가 아니다ㅡ이 적들로 하여금 섣불리 장기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체는 우리에게 조금씩 조금씩 승리의 가능성을 보태준다. 즉, 나의 존재는 이 세계 전부에 있어 혼란과 같은 것이다. 내 주위에서 사건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왜곡되고, 뒤틀리고, 꼬인다. 하지만, 그게 꼭 우리 편에 좋은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혼란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음으로. 

  사실 내가 우연히 만들어진 이 세계를 필연적으로 사랑해야 할 이유는 없다. 꿈이 끝나면 어차피 사라지는 세계인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이 끝나면 다른 꿈이 시작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다. 왜?


  모든 걸어 다니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생명체들이 편을 갈랐다. 그리핀과 바닷거북, 토끼와 모자장수, 퀸, 킹, 거인들, 소인들. 유일하게 편을 가르지 않은 것은 어린아이들 뿐이었다. 누구나 어린아이들을 자신들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그 이분법의 대척은 당연하게도 흑색과 백색이다. 그 대척의 첨단에는 하얀 소녀와 검은 늙은이가 있다. 그리고 나는 하얀 소녀의 휘하에 있다. 아니, 그녀의 아래에 있기로 선택했다. 거기엔 마땅히 그래야 할 의무 같은 게 없었지만, 어쩐지 그것이 나에겐 옳은 길로 여겨진다. 


  현재는 하얀 소녀의 병력이 많이 밀리고 있다. 한때 그녀의 영토는 이 광활한 대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검은 늙은이가 많이  우세해졌다. 검은 늙은이의 병사들은 하나하나로 치면  보잘것없지만, 그것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우주의 소행성에서  불시착했던 어린 왕자도ㅡ어렸지만 매서운 검을 휘두를 줄 알았던ㅡ검은 늙은이의 병사들의 매복에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적지만 강력했던 하얀 소녀의 병력들 또한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성안에서 치료 중이었다. 늙은 명장인 엔데는 빛나는 유산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으며, 그리스와 노르웨이의 신들, 거인들은 기계시대의 새로운 신에 패한 이후로 전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하얀 소녀의 영토는 검은 늙은이의 공격에 밀려 마침내 그녀의 수도에 있는 마지막 도시를 마지막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성은 조로아스터교의 어떤 초인이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으로 방어가 되고 있었다. 그 성벽은 벽돌 하나하나가 강력한 회의주의에 단련이 되어 있었는데, 검은 늙은이의 병사들이 수시로 쏘아대는 뉴스와 신문으로 만들어진 폭탄에도 굳건히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분명하게 검은 늙은이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하얀 소녀의 독려에도 그녀의 병사들은 점차 사기를 잃어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늘에는 전자제품을 가득 실은 폭격기들이 돌아다니고, 왜곡된 종교서적과 편향된 가짜 철학자들이 성문을 부스려고했다. 대기에는 매캐한 매연이, 시냇물에는 알게 모르게 배신이 섞여 있었으며, 사람과 사람을 타고 넘어 절망이 전해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병사들은 성벽을 의지해 이 불리한 싸움을 잘 버텨가고 있었으며, 새로운 강력한 영웅이 다시 와주기를 기대했다. 그들은 이 싸움을 언젠가 이길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과 다르게, 큰 일이 터지고 만다. 어떤 스파이에의 독에 의해 하얀 소녀가 쓰러진 것이다. 그 스파이는 성공과 믿음이라는 버젓한 가면을 쓰고 하얀 소녀의 사람들 사이에 끼었더랬다. 하지만 정작 그 스파이가 하는 행동은 탐욕과 비이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소녀와의 독대에 성공한 그 스파이는 소녀의 물컵에 독약을 타는 것에 성공했다. 이 일은 하얀 소녀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암울한 패전을 예고하게 했다. 그녀의 최고의 명의였던 에리히 프롬은 그녀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노라, 우리는 모두 준비를 해야 하노라,라고 비통해했다. 


  그러던 중에 내가 도착했다. 고대의 철학자들이 마지막 지혜를, 결정론이 양자론에 맞서 마지막 계산을, 생명의 나무가 마지막 달콤한 열매를, 모든 악기들이 마지막 연주를 준비할 때였다. 


"당신은 우리를 도울 수 있어요." 


  하얀 소녀가 힘이 없지만 부드러운,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계의 한쪽 끝으로 달려가 주세요. 그곳에는 오직 '나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황금으로 만든 정원이 있어요. 그곳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그곳에서 이 세계의 모든 것이 태어나요. 그곳에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세요. 우리들이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말이에요. "


  그녀는 나에게 가죽으로 된 묵직하고 오래된 책을 건넸다. 책의 제목은 없었으며, 책의 속표지에는 이 책이 23년이 된 책임이 적혀있다. 책의 사분의 일 정도가 쓰여져 있었다. 


"책의 이름은 뭔가요?"


 내가 책의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책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답니다. 책이 다 쓰여 졌을때, 그리고 그 황금의 정원이 마지막 열매를 맺을 때, 그 열매 속에 마지막 책의 제목이 들어있답니다."


  나는 로시난테를 타고 세계의 끝으로 간다. 물론 이 사실을 안 검은 늙은이가 나를 방해했다. 때로는 금은보화가 가득한 상자로, 때로는 포르노그라피의 매혹적이지만 사악한 여자들로, 때로는 허무와 절망으로 가득 찬 염세주의의 안개로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뜻밖의 우연과 뜻밖의 행운으로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금은보화가 있던 곳은 공교롭게도 월든의  호숫가였고, 포르노의 여자들은 마네라는 프랑스 사람에 의해 비웃음을 샀으며, 염세주의는 수학이라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괴물의 한 번의 날숨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빛나는 황금의 정원의 입구에서, 마침내 검은 늙은이를 만났다.


"어째서, 이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려는가? 너는 지금 이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희망이나 행복 같은 가치들은 역사의 무게와 보통사람들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 만으로도 너는 무릎 꿇고 말 것이다. 너에게 주어진 선택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밖에 없으며, 그나마 고통을 줄이는 길은 그 책을 나에게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한다.


"사실 너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며,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고 어린아이이다."


  그리고 나는 로시난테의 박차를 가하고, 긴 창으로 그의 심장을 꿰뚫는다. 그리고 빛나는 황금의 정원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정원의 한 가운데, 책을 내려 놓는다.



  어쩌면 우리의 꿈속에서는 위와 같은 일이 매일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환상과 모험을 거쳐 우리가 갖고 있는 희망이 무의식 중에 살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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