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데 Nov 04. 2018

디지털 시대에서 문맹자로 살아가는 방법

    가끔씩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의 삶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시속 60km/h 이하로 주행하십시오-라고 쓰인 도로에서 시속 120km/h 정도로 주행하였다. 그런 악취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도 그런 규칙을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아래로 뉘인 콩나물 대가리와 동그란 무언가가, 그리고 그 밑의 붉고 굵은 줄이 내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었지만, 나는 그것이 내 차의 속력을 어느 정도로 제한하기 위한 것이란 것을 참말로 몰랐다.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300km/h까지 달릴 수 있는 차를 겨우 60km/h정도로 기어가게 하다니.

    상쾌한 기분으로 주행을 끝내고 오니, 집 앞에 붉은 글씨로 '무언가' 쓰인 봉투가 있다. 봉투 안 편지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 사이에서 손톱 반달 만 한 숫자가 몇 개 있고, 거기에 빨간 밑줄까지 쓰여있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봉투를 휙 던져버리고 진한 홍차를 끊인 후 홀짝인다. 해괴한 글자가 난무하는 TV보다는 라디오가 더 좋고,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는 글자 따위는 필요가 없는 법이다. 

    조용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차를 마시고 있자니,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차를 급하게 내려놓고 나가보니 험상궂은 얼굴의 경찰이 한 명 서있다. 그는 그의 얼굴이 상장처럼 가운데 박혀 있는 신분증을 내 얼굴에 디다밀지만, 나는 그곳에 쓰여있는 글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경험상 이렇게 늦은 밤에 남의 집에 함부로 쳐들어 올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라면 경찰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뭔가 복잡한 말-과속을 하였고, 벌금도 내지 않았으며, 출두 명령에도 불응한 죄-를 딱따구리처럼 쏘아붙였다. 그는 뭔가 대단히 위신이 상한 듯, 혹은 법의 대리자로서 정의의 철퇴를 휘두르는 불한당 역할이 맘에 드는 듯 한껏 인상을 쓴다. 그 경찰은 나에게 30분이라는 시간을 주었고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주섬주섬 짐을 싼 뒤 연행된다.

    유치장은 축축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불결하지는 않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철제 의자는 은근히 모던하기까지 하다. 20세기 범죄영화에서나 나올 법 한 철제 접이식 침대에는 폭신한 이불이 깔려 있다. 나는 이것저것 유치장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갑자기 나를 유치장으로 끌고 온 경찰이 나에게 서류 뭉치를 내밀면서 여러 가지 죄목으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될 거라 말한다. 서류에 쓰인 글자는 작고 빼곡하게, 멀리서 보면 마치 벌레 시체에 꼬인 개미 같아 보인다. 잠깐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가져온 경찰에게 최대한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한다. 자신은 그 도로에 속력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이다. 아니, 그런 게 있어도 평생 알 수 없다고. 그리고 당신이 가져온 이 서류에도 무엇이 적혀 있는지 모르니 서명할 수 없다고. 나는 결백하기 때문에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지만, 경찰에게는 아니꼬운 수작으로 보였나 보다. 경찰은 나를 무슨 벌레 보는 것 마냥 쳐다보고는 허리춤에 있는 곤봉으로 내 뺨을 두어 번 친다. 곤봉 때문에 휘청휘청하다가 나는 차가운 바닥에 고꾸라진다. 입안에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난다. 경찰은 쓰러진 내 몸뚱이 위로 서류를 툭 던지고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듯이 손을 툭툭 털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위한 내 몸뚱이가 내는 신음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사무실 쪽에서 들린다. 적어도 그것이 나 때문이라면,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경우 그래 왔듯이, 이제 누군가 우당탕하며 뛰어올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끝날 때 즈음 누군가 유치장에 헐레벌떡 들어온다. 아까 나를 때린 사람은 아니고, 그 사람의 상사쯤 되는 사람인지 어깨 견장이 좀 더 복잡하다. 그는 나를 유치장에서 꺼내 준다. 유치장에서 나가는 길에 그는 경찰 폭력에 관한 작은 오해와 경찰은 장애우에 관해 언제나 협조적일 것이며, 그에 관련한 법원 설문조사에 관대함을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

    여러 대의 컴퓨터와, 모니터를 보고 있는 사람과 모니터를 등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껏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경찰 상사는 나를 데려온다. 과도한 친절함으로 자리를 안내받고 앉자 경찰 상사는 모니터 안쪽에 앉아서 아까 나를 때린 경찰을 부른다. 무언가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다가온 그 경찰은 내 옆의 의자에 앉자마자 모니터 너머로 날아온 서류 더미로 대차게 얻어맞는다. 나는 그것이 서류 뭉치라 소리만 요란할 뿐인 쇼라는 것을 안다. 경찰 상사는 나에게 무언의 거래를 요구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저 인간도 적당히 맞았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말이다.

    나는 예의상 그럴 수 있노라고, 사람들은 곧잘 그런다고 하며 그 상사를 말린다. 상사는 다분히 과장된 몸짓으로 이 번 한 번은 넘어가 준다-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맞은 경찰을 돌려보낸다. 그리고는 내 카드에 있었던 1급 장애인 카드와 꼬깃꼬깃 적혀있는 나의 상황에 대한 병원의 진단서를 곱게 접어서 나에게 돌려준다. 


    "그러니까 선생님, 선생님의 상황은 잘 이해했습니다만 이미 법원에서는 출두 명령이 내려진지라 어쩔 수 없이 일단 지방 법원에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제 딴에는 친절하게 형광펜으로 칠해놓기 까지 한 서류를, 아까 나동그라진 내 몸뚱이 위로 던져졌던 서류를 다시 나에게 내민다. 하지만 도저히 나는 그것들에 그냥 사인할 수 없다고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이전에도 '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서류'에 사인해서 곤경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나는 설명을 요구한다.

    이 경찰 상사는 곧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산맥에 부딪혔는지 깨닫는다. 이건 단순히 밑줄 친 부분을 설명해주고 될 일이 아니다. 하다 못해 지금 받아야 하는 간단한 종류의 개인정보 활용동의서라 할지라도 그것이 근거를 두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을 '말'로 설명해야 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은 또 어떤 법률에 근거하고 있는지 절절히 설명해야 하고, 그리고 그 법은 또 어디에....... 그러니까, 경찰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에게 모든 성문법을, 헌법에서 시작해서 내려오는 모든 법의 줄기를 말하고, 나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긴 했다. 단순히 읽을 줄 안다는 사실 때문에 법을 적용받는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법은 전부 귀찮음 혹은 무관심에서 시작했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대게 이런 '무엇 무엇에 의거한 동의서' 혹은 '무엇 무엇을 위한 확인' 서류를 받으면 대강 읽어보고, 혹자는 제목조차 보지 않고 서명한다. 쌀알 사이에 밀알 나오듯 간혹, 정말 간혹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깨알처럼 적힌 '-법에 의거하여'라는 조항은 대강 넘어간다. 법조인이라면 자신이 교육받았던 대로 읽을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읽음 보다는 좀 더 나을 것임에도, 이런 서류에 금방 사인하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언제든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어디엔가 바뀌지 않는 원본이 활자로 쓰여있을 것이고, 누구라도 그것을 열람할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단순한 사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얇은 종이로 인쇄된 두꺼운 법률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자신이 서명한 서류의 법률적 근거를 모조리 찾고 싶다면, 많은 수고가 들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귀찮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귀찮고 그러한 것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대충 법률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법이란 것은 유명무실한 것이 아닌가? 아니 도대체 이 복잡한 성문법이란 건 어떤 간사한 녀석이 만든 것인가? 준법 시민이네 성스러운 헌법이네하는 것들은 단순히 일종의 귀차니즘이 아닌가-하는 의문점이 경찰 상사의 마음속에 떠올랐지만, 그는 이미 십 년 넘게 재직한 베테랑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이미 예상하고 있는 바이다. 그 경찰 상사는 결국 'J(나)의 개인정보는 이번 재판 출두 건과 관련된 용도 외에는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로 시작하는 영상부터 '이러한 법률이 존재함'으로 시작하는 영상까지 다양한 영상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지옥과도 같은 1주일이 흘렀으며, 결국 주말마저 반납한 경찰 상사의 '만약 이 빌어먹을 사람이 법원으로 가는데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내가 사직서를 내겠다'라는 광기 어린 영상을 찍을 때까지 나는 경찰서에 계속 드나든다.

    물론 법원에서도 나의 재판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싸움을 좋아하는 시민단체와 분란의 냄새를 맡는 자격미달의 기자들, 후원금이 부족한 장애인 단체와 유명해지고 싶은 변호사들이 나의 재판에 끼어든다. 원래대로라면 40초 안에 끝날 약식 기소였지만, 수많은 이의제기 속에 재판은 하루 이틀 길어진다. '법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죄인이 되는 것이 합당한가?', '어떤 개념을 인지할 수 없음에도 그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법이 있는 것인가?'와 같이 철학적이고 전두엽을 지끈거리게 만드는 질문이 재판장에 날아든다. 나는 한마디도 않고 있지만 나를 대신해서 말해줄 사람들이 내가 입술을 단 1mm조차 떼기 전에 고함을 치고, 나는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투사이자 새로운 정신의 대변자로 추앙받는다. 선량하고 가정을 사랑하며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하기 좋아하는 판사는 며칠간 인상을 쓰다 결국 나의 케이스를 무기한 연기하고 만다.

    이것과 관련해 무수한 스캔들이 돌았고 판사는 스트레스성 위궤양에 걸렸으며, 죄 없는 검사는 몇 달간 근신 처분을 받는다. 언론은 이 사건을 정의의 승리네 21세기 새로운 헌법의 제창이네 하는 거창한 제목을 달아 신문에 내보냈지만, 곧이어 터진 여배우의 스캔들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민단체와 장애인 단체는 모두 반짝하고 후원금이 증가했지만, 후원금은 곧이어 대표의 횡령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전보다 못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무고한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차는 약간 기가 죽은 듯 했지만 얌전하게 차고에 있다. 집은 예전과 다름없이 약간 눅눅한 냄새가 나고, 바닥이 차다. 나는 환기나 할 겸 문을 연다. 찬바람이 벽을 타고 산사태처럼 몰려든다. 나는 찬 바람에 홍차 생각이 난다. 홍차를 진하게 끓여서 소파에 앉는다. 그리곤 책상에 놓인 신문을 읽는다.


아, 문맹자로 사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 숲길과 까마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