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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Jan 23. 2019

10. 2년의 대학원 생활에서 얻은 것들

보통의 공대생이 쓰는 보통의 대학원 일기

벌써 2년이나 지났다. 대학원을 들어온 지 말이다. 언젠가 느껴본 익숙한 느낌이다.

    '아니, 벌써 재수가 끝났다고?'    

    '아니, 벌써 3학년이라고?'

    '아니, 벌써 제대한다고?'

    내가 시간에 대해 무감각한 것인가? 2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참 긴 거 같기는 한데, 사람이 달라지기에는 좀처럼 충분하지는 않은 시간이다. 2년간의 대학원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게 벌써 2011년에 나온 노래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라고...!

        문제는 항상 같다. 항상 바쁘게 지낸 거 같기는 한데, 도통 단단하고 확실하게 얻은 것이 없다. 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아침에는 잘 일어나지 못하고, 계획한 것은 잘 지키지 않는다. 아이는 철들지 않았다. 아니면 미래에 대한 흐릿흐릿한 비전조차 없다. 게다가 이 불행한 석박사 통합과정생에게는 손에는 알량한 석사학위증 한 장 도 주어지지 않았다. 제기랄. 

    그래도 완벽하게 시간을 죽였느냐? 그건 또 그렇지 않다. 어딘가 닳고 닳아서 겉에서 보기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있다. 어떠한 일에도 배울 게 있더라니, 하다 못해 쓰레기를 버리는 일 조차 요령이 붙었다. 그래서 이제는 웬만한 일로는 성질도 나지 않는다. 어찌나 상식 밖의 일이 많이 생기던지, 이제는 이상한 일이 생기면 그 일의 견적이 나온다.

    '이건 3시간짜리 일이군! 저건 1시간이면 충분해! 저건 답이 없군!'

    물론 일을 보고할 때는 수십 배로 키워서 보고하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그래, 2 년간의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달관의 자세일 것이다. 몇 차례의 신경증(도대체 신경증이란 무엇인가)과 신경쇠약(진짜로 받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우울증(역시 정식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인터넷 자가 진단에서는 그렇다고 하였다!), 식욕 이상(식비 그래프를 보고 내린 결론이다), 무기력증(1주일 이상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기분을 느껴본 사람만 알 것이다)에 시 달리고 나니, 이제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나는 퍽 게으른 편이다. 그렇다고 무신경하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은 부분을 신경 쓰느라 혼자 지치는 타입이랄까. 부지런한 사람이 세심하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없겠지만, 게으름과 세심함의 조합은 썩 좋지 않다. 머릿속에선 으레 두 가지 반대되는 성질의 입자가 서로 만나 자기 붕괴를 일으킨다.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서 열심히 굴리다가 시간이 아슬아슬 해 질 때야 하기 시작하는, 관리자들이 소위 '미친놈'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사람인 것이다. 지금은?

어.... 오늘 해야 될 일이 뭐가 있더라   /     아!  그거 해야 되지!! 시벌!!!

    하지만 나는 나의 게으름에 완벽하게 적응해 버렸다. 소위 예전보다 더 한량 같은 한량이 된 것이다. 과제 보고 PPT를 처음 만들 때 열 두세 시간을 공들여가며 작은 픽셀 하나까지도 맞췄던 것이 기억난다. 어리석은 나 같으니라고. 이제는 교수님들이 5인 이상 모이지 않는 회의자료는 30분 안에 대충 만들고 넘어간다. 저번에 만든 PPT의 글씨체를 바꾸고, 그래프 색깔을 바꾸고, 위치를 바꾸고- 쨘! 하면 제법 다른 모양의 PPT가 나온다. 물론 지도교수야 '이 새끼-' 하겠지만, 모든 회의 참석자가 PPT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회의만 문제없이 진행되면 될 것 아닌가?


    그런 견지에서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바로 모든 일에 'No'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갖췄다는 것이다. 옳지 않고, 할 수 없는 일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특히 교수님의 요청 및 지시사항에 일단 'No'를 외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도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별로 좋지 않은 일이니까. 그렇지만 별 수가 없다. 항상 남이 하는 일은 쉬워 보인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사항들이 곳곳에 숨어있는지 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보자.

    꽤 오래된 일이다. 내가 하는 연구에 필요한 실험이 꼭 하나 있는데, 문제는 이 방법이 Standard가 만들어질 정도로 공통된 실험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 주된 업무가 실험 방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연구단이 제시한 실험 방법을 따랐다. 실험 장비를 세팅하고, 시험체를 만든 후 제시된 프로토콜을 따라서 실험을 진행했으니 겉에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볼 터였다. 하지만 실험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뭔가 문제가 많았다. 여기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실험 방법 자체가 시험체를 파괴시키는 경향이 있고, 시간에 따른 결과의 정량적인 측정이 어려웠다는 것을 말해둔다.

짐 캐리.... 당신은....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 실험 방법의 문제점을 교수에게 쫄랑쫄랑 말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돌아온 답변은 '방법을 개선할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특별한 종류의 지옥이 펼쳐졌다. 

    교수의 인사이트는 물론 참고할 만한 것이었다. 교수가 제시한 방법은 합리적이었고, (제대로만 된다면) 충분히 Standard로서의 실험 방법이 될 법했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는 도통 해결방법이 없던 게 문제였다. 이렇게 만드니까 저게 안되고, 저걸 하면 이번엔 다른 파트와 간섭이, 갑자기 시편이 녹슬지 않나, 어떻게든 해보려니까 아예 되지를 않고……. 그때 깨달았다.

    '아, 지금 상태가 어떻게든 최선(Local optimum)이었구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교수는 Local optimum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에겐 오직 Global optimum 뿐이었다. 최선이 아니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 당시에는 이해가 당연히 되지 않았다. 아예 실험을 안 해보신 분이라면 모르겠는데, 많이 해보셨을 분이 왜 이해를 하지 못하지?라고 말이다.

    교수의 기준은 나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곳에 있었고, 나는 그저 고통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실험 방법은 몇 번의 수정과 수정, 수정 그리고 수정을 거쳤다. 결국 교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안되나 보네? 그럼 일단 원래 있던 대로 하고 나중에 고치자.'

    실험 방법 수정에 소모한 시간 때문에 결국 타임라인이 정말 아슬아슬해지자 내려진 결론이었다. 무슨 연구가 이래? 하겠지만, 일단 이곳은 이랬다. 건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짧은 시간에 실험을 몰아해야 했고, 고통에 고통을 받았다. 

    결국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한참 동안이나 고심해본 바에 내린 결론이었다. 연구 결과를 독촉하는 상위기관도, 연구진을 생각하지 않는 교수도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지나치게 YES쟁이였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조금만 더 배우면 할 수 있을 것 같고, 뭐만 조금 바꾸면 될 것 같고, 더 알아보면 가능할 것이고…….  할 수 있는데 왜 안 해?라는 말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그리 잘나지 않았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적다. 하하.

    이후 이런 종류의 일이 몇 번 더 있고, 나는 이제 정말 웬만해서는 YES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렵겠는데요?'

    '안될 것 같은데요?'

    '알아보기는 하겠는데, 저는 일단 부정적입니다.'

    '살짝 해봤었는데 안됩니다.'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여담이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최고의 솔루션은 문제-문제 해결이 완결된 상태로 보고하는 것이다.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문제가 아닌 이상 문제를 문제로 보고하는 것은……바보 같은 일이다.)

    (여담 2로, 모두 Yes와 모두 No 중에서-내 경험으로는- 모두 No가 생산성이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물론 적당히 섞어서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긴 한다. 잘못하면 찍히니까?)


     마지막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메타인지'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나는 그보다 소크라테스의 손을 좀 더 높이 들어주고 싶다. 그냥 나 자신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 말이다. 물론 성현이 말하는 것과 같이 '정관'의 경지에는 도달했다고 하지는 못해도, 어렴풋한 스케치, 작은 부분의 디테일 까지는 볼 정도가 되었다.

    왜 대학원을 들어왔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4학년의 나는 도대체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하고 말이다. 나는 성공한 삶에 대한 욕망 보다도, 필시 성공하지 못한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저 두렵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상상 속의 두려움으로부터 쫓기는 사람의 달리기 속도는 두려움의 속도와 별 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게으를 것이다-라고 개인적으로 추측하고 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또 내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 자체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안다! 제기랄, 이건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띵하다. 물론 대학원생은 실험을 하는 법, 데이터를 분석하는 법, 논문을 쓰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이건 거의 모든 대학원생이라면 꼭 배우는 것이다(어떤 의미에서는 그리 어렵지도 않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차고 넘친다. 한 해에도 몇 만 명의 사람들이 소위 '연구하는 법'을 배우고 나오니까, 그다지 자랑할 만한 건 아니다. 비유하자면 그건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1 같다. 웬만하면 다 해보는 것. 그다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닌 것.

어쩌면 태어난 거 자체가 망한 것 아닐까? 여기 망무새 추가요!

    그래서 요즘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

    '어? 이대로 가다간 망하겠는데?'

    '누가 나를 써주기나 할까?'

    '내가 이러고 먹고살 수 있을까?'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건 도통 성실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을 열심히 할 줄만 아는, 요컨대 똑똑하고 성실한 바보 같은 것이 될 것 같다. '나는 호두를 끝내주게 깹니다.', '나는 나무에 광택을 낼 줄 압니다.', '나는 걸을 때 팔 지 자로 걷습니다.' 이런 것들과 내가 배우는 것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연구'란 것은 그만큼 배웠다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이따금 내 목에 크고 두꺼우며,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져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족쇄의 한쪽 끝을 잡고 있는 희끄무레한 실루엣도. 사회로 나가게 되면 그 족쇄의 끝을 누군가 바꿔 들게 될 것이다. 누가 나의 다음 족쇄의 주인일까. 과연 나는 이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영화 쇼생크 탈출 스틸컷. 언제 봐도 좋다. 지금 보면 더 좋다.

    이제야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민망하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요즘 드는 생각은, 어쩌면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은 자기 관찰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생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2년이 지났고, 3년 남았다. 물론 끝내고 말고는 지도교수 마음이라 4년이 될 수 도 있고 5년이 될 수 도 있다. 이처럼 불공정한 게임이라니. 과정이 끝난 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이와 비슷한 논조로 한 번 더 썼었던거 같은데.......할 수 없다)


(사진: 아이유 너랑 나 M/V, 주토피아, 무한도전, 쇼생크 탈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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