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데 Jan 22. 2017

카페 알베르

비극적인, 너무나 비극적인-

아마 공간 디자이너 입장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여기 카페 알베르가 그러하다.


어쩌다 볼일이 있어서 강남에 오게 되었다. 약속 시각까지 5시간이 남았다.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루트로 카페를 검색했다. 사용한 키워드는 '조용한','맛있는 커피' 딱 두 가지였다. 그 두 가지만 잘 지켜진다면 내 자리 옆에 사자가 자고 있어도 상관하지 않을 터였다. 


CGV를 끼고 골목을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카페 알베르가 보인다. 일단 외관이 굉장한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스쳐 지났기 때문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지하층에도 해가 들어오도록 널찍한 공간을 남겨두었고, 마당이 여유롭게 있고, 건물의 전면이 약간 부식된 철 색깔로 덮여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요컨대 자연 친화적-모던함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을 통과해 두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후회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커피를 시키기 위해 줄을 서 있다는 것은 조용한 카페라는 것과 사전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에 있는 것과 같은 정도의 차이가 있다. 나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1층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가득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사람이 3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이 있다는 것이었다. 빈자리 하나 없이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마치 기다란 지네를 보는 것 같았다.


황망히 걸음을 옮겨 지하를 탐색하러 갔다. 보통 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법이다. 나 하나 앉을 자리는 있겠지-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서 본 광경은 나를 얼어붙게 하였다.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모습이었다. 물론 불과 악마들은 없었지만 말이다. 단테의 묘사 중에 이런 지옥이 있었다. 뜨겁게 녹은 쇳물이 있는 솥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악마들은 뜨거움에 뛰쳐나오거나 숨이 막혀 올라오는 사람들을 창으로 쿡쿡 찔려서 다시 들어가게 만든다. 그리고 계단 위에서 본 지하층의 광경은 마치 내가 그 지옥을 바라보는 단테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듯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 지옥을 함께 건너갈 베르길리우스가 없었고, 나는 2층으로 향했다.

지하층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2층은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 2층에 앉아서 글을 쓰는 지금도, 이 단어보다 이곳을 더욱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곳은, 2층은 - 수용소다.


지하층처럼 위에서 바라보지 않아서인지, 사람이 거의 똑같이 많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몇 바퀴 휘휘 둘러보아도 빈자리가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나가라는 신의 계시인 셈이다. 그래서 총총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4인 좌석에 앉아 있던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어났다. 심지어 콘센트도 있는 좌석이었다. 발로그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발을 끌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짐을 풀고 커피를 시키러 1층에 내려갔다. 주문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카운터의 뒤편엔 핸드드립만 주문하는 곳이 있었다. 영국의 어떤 유명하지만 알 수 없는 커피를 내린다고 했다. 미심쩍었다. 그곳에서 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나의 차례를 기다렸고,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아메리카노가 나오는데 거의 20분가량 걸린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항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진동벨을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와 노트북을 꺼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 2층의 풍경에서 뭔가 위화감이 든다. 공간과 공간을 이루는 요소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났다. 대단히 모던한 인테리어였는데, 어두운 금속 프레임과 나무의 느낌이 강렬한 대비를, 그들 사이를 노출 콘크리트가 부드럽게 받아주는, 하여튼 잘 모르겠지만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닥터후의 한 에피소드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가 어떤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고 기괴한 장치가 나를 방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위화감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진동벨이 울리고, 커피를 가져와서 한 모금 마실 때까지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랜덤 재생 목록에서 '발퀴레의 기행'이 나왔다.


흔히 '무릎을 탁 친다'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 나는 수사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무릎을 탁 쳤다. 이곳은 수용소였다. 2차 세계대전의 한 장면인 것이다. 톰 크루즈가 나오는 '작전명 발퀴리'의 한 장면처럼(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오히려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느낌일 것이다) 건조한 방에 사람들이 가득가득 모여있다. 방은 기능적으로 꾸며져 있다. 사람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여러 장식적인 요소가 없는 것이다. 투박한 콘크리트, 차가운 금속 벽, 다른 재료가 없었기에 만든 나무 가구들이 기능을 제공한다. 그들은 사람에게 호의를 내보이지 않는다. 방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저마다 불안에 떨면서 공허와 허무에 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거나, 의미 없는 격려와 위로 따위를 해주는 것이다. 혹 누군가는 고개를 들거나 차가운 땅을, 벽을 보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의미를 찾아본다. 그 수용소의 모던함은 사람을 잘게 구겨서 의미를 상실시킨다.

그리고 21세기에 카페 알베르는 그것을 재현했다. 아니, 재현이라기보다 갑자기 그러한 성질을 얻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이 카페 알베르의 책임도, 혹은 이것을 설계한 디자이너나 매장관리를 하는 매니저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커피는 굉장히 맛있다. 매장은 깔끔하고 멋지다. 고카페는 구석구석 잘 관리되고 있다. 공기 중엔 맛있는 디저트 냄새가 떠돈다. 하지만 이곳은 수용소의 성질을 얻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다.


사람이 너무 많다! 이것은 비극적인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20세기의 큰 비극과 21세기의 어떤 카페를 이어주는 불행한 우연의 일치인 것이다. 사람들. 너무나 많은 사람들. 카페의 세련됨은 사람들의 중력에 의해 왜곡되어 음산함을, 심지어 무시무시함을 전해준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이곳에 왔다면 어쩌면 나는 이곳을 사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 4시는 그러기엔 적당하지 않은 셈이다.


강남에서 카페를 찾는다면, 한 번쯤 들러보길 권한다. 몇 시이든 말이다. 


P.S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는게 참 아쉽다. 

작가의 이전글 맥도날드 시그니쳐 버거에 대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