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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Jul 17. 2017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조석현 옮김

P선생은 오랫동안 뛰어난 성악가로 명성을 날렸던 지방의 음악 교사였다. 그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무렵이었다. 학생들이 자기 앞으로 다가와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학생이 말을 걸면 목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누구인지를 알았다. 이런 일이 점점 더 빈번해지자 P선생은 당혹스러워하기도 하고 멋쩍어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안에 휩싸이기도 했다. 가끔은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눈앞에 아무도 없는데도 사람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리를 거닐다가 소화전이나 주차요금 자동징수기를 보면 마치 아이들의 머리라도 본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구의 장식을 향해 말을 걸었다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도 처음 한동안은 그가 착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웃어넘겼다.  P자신도 웃었다. 그에게는 남다른 유머감각이 있었고 선문답처럼 들리는 역설과 과장이 그의 장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음악적 재능도 여전히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달리 아픈 데도 없었고, 건강이 전보다 나빠진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실수들이 어찌나 익살맞으면서도 재기가 넘쳐 보이던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또 앞으로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뭔 가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에 그가 당뇨병에 걸리고 나서부터였다. 당뇨병이 눈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ㄷㄷ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P선생은 안과를 찾아가 진찰을 받고 자세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선생의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에 문제가 있네요. 저보다는 신경전문의에게 가보세요.”라고 말했다. P선생이 나를 찾아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치매 증상이 없다는 것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교양이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말도 또박또박 잘하는데다상상력과 유머감각도 풍부했다. 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약간 이상한 점도 있었다. 나를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내 느낌으로 그의 귀는 분명 나를 향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눈은 아닌 것 같았다. 보통 평범하게 사람을 쳐다보는 그런 눈빛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코, 오른쪽 귀, 뺨을 거쳐 다시 오른쪽 눈으로…... 마치 내 얼굴의 부분 부분을 자세히 연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 얼굴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표정 변화는 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 얼굴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표정 변화는 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그 당시에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저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시선 처리와 표정이 남들과 약간 달랐던 것이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아니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가 안 좋아서 오셨나요?” 하고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눈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아무런 시각적인 문제도 못 느끼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하지만 가끔씩 실수는 해요.”

잠깐 밖으로 나와 그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다시 방으로 돌아와 보니, P선생은 창가에서 평온하게 창밖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바라보고 있다기보다는 듣고 있었다.

“차 다니는 소리가 들리네요. 저기 멀리서 기차 소리도 들리고요, 마치 교향곡처럼 들리지 않나요? 혹시 오네게르의 <기관차 태평양 234호>라는 곡을 아시나요?”

정말로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런 멀쩡한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걸까? 검사를 해보자고 하면 혹시 언짢아하지 않을까?

“물론 그러셔야죠, 의사 선생님.”

늘 하는 일상적인 검사인 근육 강도, 팔다리 협조 기능, 반사 반응, 피로도 검사 등을 하는 사이에 불안감은 조금 가라앉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이상한 점이 눈에 띈 것은 반사 반응을 검사할 때였다. 왼쪽 구두를 벗기고 열쇠로 발바닥을 긁자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시시해 보일지는 몰라도 이것은 반사 반응을 검사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그런 다음 그에게 신을 신어도 좋다고 말하고 눈보개를 준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1분이 지나도록 신을 신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좀 도와드릴까요?”

“뭘요? 누구를 도와주신다는 말 씀이지요?”

“선생님이 신을 신는 것 말입니다.”

“아차, 신을 깜빡했군.”

그는 마치 독백이라도 하듯 “신? 신?” 하며 난감해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선생님의 신 말이에요. 조금 전에 벗어놓았던 신 말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아래쪽을 찾았지만, 엉뚱한 곳만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시선이 자기 발에 가서 딱 멈추었다.

“이게 내 신 맞죠?”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아니면 그가 잘못 본 것일까?

손을 자신의 발에 갖다 대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제 눈이….. 이게 제신 맞죠?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건 선생님의 발이에요. 신은 저쪽에 있어요.”

“그런가, 어쩐지 발인 것 같더라니.”

농담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님 미쳤을까? 아니면 정말 눈이 안 보이는 것일까? 이게 바로 그가 말하는 ‘이상한 실수’라면, 그것은 내가 본 중에 가장 이상한 실수일 것이다.

더 이상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가 신(그의 발)을 신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P선생은 아무런 문제도 안된다는 듯태연했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는 듯했다. 나는 다시 검사를 시작했다. 왼쪽에 놓인 물건은 못 보는 일이 가끔 있기는 했지만, 시력은 바닥에 떨어진 바늘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좋았다.

그의 눈은 사물을 보는 데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를 펼쳐서 그에게 보여준 다음 그 잡지에 어떤 사진이 있는지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반응은 아주 이상했다. 그의 눈은 내 얼굴을 쳐다볼 때처럼 여기저기로 빠르게 옮겨 다니며 각각의 세세한 특징을 잡아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밝게 빛나는 것이나 색채, 형태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설명을 했다. 그러나 결코 장면 전체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마치 레이더 화면이라도 확인하는 것처럼 사소한 것은 잘 보았지만 전체적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진의 전체적인 인상에 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았고 말을 하려 들지도 않았다. 풍경이나 전체적인 장면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모래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하라 사막의 사진이 실린 잡지의 표지를 보여주었다.

“이 사진이 뭐로 보이시나요?”

“강이군요. 물 위로 테라스가 딸린 작은 집이 있고, 사람들이 테라스에 나와 식사를 하고 있구요. 색색의 파라솔이 여기저기에 보이네요.”

그는 표지에서 시선을 떼고 허공을 보면서(본다는 말이 맞기나 한 걸까?) 사진에 있지도 않은 것들을 꾸며대서 말하고 있었다. 사진에 있지도 않은 강, 테라스, 색색의 파라솔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신경학(또는 신경심리학)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도저히 어떻게 손써볼 도리도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 보이기도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할 정도인 사람이 어떻게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한 번 더 그를 만나봐야 했다. 그것도 그의 평소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바로 그의 집에서.

며칠 뒤 나는 P선생의 집을 방문했다. 내 가방 안에는 <시인의 사랑>의 악보(나는 그가 슈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와 지각 검사에 필요한 여러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P선생의 부인은 세기말의 베를린을 연상시킬 정도로 천장이 높은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방 가운데에는 고풍스러운 뵈젠도르퍼 피아노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악보대, 악기, 악보 등이 놓여 있었다. 책도 있고, 그림도 있었지만,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음악이었다. P선생이 들어왔다. 그러나 정신은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면서도 그는 자꾸만 커다란 벽시계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방향을 바로잡고 내게로 다가와 악수를 했다.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최근에 열렸던 연주회와 공연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약간 주저하며 그에게 노래를 한 곡 청했다.

“<시인의 사랑>이군요?”

그는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어쩌죠, 이젠 악보를 읽을 수가 없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반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나는 한번 해보겠다고 말했다. 오래된 피아노 덕분인지 어쨌든 내 피아노 연주도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P선생의 목소리는 나이 든 티를 숨길 수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풍부한 성량은 마치 피셔 디스카우의 목소리를 빼닮은 듯했다. 완벽한 귀와 목소리 그리고 반짝이는 음악적 지성이 어우러진 그런…… 음악 학교가 단지 동정심 때문에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P선생의 관자엽에는 분명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겉질은 음악에 관한 한 완벽했다. 문득 마루엽과 뒤통수엽 그중에서도 시각에 관여하는 부분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신경 검사를 하려고 가지고 온 정다면체들을 써 보기로 했다. 나는 우선 하나를 꺼내서 물었다.

“이게 뭐죠?”

“정육면체죠.”

“그럼 이건요?”

두 번째 것을 보여주며 물었다.

그는 좀 자세히 살펴봐도 되냐고 묻고 나서 날렵하게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대답했다.

“십이면체네요. 더 이상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전 이십사면체라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추상적인 형태를 인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의 얼굴은? 나는 카드 한 벌을 꺼냈다. 그는 모든 카드를 제대로 골라냈다. 잭, 퀸, 조커까지도. 그러나 카드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모두 정형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그가 얼굴을 보고 구별해냈는지, 아니면 그냥 패턴만을 보고 골라냈는지 판단할 순 없었다. 나는 가방에 넣어 온 만화책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번에도 그는 대체로 정확히 골라냈다. 처칠의 시거, 쉬노즐의 코…… 그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누구의 얼굴인지 금방 알아맞혔다. 그러나 만화 역시 형식적이로 도식적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그가 진짜 얼굴 즉 사실적으로 표현된 얼굴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 지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리가 안 나오게 한 채로 텔레비전을 틀자, 베티 데이브스의 초창기 영화가 나왔다. 러브 신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P선생은 배우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베티 데이비스를 원래부터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기가 찰 노릇은 그가 그녀나 상대 배우의 얼굴 표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텔레비전 속 장면은 아주 격렬한 장면으로, 열정과 놀라움, 반감과 분노가 교차하다가 결국 화해에 이르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P선생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화면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지어는 남자인지여자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영화에 대해 그가 하는 말들은 횡설수설 그 자체였다.

화면 속 장면이 영화의 비현실성 즉 할리우드의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현실 속 사람들의 얼굴은 좀 더 잘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는 그의 가족, 동료, 제자 그리고 그 자신의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나는 사진들을 한데 모아 그에게 보여주면서 조금은 근심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는 영화를 보여주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일이 실제 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거의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가족도, 동료도, 제자도, 자기 자신조차도. 아인슈타인의 사진은 알아봤지만 그것은 특이한 머리와 콧수염 덕분이었다 그는 아인슈타인 말고도 한두 사람을 더 알아봤다.

“아, 폴!” 동생의 사진을 본 그가 말했다. “각진 턱, 커다란 이, 폴이라면 언제든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러나 그가 알아본 것이 정말 폴이었을까? 폴의 얼굴 특징 중에 한두 개만을 보고 이 사람이 폴이구나 하고 나름대로 추정한 것은 아닐까? 뭔가 뚜렷한 특징이 없는 경우에는 결코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인지력 혹은 직관력 장애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전반적인 인지 방식에 뭔가 근본적인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대할 때 그가 보이는 반응은 마치 추상적인 포즐 검사를 받는 사람처럼 보였다. 심지어는 친척이나 친한 사람의 사진ㅇ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을 대하듯 건성건성 보고 말뿐이었다. 아는 사람의 얼굴을 대하는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의 특징을 찾아내려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사람을 대한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그저 형태로만 대했다. 게다가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하는데도 무관심했다. 우리는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개성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개성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P선생에게는 얼굴이 전혀 그런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얼굴의 겉모습도, 얼굴 속에 들어있는 내면의 개성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그의 집에 오기 전에 꽃집에 들러 화려한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샀고 그것을 윗주머니에 꽂고 있었다. 나는 그 꽃을 빼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표본을 받아 든 식물학자나 형태 학자 같은 행동을 했다. 꽃을 받는 사람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길이가 15센티미터 정도군요. 붉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초록색으로 된 기다란 것에 붙어있네요..”

나는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맞아요. 그게 뭐 같나요?”

“뭐라고 콕 꼬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플라토닉 다면체 같은 그런 단순한 대칭성은 없네요. 하지만 나름의 고차원적인 대칭성은 있을지 모르겠군요…….. 혹시 꽃일지도 모르겠네요.”

“꽃일지도 모르겠다고요?”

“꽃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딱 잘라 말했다.

“한번 냄새를 맡아보세요.”

내 말에 그는 다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차원적인 대칭성을 냄새로 알아내라는 말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잖게 그것을 코에 갖다 댔다. 그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예쁘군요! 철 이른 장미. 정말 천국 같은 향기예요!”

그는 “장미, 백합……” 하고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시각이 아니라 후각을 통해 실체를 인식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검사를 더 해보았다. 아직은 초봄이라 날이 추웠다. 나는 외투와 장갑을 소파에 벗어두었었다.

나는 장갑을 들어 올리며 뭐냐고 물었다.

“조사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장갑을 손에 들고 마치 기하학적인 형태를 조사하는 것처럼 자세하게 조사해나갔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주름이 잡혀 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음, 말하자면……”

그가 주저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설명을 하셨으니이제 그게 뭔지 말해보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뭔가를 넣는 물건인가요?”

“그래요. 그런데 뭘 넣는 거죠?”

“안에다 뭔가를 넣는 거겠죠.”

P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잔돈 주머니일 수도 있겠군요. 크기가 다른 다섯 가지 동전을 집어넣는…. 아니 어쩌면….”

나는 말이 엉뚱한 데로 흐르는 것을 막았다.

“뭔가 흔히 보던 것 같지 않나요? 몸의 일부를 넣는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그의 얼굴에는 뭔가를 알아냈다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장갑을 보고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장갑을 보면, 그것이 손에 끼는 친숙한 물건 즉 장갑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P선생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어떤 물건 앞에서도 그것을 친숙한 물건으로 보지 않았다. 시각적인 면에서 볼 때, 그는 생기가 없는 추상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현실의 시각 세계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현실의 시각적인 자아가 없었다. 그는 사물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는 못했다. 휴링스 잭슨은 언어상실증이나 좌반구 장애 환자들은 ‘추상적’이거나 ‘명제적’인 사고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환자들을 개에 비유한다. (사실은 개를 언어상실증 환자에 비유한다.) 그러나 P선생의 뇌는 기계처럼 정확하게 기능했다. 시각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면에서 그는 컴퓨터와 똑같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중요한 특징이나 도식적인 연관관계를 토대로 컴퓨터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해낸다는 것이었다. 얼굴의 부분을 그린 그림 세트를 이용해 범인의 몽타주를 만들 때처럼, 그러한 도식은 현실과 전혀 대응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의미는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검사로는 P선생의 내면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시각적 기억력이나 상상력에는 아직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일까? 나는 그에게 집 근처에 있는 광장을 북쪽에서부터 걸어온다고 상상하면서 거리에 보이는 건물들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오른쪽에 있는 건물들은 말했지만 왼쪽에 있는 건물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남쪽에서부터 걸어온다고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는 자기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들만을 말했다. 방금 전만 해도 생략했던 바로 그 건물들을 말이다. 그가 방금 전에 마음속으로 ‘보았던’ 건물들을 이번에는 전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 그것들이 더 이상‘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왼쪽에 있는 것을 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즉 시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에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외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내적인 문제이며, 그것이 시각적 기억력과 상상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만큼은 이제명 백해 졌다.

좀 더 높은 수준에서 그의 내면세계에는 어떤 시각 세계가 펼쳐지는 것일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시각화하고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데 거의 환상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 톨스토이가 떠오른 나는 P선생에게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질문해보았다. 그는 소설 속에 나오는 사건들은 쉽게 기억해냈을 뿐만 아니라 줄거리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각적인 특징이나 시각과 관련된 사건 그리고 시각적인 장면은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는 등장인물들이 한 말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소설에 나오는 인상적인 문장들을 말해줄 수 있냐는 물음에 그것들을 거의 단어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정확히 기억해서 인용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묘사에 대한 그의 인용은 공허했다. 그의 말에는 감각적이거나 상상적인 혹은 정서적인 현실감이 전혀 깃들어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내면적인 인식 불능증에 걸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다 이런 장애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시각화 능력의 장애는 얼굴이나 장면의 시각화 또는 시각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이야기나 드라마의 경우에만 크게 드러났다. ) 시각화의 능력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식과 관련된 시각화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아니 더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머릿속으로 체스 게임을 해 보자 했을 때도 그는 체스 판이나 말의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나 정도는 쉽게 이길 정도로 대단했다. 루리아는 자제츠키가 게임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생생한 상상력’ 만큼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제츠키와 P선생은 모두 똑같은 세계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의 가장 안타까운 차이는 루리아가 말한 것처럼 자제츠키는 ‘그 지옥 같은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잃어버린 자신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 끈질기게 싸운’ 반면에 P선생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다. 아니 자신이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지만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비극적일까? 둘 중 누가 더 지옥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일까? 상황을 알고 있는 쪽?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쪽?

검사가 끝나자 P선생의 부인이 커피와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탁자에 차려 놓고 우리를 불렀다. P선생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급히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접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다음, 멜로디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집어먹었다. 연신 노래를 흥얼거리며 케이크를 집어 먹는 모습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동작을 멈췄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난 것이다. 깜짝 놀라 움찔한 그는 먹고 있던 동작을 멈추고 마치 꽁꽁 얼어붙은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다. 여전히 탁자를 보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탁자와 탁자 위에 놓은 케이크 모두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때 그의 부인이 커피를 따랐다. 커피 냄새가 코를 간질이자 현실로 돌아온 그는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며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생활하는 것일까? 옷은 어떻게 입고, 화장실에는 어떻게 가고, 목욕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는 부엌으로 그의 아내를 따라가 그가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식사할 때랑 비슷해요. 늘 두는 장소에 제가 남편의 옷을 갖다 둡니다. 그러면 노래를 흥얼거리며 혼자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갈아입어요. 하지만 뭔가 방해를 받아 맥이 끊기면 완전히 아무것도 못하게 되죠. 그이는 입으려던 옷이 뭔지 잊어버려요. 자기 몸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답니다. 그이는 모든 걸 노래를 부르면서 해요. 먹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목욕할 때도 말이에요. 뭘 하든 노래를 부르면서 해요. 노래를 부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벽에 걸린 그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요. 그이는 노래뿐 아니라 그림도 잘 그렸어요. 학교에서 해마다 그림을 전시할 정도로요.”

나는 그 그림들을 흥미롭게 들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림을 그린 시간순으로 걸려 있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모두 생생한 느낌이 살아 있는 사실적인 그림이었다. 게다가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함도 사실성도 구체성도 떨어져 갔다. 훨씬 더 추상적으로 변해간 것이다. 아니 기하학적이고 입체ㅏ적이기까지 했다. 아주 최근에 그린 그림들은 물감으로 선과 얼룩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그려 넣은 것에 불과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나는 부인에게 내 느낌을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어머나, 의사 선생님. 그림 볼 줄 모르시네요! 선생님은 ‘예술적인 발전’을 보지 못하시나요?청므에는 사실주의였다가 나중에는 거기서 벗어서 추상적인 비구상 그림으로 발전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차마 가련한 P부인에게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그의 그림은 분명 사실주의에서 비구상으로, 다시 추상으로 바뀌어 갔지만 발전한 것은 화가 자신이 아니라 그의 병세였다. 시각 인식 불능증은 더 심해졌고 그에 따라 사물을 재현하고 상상하는 능력, 구체성에 대한 감각, 현실감이 모두 파괴되어가고 있었다. 그림들이 걸려있는 그 벽은 비극적인 병세를 전시하는 벽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예술이 아니라 신경학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부인이 한 말에도 일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병세와 그의 창작력이 투쟁하는 모습도 어느 정도는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그 둘 사이의 융합도 보였다 아마도 그가 입체파로 기울었던 시기에, 예술적인 발전과 병리학적 발전이 함께 이루어졌을 수도 있고, 그래서 그것들이 독창적인 형태를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구체성을 잃어가면서 추상성을 얻었고 그래서 선, 경계, 윤곽선 등 모든 구조적인 요소들에 대해 전혀 다른 감각을 발전시켰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실은 구체성 안에 있지만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추상성을 포착해서 그려내는 피카소의 능력에 버금갈 정도로 말이다. 마지막 그림들에서 전율을 느끼 기는 했지만, 그림들 속에 혼돈과 시작 인식 불능증의 흔적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커다란 음악실로 돌아왔다. 뵈젠도르퍼가 한가운데 있었고 P선생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지막 남은 과자를 먹고 있었다.

“아, 색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절 아주 흥미로운 환자라고 생각하고 계시죠? 저도 인정합니다. 이제저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말씀해주시고 조언도 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로서는 어디가 잘못된 건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 좋은 점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훌륭한 음악가이고 음악은 선생님의 삶 그 자체입니다. 만약 제가 처방을 내린다면, 음악 속에 파묻혀서 생활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음악이 선생님 생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내시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4년 전이었다. 나는 그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이따금 궁금해지곤 한다. 시각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음악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그를……. 그에게 음악은 시각을 대신하는 것이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대신 음악에 맞춰 행동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내면의 음악’이 멈추면 그는 당황해서 행동을 딱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표상과 의지로서의 세계》에서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순수 의지’라고 불렀다. 그가 만약 P선생,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완전히 상실했지만 음악 즉 의지로서의 세계를 완전하게 파악하는 P선생을 만났다면 얼마나 매료되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 점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질병(커다란 종양 즉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의 퇴행)의 점진적인 악화에도 불구하고 P선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가르치며 살았다.


사진

중절모를 쓴 남자/ 르네 마그리트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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