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Le passé-muraille
마르셀 에메 Marcel Ayme
이세욱/문학동네
파리 몽마르트르 오르샹가 75번지 2호의 4층에 매우 선량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뒤티유욀이라 불리던 그 남자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하나 있었다. 마치 열린 문으로 드나들 듯이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고 벽을 뚫고 나가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코안경을 끼고 짤막한 검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등기청의 하급 직원이었던 그는 겨울이면 버스를 타고 통근했고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중산모를 쓴 차림으로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뒤티유욀이 자기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깨달은 것은 마흔세 살에 막 접어들었을 때였다. 어느 날 밤 그가 자신의 독신자 아파트 현관에 있을 때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잠시 벽을 더듬거렸다. 전기가 다시 들어왔을 때 그는 자기가 4층의 층계참에 나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현관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으므로 그가 문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는 이성의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정말 벽을 통해 나왔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집에서 나올 때처럼 아주 쉽게 벽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기이한 능력은 그가 품고 있는 어떤 열망을 실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래서 토요일인 이튿날 오전 근무가 끝난 뒤 동네의 의사를 찾아갔다. 그는 자기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는 그의 말이 사실임을 확신하고, 진찰을 해본 뒤에 병의 원인이 갑상선 협부 상피의 나선형 경화에 있음을 알아냈다. 의사는 그에게 일을 많이 하여 체력을 과도하게 소모하라고 권하면서, 쌀가루와 켄타우르스 호르몬의 혼합물인 4가(四價) 피레트 분(粉) 정제를 일 년에 두 알씩 먹으라고 처방을 내렸다.
뒤티유욀은 처음 한알을 먹고 나서 나머지 약은 서랍에 넣어둔 채 까맣게 잊고 말았다. 또 의사는 몸을 혹사하라고 권했지만, 그의 공무는 과로를 일체 용납하지 않는 관행의 규제를 받고 있었고, 그의 여가 활동도 신문 읽기와 우표 수집이 고작이라서 체력을 과도하게 소모시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일 년이 지난 뒤에도 벽을 통과하는 능력은 온전히 간직되었다. 그러나 그는 무심코 부주의를 범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 능력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는 모험에 별로 관심이 없고 상상력의 충동에도 잘 이끌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갈 줄만 알았지 딴 방법으로 집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자기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갖지 않고 습관에 따라 살면서 아무 탈 없이 늙어갔을지도 모른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그의 삶을 갑자기 변화시키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뒤티유욀의 평화롭던 삶에 회오리바람이 몰아닥친 것은 그의 상관인 무롱 과장이 다른 부서로 옮기고 그 자리에 레퀴예라는 사람이 오면서부터였다. 말수가 적고 짧고 빳빳한 콧수염을 기른 이 신임 과장은 부임 첫날부터 뒤티유욀이 가느다란 사슬 달린 코안경을 쓰고 검은 턱수염을 기른 것에 마뜩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그는 짐짓 뒤티유욀을 성가시고 추저분한 퇴물로 취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그 신임 과장이 뒤티유욀의 평온한 삶을 여지없이 뒤흔들 개혁을 도모하고 있다는 거였다. 두튀유욀은 이십 년 전부터 공적인 편지를 쓸 때면 으레 다음과 같은 상용 문구로 시작하곤 했다. ‘금월 모일의 귀한(貴翰)과 관련하여, 그리고 그 이전에 교환된 서신들을 참고하여, 귀하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레퀴예 과장은 이런 양식을 미국식 서간문에 더 가까운 딴것으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귀하의 모일자 서신에 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하는 식으로. 하지만 뒤티유욀에게는그런 서간문 양식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기가 일쑤였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집착 때문에 그는 점점 더 과장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직장의 분위기는 갈수록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아침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고, 밤이면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 일이 잦았다.
레퀴예 과장은 뒤티유욀의 복고적인 의지가 개혁의 성공을 저해하는 것에 역정이 나서 자기 사무실에 인접한 어두침침한 골방으로 그를 쫓아버렸다. 그 골방은 복도 쪽으로 난 좁고 나지막한 문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었고, 그문에는 ‘허드레 물건 치워두는 곳’이라고 크게 써놓은 표찰이 아직 붙어 있었다. 두튀유욀은 이 전례 없는 모욕을 체념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신문의 사회면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친 참혹한 사건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면, 레퀴예 과장이 그 사건의 희생자라고 상상하는 자신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장이 그의 골방에 느닷없이 들어와한 통의 편지를 흔들어대면서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이런 걸레 같은 편지를 계속 쓰겠다 이거지? 그래,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우리 과에 망신을 주는 이런 형편없는 쓰레기를 계속 만들어보라고!”
두튀유욀은 항변을 하고 싶었지만, 과장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에게 타성에 젖은 바퀴벌레라고 욕을 한 다음,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구겨 그의 얼굴에 던지고 나가버렸다. 뒤티유욀은 겸손하지만 자긍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골방에 혼자 남은 그는 신열이 오르는 기분을 느끼다가 문득 어떤 영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과 과장의 방을 가르는 벽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온몸을 대뜸 들이밀지 않고 머리만 건너편에 나타나도록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과장은 책상 앞에 앉아서 어떤 직원이 결재를 받으려고 제출한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에 쉽표 하나가 잘못 찍힌 것을 발견하고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손놀림으로 쉼표를 옮겨 찍으려고 하는데, 사무실 안에서 난데없이 기침 소리가 들렸다. 과장은 고개를 들었다. 뒤티유욀의 머리가 보였다. 과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 머리는 마치 사냥을 기념하기 위해 박제해놓은 짐승의 머리처럼 벽에 붙어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박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머리였다. 가느다란 사슬이 달린 코안경 너머에서 증오의 시선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머리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레퀴예 과장, 당신은 깡패에다 상놈에다 개망나니요.”
과장은 겁에 질려 입을 딱 벌린 채 한동안 그 머리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 복도로 후닥닥 뛰어나가서는 골방까지 줄달음질을 쳤다. 뒤티유욀은 차분하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손에 펜을 들고 여느 때처럼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과장은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우물거리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가 또다시 벽에 나타났다.
“레퀴예 과장, 당신은 깡패에다 상놈에다 개망나니요.”
이날 하루 동안에만 그 무시무시한 머리는 스물세 번이나 벽에 나타났고, 그 뒤로 며칠에 걸쳐서 매일 그와 비슷한 횟수로 출몰했다. 뒤티유욀은 그 장난에 제법 미립이 나자 과장에게 욕지거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알쏭달쏭 한말로 그를 위협했다. 이를테면 악마 같은 웃음소리를 간간이 섞어가며 유령이 내는 것 같은 음산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는 거였다.
“나는 가루(Garou)다! 가루! 늑대인간이다! (히히히) 모두가 전율한다. 부엉이들마저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 (히히히)”
이런 괴성까지 듣게 되자 과장은 낯빛이 더욱 창백해지고 숨이 더욱 가빠지면서 머리털이 쭈삣쭈삣 곤두서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첫날에 과장은 몸무게가 오백 그램이나 줄었다. 이어지는 한 주일 동안 그는 부쩍 야위기 시작했고 수프를 포크로 먹는다거나 경찰관들에게 군대식으로 인사를 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그러다가 두 번째 주가 시작되었을 때, 구급차 한 대가 그의 집으로 와서 그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갔다.
레퀴예 과장의 압박에서 풀려 난 뒤티유욀은 ‘금월 모일의 귀환과 관련하여…..’ 하는 식의 자기가 좋아하는 상용 문구로 다시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의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벽들을 뚫고 지나가고 싶은 걷잡을 수 없는 욕구였다. 벽을 통과하는 행위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의 집 같은 데서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그렇게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하찮은 일에 자기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이내 불만을 느끼게 마련이다. 게다가 벽을 통과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모험의 출발이며, 후속과 발전, 요컨대 어떤 보람을 요구하는 행동이다. 뒤티유욀은 그 점을 아주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자기 안에서 확대의 욕구, 자기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고 자기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열망이 새록새록 더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벽 뒤에서 자기를 부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동경이 마음 안에 자리 잡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자기 능력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없었다. 그는 신문을 읽으면서 자기의 목적을 찾고자 했다. 특히 정치면과 스포츠면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했다. 정치와 스포츠는 명예로운 행위일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그런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면의 사건-사고 기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알고 보니 사회면의 기사들은 그의 목적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아주 많았다.
뒤티유욀은 먼저 자기능력을 도둑질에 사용해보기로 했다. 그가 처음을 불법 침입을 행한 곳은 센느 강 우안의 상업 지구에 있는 큰 은행이었다. 그는 열두 개쯤 되는 벽과 칸막이를 통과한 다음 여러 금고 속으로 들어가 호주머니에 지폐를 가득 채웠다. 그러고는 은행을 빠져나오기 전에 빨간 분필로 ‘가루가루’라는 가명을 써놓고 아주 예쁜 사인까지 남겼다. 이튿날 그 사인은 모든 신문에 그대로 실렸다. 일주일이 지나자 가루가루라는 이름은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했다. 대중은 경찰을 그토록 보기 좋게 조롱한 대도(大盜)를 향해 거리낌 없이 호감을 표했다. 그는 매일 밤 은행이나 보석가게 나부 잣집을 상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재물을 터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줌으로써 자기의 명성을 드높였다. 파리에서나 시골에서 나 다소 몽상적인 여자라면 누구나 그 무시무시한 가루가루에게 몸과 마음을 주는 꿈을 꿀 정도였다. 불과한 주일 새에 뷔르디갈라라는 보석가게에서 유명한 다이아몬드를 도난당하고 시영 신용금고가 털리는 사건이 터지자 대중의 열광은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내무부 장관이 사임해야 했고 애먼 등기 청장도 장관과 같은 배를 타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뒤티유욀은 일약 파리의 거부들 중의 하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등기청 직원으로 충실하게 근무하고 있었고, 그 충실한 근무 태도 덕분에 근정훈장 수훈자의 물망에 오르기까지 했다. 아침에 출근해보면 간밤에 그가 한탕 멋지게 해낸 일을 두고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동료들의 그런 논평을 듣는 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들의 평가는 이런 식이었다.
“그 가루가루 정말 대단해. 그는 초인이고 천재야.”
뒤티유욀은 그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쑥스러운 마음에 낯을 붉혔고, 우정과 감사의 뜻으로 눈을 반짝였다.
어느 날, 동료들이 늑대인간을 좋게 평하는 분위기에 너무 방심한 나머지, 그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비밀을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은행 도난 사건을 다룬 신문기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료들을 약간 멋쩍게 바라보다가 그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 사실은 말이야, 그 가루가루가 바로 나야.”
뒤티유욀의 고백에 와르르 터져나온 동료들의 웃음이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그 고백으로 그가 얻은 것은 가루가루라는 조롱 섞인 별명뿐이었다. 저녁에 퇴근할 때마다 동료들은 “어이, 가루가루, 오늘 밤엔 어디를 털 거야?” 하며 그를 계속 놀려댔다. 그리하여 그의 삶에 다시 그늘이 드리워졌다.
며칠 후 뒤티유욀은 파리 시내에 있는 한 보석가게를 털다가 일부러 야간 순찰대에 붙잡힐 행동을 했다. 그는 카운터에 서명을 해 놓고 순금제 술잔으로 진열창을 깨뜨리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려고만 했으면 그는 얼마든지 벽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야간 순찰대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보기에도 그는 체포되기를 스스로 원했던 게 분명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고백을 믿어주지 않아 그의 마음에 상처를 준 동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다. 아닌 게 아니라 뒤티유욀의 동료들은 그 이튿날 신문의 1면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천재적인 동료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고, 그를 본떠 짧은 턱수염을 기름으로써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떤 동료들은 그에 대한 회한과 찬탄이 너무 지나쳐서 친구와 친지의 지갑이나 손목시계를 훔치려 하기도 했다.
동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경찰에 붙잡힌다는 것은 어쩌면 특별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경솔한 행동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의 결심에서 겉으로 드러난 동기는 그다지 주요한 것이 못 된다. 뒤티유욀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면서, 자기 욕구에 굴하고 있는 거라고 생가했지만, 사실 그는 그저 자기 운명의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감옥살이를 경험해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의 경력에 관록이 붙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뒤티유욀은 파리의 ‘상테’라는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 운명이 자기에게 복을 내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두꺼운 벽들을 보자 그의 마음에 저절로 환희가 일었던 것이다.
그가 수감되고 바로그 이튿날 교도관들은 뜻밖의 일을 접하고 경악했다. 뒤티유욀이 자기 감방 벽에 못을 하나 박아놓고 거기에 교도소장의 금시계를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손목시계가 어떻게 해서 자기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밝힐 수 없었고 밝히려 하지도 않았다. 그 손목시계는 주인에게 되돌아갔다가 그다음날 뒤티유욀의 침대 머리맡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시계 옆에는 교도소장의 책꽂이에서 가져온 『삼총사』 제1권도 함께 놓여 있었다. 교도소장과 교도관들로서는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괴이한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교도관들은 이따금 엉덩이를 발에 채이곤 했는데, 그 발길질이 어디에서 오는 지를 모르는 채 서로에게 지청구를 늘어놓았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것을 이제 벽에도 발이 있다는 속담으로 바꿔야 할 판이었다. 뒤티유욀이 수감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아침, 교도소장은 자기 사무실에 들어서다가 책상 위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소장님께
금월 17일에 우리가 가진 면담과 관련하여, 그리고 작년 5월 15일 자의 회람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저는 『삼총사』 제2권의 독서를 이제 막 끝냈기에 오늘 밤 11시 25분에서 11시 35분 사이에 탈주할 예정입니다. 깊은 존경의 뜻을 전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가루가루 올림
그날 밤 그의 탈주를 막기 위해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음에도 뒤티유욀은 정확히 11시 30분에 교도소를 빠져나갔다. 다음날 아침 이 소식이 대중에게 알려지자 곳곳에서 열렬한 환호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뒤티유욀은 또다시 도둑질을 하여 자기의 대중적인 인기를 절정에 달하게 하고서는 몸을 숨길 걱정조차 하지 않는 듯 태연자약하게 몽마르트르 거리를 돌아다녔다. 탈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그는 ‘꿈’이라는 카페에서 정오 조금 전에 친구들과 백포도주를 마시고 있다가 체포되었다.
뒤티유욀은 다시 교도소로 보내져 삼중으로 빗장을 지른 어두컴컴한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으나 바로 그날 저녁 그곳을 탈출하여 교도소장의 아파트로 갔다. 그는 손님 접대용으로 비워놓은 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아홉 시쯤에 가정부를 불러 조반을 가져 다 달라고 했다. 가정부의 신고를 받고 교도관들이 달려왔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아무런 저항 없이 체포되었다. 몹시 화가 난 소장은 그의 감방 문 앞에 보초를 세우고 그에게 식사로 마른 빵만 주는 징벌을 내렸다. 그러나 그날 정오쯤에 뒤티유욀은 교도소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는 커피까지 마시고 난 다음에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소장님, 이거 죄송해서 어쩌지요? 조금전에 밖으로 나올 때 깜박 잊고 소장님의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식당에서 아주 곤란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사람을 하나 보내서 계산을 치러주시지 않겠습니까?”
소장은 사람을 시키지 않고 직접 달려와서 격분을 참지 못하고 협박과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일로 자존심이 상한 뒤티유욀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적정하고 그날 밤 교도소에서 탈주했다. 이번에는 신중을 기하여 검은 턱수염도 깎고 가느다란 사슬이 달린 코안경도 뿔테 안경으로 바꾸었다. 거기에다 운동모자를 쓰고 커다란 체크무늬가 들어간 상의에 골프 바지까지 입으니 전혀 딴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쥐노대로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거처로 삼았다. 그는 이미 처음 체포되기 전부터 자기 가구의 일부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을 이 아파트에 옮겨 놓은 바 있었다.
뒤티유욀은 자기의 명성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벽을 통과하는 기쁨도 이미 감옥에 있을 때부터 조금 시들해져 있던 터였다. 아무리 두껍고 단단한 벽도 이젠 한낱 병풍처럼 시시해 보였다. 그에겐 무언가 새롭게 도전해볼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는 이집트에 있는 어느 육중한 피라미드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 보기를 꿈꾸었다.
이집트 여행의 꿈이 무르익어가는 동안 그는 우표를 수집한다든가 영화를 본다든가 몽마르트르를 오랜 시간 산보한다든가 하면서 더없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의 변신은 아주 완벽했다. 그래서 그가 가장 친한 친구들 곁을 지나가도 턱수염을 밀어버리고 뿔테 안경을 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장 폴이라는 화가가 마침내 그의 진짜 신분을 간파했다. 그 화가는 동네 사람의 외모에 나타난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는 예리한 눈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이 화가가 동네의 길 모퉁이에서 뒤티유욀과 맞닥뜨렸다. 화가는 다짜고짜 막된 변말로 이렇게 말했다.
“어이고, 보아하니 자네 곰들을 엿 먹이려고 둥기로 상판갈이를 했구먼.”
이 말은 흔히 하는 말로 하면 대충 ‘보아하니 자네 형사들의 눈을 속이려고 기둥서방으로 변장하였구먼’이라는 뜻이다.
뒤티유욀은 “아, 들켜버렸네” 하고 중얼거릴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일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진 그는 이집트로 떠나는 것을 서두르기로결심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에 그는 르픽 거리를 걷다가 어떤 금발의 미인을 십오 분 간격으로 두 차례 만나고 나서 그만 그 여인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었다. 마음에 사랑이 싹트자 그는 우표 수집도 이집트 여행도 피라미드도 금세 잊어버렸다.
한편 그 금발의 여인은 그녀대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즈음의 젊은 여인들에게는 골프 바지와 뿔테 안경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없었다. 골프 바지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쓴 남자는 영화인 같은 느낌을 주었고, 칵테일파티와 캘리포니아의 밤을 꿈꾸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뒤티유욀이 장 폴을 통해서 알아보니, 불행하게도 그 아름다운 여인은 난폭하고 질투심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있는 처지였다. 그 남편이라는 자는 저 자신은 밤마다 싸돌아다니며 방탕한 짓을 일삼으면서도 제 아내는 집 안에 꼭꼭 처박아두고 싶어 하는 졸렬하고 의심 많은 사내였다. 그자는 밤 열 시에서 새벽 네시 사이에 아내를 홀로 두고 밖에 서지 내기가 일쑤였는데, 나갈 때는 그냥 나가는 게 아니라 아내가 혹시 밖에 나갈까 싶어서 방문에 이중으로 자물쇠를 채우고 덧창까지 잠그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그자는 낮에도 아내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몽마르트르의 이 거리 저 거리로 아내를 미행하는 일조차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단속하고 있단말일세. 누가 제 마누라 넘볼까 봐 전전긍긍하는 밴댕이 소갈딱지지.”
장 폴은 그렇게 주의를 주었지만, 뒤티유욀의 마음은 오히려 더욱 달아오를 뿐이었다. 그다음날 뒤티유욀은 톨로제 거리에서 그 젊은 여인과 다시 마주쳤다.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뒤를 따라 유제품 가게로 들어갔다. 그녀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뒤티유욀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방문과 덧창을 걸어 잠근다는 것도 알지만 그날 밤에라도 그녀의 방으로 가겠노라고. 금발의 여인은 낯을 붉혔다. 우유통을 든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촉촉이 젖은 다정한 눈길을 보내며 그녀가 가냘픈한숨을 쉬었다.
“이를 어쩌지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날은 햇살이 유난히 찬란했다. 뒤티유욀은 밤 열 시쯤에 노르뱅 거리에 있는 그녀의 집 근처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견고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보이는 것이라곤 지붕 위로 솟은 풍향계와 벽난로 굴뚝뿐이었다. 그때 담에 나 있는 문 하나가 열리더니 어떤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 쥐노 대로 쪽으로 내려갔다. 뒤티유욀은 남자가 내리막길 모퉁이를 돌아 아주 멀리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열을 센 다음 사뿐하게 발을 놀려 벽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장애물들을 통과하며 내처 달려서 그 아름다운 여인이 갇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너무 놀라서 넋을 잃은 채 그를 맞았다. 그들은 한시가 넘도록 사랑을 나누었다.
그 이튿날 뒤티유욀은 격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그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그깟 일로 그녀와의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우연히 서랍 속에 흩어져 있는 알약들을 발견했다. 그는 그 알약들을 아스피린으로 생각하고 아침에 한 알 오후에 한 알을 먹었다. 저녁이 되자 두통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게다가 마음이 들떠서 그는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 젊은 여인은 어서 밤이 오기를 바라면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의 추억이 그녀의 마음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심어 준 거였다. 그들은 그날 밤 새벽 세시까지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 곁을 떠날 때 뒤티유욀은그 집의 칸막이와 벽돌을 통과하면서 여느 때와는 다르게 허리와 어깨에 무엇이 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담 속으로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분명히 어떤 저항이 있음을 느꼈다. 마치 어떤 물질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유체(流體) 같던 그 물질은 반죽처럼 끈적거리기 시작하더니 그가 힘을 쓸 때마다 점점 더 딱딱해졌다. 마침내 온몽이 두꺼운 담벽 속에 들어갔을 때, 그는 자기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문득 낮에 먹었던 알약에 생각이 미쳤다. 아뜩한 공포가 엄습했다. 그가 아스피린으로 생각했던 그 알약들은 지난해에 의사가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없애기 위해 처방해준 약이었다. 그 약을 복용한 데다가 힘을 격렬하게 사용한 효과가 더해져서 의사의 처방이 갑작스레 효험을 나타낸 거였다.
뒤티유욀은 꼼짝달싹 못하고 담벽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 그는 여전히 돌과 한 몸이 된 채 그 담 속에 있다. 파리의 소음이 잦아드는 야심한 시각에 노르뱅 거리를 내려가는 사람들은 무덤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몽마르트르 언덕의 네거리를 스치는 바람의 탄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늑대인간’ 뒤티유욀이 찬란한 행로의 종말과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사랑을 한탄하는 소리다. 겨울밤이면 이따금 화가 장 폴이 기타를 들고 소리가 잘 울리는 적막한 노르뱅 거리에 나가 담 속에 갇힌 가엾은 벗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추위에 곱은 손가락들로부터 기타의 선율이 날아올라 달빛이 방울방울 떨어지듯 담벽 속으로 동당동당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