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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Feb 06. 2016

외로움 이야기

개인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외로움을 많이 타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욱 당황스러울 것이다. 평소라면 발에 채이는 돌멩이 같이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유난히 시큰시큰할 때 말이다. 길 가다 갑작스럽게 당하는 어깨빵처럼 온몸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그 외로움이 무엇일까- 하고 뒤를 돌아서 나를 치고 지나간 그 외로움을 자세히 보려 할 때면, 이미 그 녀석은 저만치 도망가 있다. 뛰어가기에도, 불러 세우기도 늦었다.


외로움에 치인 한쪽 어깨, 그리고 휘청거리는 다리를 달래 혼자 애써 맥주를 마시러 간다.  뜬금없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오늘 같은 연휴 전날의 술집, 게다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는 술집은  텅텅 비어있다. 이곳은 천장이 높아 마음에 든다. 장르를 알 수 없는 잔잔한 노래가 알맞은 볼륨으로 나온다. 입구 쪽의 바에서 이야기 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자리에 냉큼 앉아서 맥주를 시키고, 아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의 통증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맥주가 나오기 전의 그 짧은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앉아서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아마 얼빠진 사람으로 보였는지 종업원의 얼굴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연달아 뜬다. 4인용 테이블에 맥주가 한 잔 놓인다. 맥주를 반 백 병정도 더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여백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노트북을 주섬주섬 꺼낸다. 무겁고 오래됐지만 아직은 충실하게 기능을 하는 노트북이다. 하지만 할 것은 딱히 없다. 페이스북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신다. 


구석자리에 앉아 있자니, 마치 이곳과는 관계없는 제 3의 관찰자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본다. 바에서는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이다. 여자 둘 중 하나는 바텐더이고, 다른 한 명은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남자는 다른 일을 하다가 가끔씩 끼어들고, 여자들은 바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세명 다 종업원일까? 락앤락 통에 담긴 도시락에는 비빔밥 같은 게 담겨 있던 것 같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노랫소리가 생각보다 너무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그 이야기를 가로막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귀를 막는다.


아까 그 외로움을  쫓아갔어야 했다고, 맥주 한 잔을 다 비워갈 때 즈음 생각한다. 설사 잡지 못하더라도 따라갔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질책한다. 그 녀석을 따라가고, 그리고 거칠게 물었어야 했다. 어째서 나를 치고 지나갔냐고 말이다. 순순히 대답해 주지 않을 태세였다면 주먹이라도 한 방 갈겼어야 했다. 후회가 후회를 뒤덮고, 그 두터운 무게감에 짓눌린다. 


바에 앉아 있던 남자가 다른 두 명의 여자에게 인사를 하더니 곧장 나가버린다. 남자가 나가자마자 노래가 바뀐다. 어쩌면 남자의 퇴장이 우주가 보내는 무언의 신호였을까 생각하여 곰곰이 생각하지만, 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메뉴판  한쪽에 쓰여 있는 글귀에 눈이 간다.

'The problem with the world is that everyone is a few drinks behind'

라고 쓰여 있다. 마침 잔도 다 비웠겠다, 쓸만한 조언이라 생각하고 한 잔 더 시킨다. 정말로 어쩌면 문제의 근원은 술을 먹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취기가 올라오지 않지만 취한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해본다. 바보같이 느껴져서 이내 곧  그만둔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서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손에 쥔 것이 없다고 말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마법의 램프에 들어가 있고, 내가 쥐려 할  때쯤 너무 작거나 너무 큰 것으로 변해있다.  종래엔 내 손에 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를 치고 지나갔던 외로움은 어쩌면 나에게 경고를 해주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봐, 무언갈 움켜쥐어야 한다고. 만약 아무것도 없다면- 지금은 어깨로 널 부딪치지만, 다음엔 주먹으로 흠씬 두들겨 팰 테니까.'

하지만 막막하다. 내 앞길은 캄캄한 어둠만 깔려 있고, 내가 걸어온 길은 산산조각 난, 빛나지만 덧없는 가루가 되어 있다.  오직 내가 서 있는 이 길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불안하게 깜박거린다. 손에는 손전등 하나, 작은 촛불 하나 없고, 그리고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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