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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Mar 18. 2018

3. 데자와를 마시자

보통의 공대생이 쓰는 보통의 대학원 일기

대학원 풍경은 대체로 합리적이지 않다. 100m 길이의 온도계(Thermocouple)을 만드느라-애당초 어째서 100m짜리가 필요한 걸까-주차장의 끝과 끝을 왕복하는 친구들을 본게 바로 저번주다. 그들은 이 추운 겨울에 땀을 펄펄 흘리고 있었다. 급하다나, 그렇다면 어째서 100m짜리를 사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그런 것들을 이어 붙이고 있는것일까,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뭐 하는 수 있나. 당장 나에게 닥친 비합리성을 격파하기에도 힘이 드는 상황인 것을.

하지만 이 비합리적인 대학원 풍경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는 이렇게 이상한 상황에 있소'라고 징징거리는 것이다. 합리적이지 않기는 우리 사회의 '그 어떤 곳도' 합리적이지 않다. 대학원은 유별난 곳이 아니다.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해 모든 일을 인턴에게 맡기는 비합리적인 회사에 일하는 인턴 친구를 두고, 나만 힘드오 하는 건 이기적인 짓거리다. 오늘 내가 적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쉬러 간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갔다면...? 꼼짝없이 일하는거지 뭐 

오늘은 음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갑자기 뭔 얼어죽을 음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생각보다 하루에 많은 시간을 무언갈 마시기 위해 소비한다. 예를 들면, 오전 12시 이내에 커피 한 잔을 마시지 않으면 오후 3시쯤 커피통-커피를 마시지 않아 발생하는 두통-이 오기 때문에 아침에 반드시 커피를 마신다. 정말 극한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만 알고 있는 카페에 가서 쉰다. 금요일 저녁에는 혼자 술을 꼭 마신다. 즉 대부분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마시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학부생 때는 주로 먹었다. 재수를 거치면서 힘들때 폭식하는 습관이 붙었었다. 정말 목구멍에서 음식이 튀어나올 정도로 먹고나면 이상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곤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대체로 마신다.

그 '마신다'라는 행위에는 물론 술이 포함되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아직은 때가 아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와 술, 모두 중요한 음료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다. 오늘은 데자와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홍차 계열 음료수의 투탑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이상한 음료를 좋아하게 됬을까?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옛날에, 그러니까 한 중고등학생 때에는 시쳇말로 '극혐'했었다. 그때는 뭔가 실론티파 였다고 할까. 데자와를 마시느니 우유를 마시는 것을 선택했었더랬다. 요 탄산도 없고, 달지도 않고, 찝질한 맛이나는 액체를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다.

데자와는 이미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음료였고, 주위에는 데자와를 신봉하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마 학부-대학원을 거치면서 데자와 영향권에 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하여 지금은 매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편의점에 가지 않는 이상, 편의점에 갔다오면 십중팔구 데자와가 손에 들려있다. 1+1행사를 하거나 500ml짜리 대용량을 사서 많다고 생각되도 보통 한번에 다 털어넣는다. 한창 많이 마실때는 하루에 4캔 정도를 마셨고, 지금은 하루에 한 캔 꼴로 마신다.

데자와를 묘사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단 기본은 밀크티이지만, 공차 같은 곳에서 파는 밀크티와는 다르다. 까페에서 만날 수 있는 영국식 밀크티,로얄 밀크티, 인도식 짜이와도 큰 차이가 있다. 오히려 데자와는 하나의 새로운 종류의, 요컨데 영국식, 태국식, 일본식, 인도식도 아닌 '동아 오츠카식 음료'다. 이들은 밀크티의 개념 혹은 이데올로기를 가장 작은 단위 까지 분해한 다음, 밀크티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재구성하라고 맡긴 게 틀림없다. 구성 재료로만 보면 밀크티와 같지만, 조립하는 과정에서 밀크티와 밀크티가 아닌 음료 사이의 골짜기에 빠진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밀크티를 판다. 출처: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949090&memberNo=63251

즉, 데자와는 비합리적인 음료다. 이건 도저히 정상적인 음료가 아니다. 상품으로서의 음료는 어딘가 selling point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메리카노는 향기로우면서 씁쓸하다. 콜라는 달고 상쾌하다. 레몬 주스는 시고 상큼하다. 홍차는 쌉살하면서 개운하다. 평범한 상황에서 밀크티에게 사람들은 우유의 부드러움과 차맛의 조화 같은 것을 바랄것이다. 하지만 데자와는 그런 것이 없다. 달지도 쓰지도 않다. 향이 있지도 없지도 않다. 카페인이 많지도 적지도 않다. 바디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즉 '데자와는 이러이러해서 마신다'라고 말할 만 한 포인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데자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데자와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당황하며 고개를 떨굴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일단 이런 저런 느낌이 날 수 있게 아무거나 섞어서 어떻게 되나 볼까요'라는 식으로 대충 만든 음료같다. 이런 걸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믿어준 동아 오츠카는 도데체...... 

동아 오츠카... 당신은 도덕책....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데자와의 selling point는 데자와 자체의 비합리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는 음료로서의 합리성을 배척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음료의 비합리성에 이끌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너무나 비합리적인 세계에 살고 있고, 비합리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합리주의자는 기꺼이 다른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오후의 홍차'나 '아쌈 밀크티'같이 좀더 밀크티 같은 제품들이 이미 존재한다. 원칙주의자라면 직접 밀크티를 우려마시거나, 밀크티 전문점으로 갈것이다. 하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세상의 비합리성을 몸소 체험하고있고, 시덥잖은 몽상가나 한량들, 그러니까 대학원생들은 데자와를 찾는다. 이 세상 음료중 거의 '데자와만이' 비합리적이니까.

오직 데자와만, 데자와만.

(데자와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집 앞의 편의점에서 파는 데자와를 찍어보았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이게 한 편의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500ml짜리 데자와가 1000원인데 240ml가 1200원이라니.....미쳤다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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