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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Aug 20. 2017

우아한 스탠스를 견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밝히는 것은 퍽 위험한 일이다. 

대화가 끝나고 나서 하루 정도는 흐른 뒤에야 비로소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어떠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의 지적 수준이 그것을 곧바로 해독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스탠스 자체가 언어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두세 시간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다음날 SNS에서 전자 멱살을 잡고 드잡이를 하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이런 전쟁터에서, 일부 조심스러운 사람들 - 그러니까 멱살잡이 하는 난장판에 끼고 싶지 않지만 자신의 스탠스를 표출해야만 하는(혹은 하고 싶은) 사람들은 우아한 전략을 수립했다. 바로 마치 자신에게 '정치적 스탠스'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 '우아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탕수육에 대한 부먹/찍먹 논쟁을 생각해보자. 부먹/찍먹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기존에 고수하던 입장이 있지만 섣불리 한쪽 편을 들기는 쉽지 않다. 이때 새로운 우아한 전략에 의거하여 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대체 그 부먹/찍먹을 선택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거죠?'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부먹/찍먹파는 생각할 것이다- 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논쟁에서 숫자는 곧 힘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두 대립파는 수많은 논거, 증명, 통계, 과학적 이론 같은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여 나를 설득하려고 시도한다. 나는 그것을 들으면서 그냥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항이라 해도 말이다. 주의할 점은 끄덕이는 도중에도 완전히 이해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각 파에 내가 그쪽의 스탠스를 '어느 정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부먹/찍먹파는 내가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했다며 흡족해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논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자극할 것이고, 나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나는 말 한마디와 몇 번의 끄덕거림으로 2개의 스탠스를 모두 갖게 되었으며, 모두에게 같은 스탠스를 갖는 동료로서 인식되었다. 우아한 방식으로 말이다.

지난주쯤인가, 나는 따릉이에 관한 두 지인 사이의 논쟁에 끼어버렸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뭐 그런거 가지고 논쟁을 벌이나 생각하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논쟁의 요지는 '따릉이를 타는 것을 자전거 라이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였다.  그리고 난 일주일에 따릉이를 두세 번씩 타는 따릉러로써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지만 괜히 일을 키울 거 같아 잠자코 있었다. 따릉이는 개인 자전거를 공유하는 형태로 이용하므로 자전거 라이딩이라고 봐야 한다는 시각과, 따릉이는 개인 자전거를 소유하면서 생길 수 있는 필연적인 이벤트-정비 및 수리, 장비들- 및 라이딩의 철학이 부재하므로 라이딩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첫째로 이 논쟁에서 승리하는 쪽으로 서울시의 공공자전거 정책이 바뀐다면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소모성 논쟁이었고, 둘째로 그들의 '지랄 맞은' 성격을 알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내가 피곤했다. 그래서 우아한 스탠스를 견지하는 방법으로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

'그런데 자전거 라이딩이 왜 중요한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라는 눈길을 잠시 받았지만 곧 그들은 나에게 라이딩의 역사와 철학, 서울시의 정책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릿속으로는 열대의 아무도 모르는 섬 같은 것을 생각했다. 중간에 설명에서 서로를 자극했었는지 이제 그들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서로에게 향해 있었다.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감았다. 열대의 섬에서는 기타를 치는 거북이와 나는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건 또 그것대로 만족스러웠다.



그림

어릿광대의 사육제/호안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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