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데 Jul 08. 2018

숲길과 까마귀

 

  기다란 자작나무 사이엔 시선들이 있었다.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지만, 일행 모두 알고 있었다. 원래 말이 없는 동료들이었지만, 이 시선을 느낀 이후로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푹 숙인 우리들은 시선이 우리를 훑듣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숲 사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시선의 근원을 찾으려고 하면, 이내 시선은 우리의 시선 밖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도 알고 있으리라.

  숲은 우리를 환영하지 않았다. 우리는 숲의 초입에서부터 그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 숲은 비현실적인 증오를 날붙이에 품고 있었다. 숲에는 동물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토끼나 새 마저도. 하다못해 작은 벌레마저도. 숲 전체에서 생명의 흔적이 싹 지워버린 것 같았다. 나무에 스치는 바람은 마른 장작이 타는 것 같은 소리를 내었고, 우리가 내는 눈 밟는 소리를 제외하면 마른바람 소리가 이 숲에서 나는 유일한 소리였다.

  게다가 눈 덮인 숲은 시간 감각을 뒤틀었다. 숲에 들어오기 전 분명히 중천에 해가 있었고, 어느새 해가 다 저물어갈 듯 나무의 머리 위로 붉은 기운이 걸려있지만, 도무지 해는 떨어질 줄 몰랐다. 이 숲에는 해 질 녘 황혼의 시간이 엉키고 설켜서 흐르지 않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영원할 것 같은 해 질 녘에 역시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갑자기 앞서 가던 동료가 걸음을 멈추었다. 숲 길에 눈이 밝은 사냥꾼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등 뒤에 맨 소총으로 손을 가져갔다. 우리도 덩달아 긴장하여 저마다 가지고 있는 무기를 꺼냈다. 누군가는 날이 서슬 퍼런 도끼를, 팔뚝 만한 길이의 마체테, 사냥용 엽총을 꺼내 들었고, 나는 허리춤에 찬 권총집에서 권총을 빼어 들었다. 사냥꾼은 우리를 돌아보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작나무의 굵은 가지 위에 앉아 있는 무언가를 소리 없이 가리켰다. 숲 눈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것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곳에는 까마귀가 있었다. 까마귀는 너무 까만 탓에 하늘에 미쳐 그리지 못한 어두운 공백 같았다. 어떻게 그것을 처음 발견하지 못했는지! 나를 포함한 일행 모두 까마귀를 보고 난 후 도무지 그 까마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람 팔뚝만큼 굵은 나뭇가지는 거의 독수리만 한 까마귀의 무게에 휘영청 휘어있었다. 까마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까마귀는 우리를 평가하고 있었다. 까마귀가 던지는 시선은 숲의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쳐다보던 시선과는 명백히 달랐다. 적어도 우리를 감시하던 그 시선에는 사악한 의도가 담겨있지 않았다. 그것은 좀 더 경계에 가까운 눈길이었고, 우리는 불안함 정도를 느꼈다. 하지만 까마귀의 시선은 알 수 없는 사악한 계획을 담고 있었고, 우리는 두려웠다. 우리는 한참을 긴장한 상태로 까마귀를 쳐다보았다.  

  사냥꾼이 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다시 우리를 돌아본 사냥꾼은 눈짓으로 무기를 집어넣으라 명령했다. 그의 눈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우리는 사냥꾼의 뜻을 따라 모두 소리를 내지 않으며 무기를 집어넣었다. 나는 다소간 안도했다. 그래, 굳이 저것을 자극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대로 지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냥 저 까마귀를 지나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사냥꾼은 몸을 잔뜩 낮춘 상태로 조심스럽게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러자- 

  까마귀가 날개를 폈다. 날개는 족히 가지의 한쪽 끝에서 나무 기둥에 거의 닿을 듯했다. 그 움직임 때문에 가지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하지만 우리의 주의를 끌은 것은 날개의 크기가 아니었다. 까마귀의 날개의 양쪽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사람 머리 정도는 족히 들어갈 것 같은 큰 구멍이었다. 커다랗게 뚫린 원 뒤로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갑자기 ‘탕’ 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사냥꾼은 놀라서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바로 내 뒤에 있는 엽총꾼이었다. 수차례 전쟁에 참여했던 그는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아마 수많은 전장의 경험으로 뭔가 불길한 것을 감지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경솔한 행동이었다. 

  불행히도 엽총꾼의 총알은 까마귀를 비껴가지 않았다. 파열음과 함께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고, 까마귀는 나무에서 눈 위로 떨어졌다. 까만 피가 까마귀 주위에 흩뿌려졌다. 풀썩하는 소리가 영원히 불행한 선고를 내리는 소리 같았다. 날개를 편 채 떨어진 까마귀는 오솔길을 아예 막아버렸다. 우리는 감히 그곳 너머로 갈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달았다. 사냥꾼은 엽총꾼을 돌아보며 매우 화가 난 듯 비난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끝일세. 어서 돌아가세."

  사냥꾼이 그렇게 말했을 때,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이 이상한 조합의 사람들을 모아 숲에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하는 부자-누구도 그의 이름이나 직업이 뭔지 몰랐다-조차도 사냥꾼의 말에 반대하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냥꾼의 말이 조금의 안도감을 주었다. 그래, 이 불길한 숲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나갈 수 있다. 어서 이 불길한 숲에서 나가서 이 숲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리라. 각자 저마다의 사정과 목적이 있어 이 숲에 들어오긴 했지만, 아마 모두 이런 식의 일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좁다란 오솔길을 되짚어 돌아가야 했다. 사냥꾼은 일행의 선두에 서기 위해 뒤로 걸어갔다. 일행의 중간에 서있던 나는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냥꾼의 눈에서 체념의 눈빛을 보았다. 죽음에의 체념이었다. 나는 사냥꾼의 눈빛에 전염된 듯 문득 죽음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미 죽어있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특정한 행동을 통해서 다른 세계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날개에 구멍이 뚫린 커다란 까마귀를 쏨으로써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제부터 날개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죽은 까마귀에 의한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사냥꾼의 출발 신호와 함께, 일행은 모두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다. 되짚어 돌아가는 길은 앞서 가던 길과 다른 점이 없었다. 기다란 자작나무 숲이 계속될 뿐. 하지만 숲의 초입부터 우리를 끈질기게 바라보았던 시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이제 숲은 오롯이 우리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까마귀와.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는 일행들 뒤로 까마귀의 시체가 저 멀리 눈 위에서 하나의 점처럼 작아져갔다. 나는 멀어지는 까마귀 시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돈이 궁해 이 괴상한 조합의 사람들과 돈 때문에 동행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나는 작가로서 이 이상한 광경을 담기 위해 이 곳에 이끌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로서의 숙명, 운명인 것이다. 그 운명을 따르기 위해서 나는 현실적인 감각을 앗아가는 이 광경을, 그리고 저 불길한 까마귀 시체를 눈에 담아야 했다.

 그런데 무언가 움직인 것 같았다. 까마귀 시체가 움직였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것이겠거니 하고 멈춰 섰다. 멈춰 서서 가늘게 실눈을 뜨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까마귀의 시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냥 꿈틀꿈틀 거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분명히 엎어져 있던 까마귀의 시체가 이제 똑바로 서있었다. 나는 겁에 질렸다. 미처 일행을 부를 사이가 없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진정되지 않는 손으로 까마귀의 시체를 가리켰다.

  까마귀는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멀어서 까마귀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모두 그 까마귀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쓰러진 나를 보고 누가 뭐랄 것 없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까마귀가 까악- 하고 울었다. 그 소리는 숲의 메아리가 되어 마치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우는 것 같이 들렸다. 선두에 가던 사냥꾼까지,  일행 모두 온몸이 경직된 채로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까마귀는 이제 똑바로 서서 우리를 향해 그 거대한 날개를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날개의 구멍은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커다란 하나의 눈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의 그 불행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까악-

  갑자기 까마귀가 부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 부리는 보통 벌려지는 정도보다 훨씬 더 크게 벌려졌다. 턱주가리가 이상한 각도로 벌어지고, 그곳에서 무언가 천천히 나왔다. 마치 좁은 번데기에서 나오는 나방과 같은 과정이었었지만, 훨씬 더 크고 무서운 것이 까마귀의 입을 통해 나왔다. 나는 그것을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다. 괴물? 악마? 요정? 나의 지식으로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까마귀의 머리를 가졌지만, 차라리 사람의 형상에 더 가까웠다. 날개가 달렸지만 그 날개는 공기보다는 불행을 더 유영할 것 같았다. 몸은 눈처럼 희었지만, 어째서 인지 까마귀의 검은색보다 더 검은 것 같이 느껴졌다. 부리는 길게 뻗어 나와 있어서 그 무엇이라도, 특히 생명이 있는 무엇이라도 꿰뚫어버릴 것 같았다.

  군데군데 빠진 기억이 있지만, 가장 먼저 사냥꾼이 총을 쏘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이후 몇 번의 총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오솔길을 달려갔다. 나 역시 권총을 빼어 들고 쏘려고 했으나, 손이 떨려 권총을 놓쳐버렸다. 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하지만 누구도 총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발악이었고, 한 두발의 총을 갈긴 후 모두 총을 버렸다. 우리는 미친 듯이 숲길을 달려갔다. 

  그것은 우리를 차례차례 하나씩 죽여갔다.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엽총꾼이었다. 내가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엽총꾼의 심장이 위치한 곳에는 그것의 부리가 길게 튀어나와 있었다. 엽총꾼은 아직도 달리려는 듯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부리를 빼자 엽총꾼은 그대로 고꾸라져 피로 눈을 붉게 물들였다. 휘익 소리와 함께 옆에 달리고 있던 부자가 사라졌고, 사람에게서는 나면 안 되는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내 앞에 무언가 검고 큰 것이 휘익 지나가나 싶더니, 저 앞서 달려가던 사냥꾼의 머리가 주욱 뜯겨나갔다. 사냥꾼의 머리 잃은 몸뚱이는 몇 발자국 더 걷나 싶었지만 그대로 쓰러졌다. 심장에서 뿜어내는 피가 분수처럼 목에서 솟구쳤고, 그 옆을 지나쳐 가는 나에게 튀었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죽어갔다. 그것은 우리를 집요하게 따라왔다. 나는 문자 그대로 죽음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일행을 모두 죽여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달리면서 제발 다음이 내가 아니길 빌었다. 아마 일행 모두 그러기를 빌었을 것이다. 모두 하나씩 끔찍하게 죽어버렸고, 남은 사람들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자작나무 사이 오솔길을 따라 뛰었다. 오솔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뛰었는지 모른 채, 그리고 누가 살아남았는 지도 알 수 없는 채로 우리는-나는 계속해서 뛰었다. 마침내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정신을 잃고 차가운 눈 밭 위로 쓰러졌다. 그것이, 까마귀가, 숲이, 운명이, 죽음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 지역에 사는 어떤 늙은 나무꾼의 침대 위였다. 정신을 잃은 지 닷새가 넘었다고 나무꾼은 말했다. 탈진해 눈 밭에 쓰러져 있던 나를 늙은 나무꾼이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나는 늙은 나무꾼에게 내가 경험한 것을 설명해 주었다. 숲과 까마귀, 그리고 까마귀 형상을 한 그것에 대해서 말이다. 늙은 나무꾼은 내 말을 듣고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숲에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고, 당신네들은 그것들을 깨운 것일세. 이 산과 함께한 일은 산에 묻어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게.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일 걸세. 신이 함께하길."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나의 삶은 전과 똑같이 궁핍했지만, 숲을 다녀온 뒤로 무언가 처절하게 변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일상의 세세한 것들이 다른 의미를 뗬다. 나는 현실에서 분리되었다. 도무지 일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쉽게 길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어딘가 닫히지 않고 열려있는, 아직도 숲과 나를 이어주고 있는 어떤 통로 같은 것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창 밖에서 까마귀가 운다. 

작가의 이전글 우아한 스탠스를 견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