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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Mar 25. 2019

11. 석사과정에 지원하기 전에 체크해야 할 것-1편

보통의 공대생이 쓰는 보통의 대학원 일기

    2019년의 첫 학기가 썰물처럼 몰려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사람들의 물결 사이에서 고립되었다. 19학번이 내뿜는 싱그러운 포말은 나를 주눅 들게 만든다. 비참한 대학원생은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신입생을 피해 어두운 그늘로 들어가 안타깝고 축축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싱그럽게 길을 물어보는 신입생과, 말을 걸어줄 줄 몰랐던 대학원생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이번 학기는 박사과정으로서- 그러니까 석박 5학기 차-로 맞는 첫 학기이자, 3명의 새로운 신입생이 들어온 학기이다. 1명 정도는 꾸준하게 받았었던 것 같은데, 3명은 처음이다. 교수도 갑자기 늘어난 신입생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듯하다. 랩 미팅에 사람이 몇 명 없어도 눈치를 못 채니 말이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교수는 교수만의 고민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3명 모두 제대로 된 설명(혹은 계약) 없이 연구실에 들어왔다는 데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심지어 우리 연구실이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지 조차 몰랐다. 그들과 연구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나는 마치 비정규 노동자를 부리는 악덕 고용주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정말 아무런 준비도, 아무런 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준비했어야 하는 것과 준비해야 할 것, 앞으로 닥쳐올 일과 재수 없으면 맟닥트릴 일을 설명해주었다. 

기다려. 당황하지 마라! 이건 교수님의 함정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설명을 그렇게 만족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 명은 내 의도를 꿰뚫어 보겠다는 듯 한, 불신으로 가득 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까지 했다. 젠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해줬을 뿐인데. 그때 나는 헛기침을 하며 보이지 않는 먼산을 바라보기만 했다. 누가 간지럽히는 것 마냥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글에는 '시작하고 나서 위험하지 않도록' (이공계열) 석사 진학 시 체크하거나 갖추어야 할 필수 소양 및 협상 사항을 나열해보았다. 일단은 우리 랩에 들어온 신입생에게 이 글을 가장 먼저 읽히고 싶지만, 그들은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등록금을 내버렸는걸. 잡힌 물고기는 다시 풀어주지 않는 법이다. 암.


    1. 가급적이면 가까운데 살되,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자

    대학원은 대학생 때와는 다르다. 일단 나이가 더 들었다는 점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연구실 내에서는 항상 '기 빨리는 일'에 맞닥트린다. 대학생 신분으로 6시간 연속 연강을 듣는다거나, 사람들과 팀플을 했다거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철인 3종 경기를 취미로 하는 한 동기는 1시간 30분씩 통학을 하던 대학생 때를 생각하며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하루가 무섭게 피골이 상접해 가더니, 단 3개월 만에 연구실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원룸을 잡았더랬다. 그 이후에나 좀 얼굴이 피었는가 했다.

출처...출처가 안보인다

    방세 50~60이 너무나 부담스럽다면 할 수 없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다. 랩에 있다 보면 12시간 이상 있게 되는 날이 허다하다. 그런 상황에서 통학으로 하루 2시간을 날리는 것은 무려 1시간 더 쉴 수 있는 시간을 버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지각하고 말고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지만, 가까이 사는 것 만으로 삶의 질, 연구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 

당신이 꿈꾸는 대학원 원룸(좌)와 인건비를 받아서 실제로 살수 있는 집(우)

    따라서 학교 근처에 가능한 가깝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게 집에서 사는 곳이 가까운 사람들이 일을 더 떠맡게 되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모두 자기가 '정의로운 분배자'라는 환상 속에 산다. 그건 일종의 정신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신한테 주어지는 일거리조차 잘 소화시키지 못해도, 남에게 일을 잘 줄 수 있다는 사실의 착란이 매 의사결정 때마다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러한 병이 심각한 관리자일수록 사람일수록 '일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분배되었는가'보다 '끝나고 나서 기분이 안 좋은가, 얼마나 피곤한가'를 좀 더 중점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가 교수라도, 1시간 30분 차를 타고 가는 A와 요 앞 사거리에 사는 B 중에서 하나를 골라 일을 시키라면,  B를 골라 일을 시키지 않을까.

    양심이야 다소 찔리겠다마는, 사람들은 대게 당신이 어디에 사는가에는 관심 갖지 않는다. 다만 얼마나 멀리 사느냐에만 관심을 갖지.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도록 하자.


    2. '지원'같은 두리뭉실한 말 말고 구체적인 액수의 대답을 듣자

    학부가 막 끝난 4학년, 대학원에 관심이 있어서 만난 교수님과의 면담 자리는 사뭇 고무적이다. 교수는 시종일관 믿음직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지난 실적을 보여주며 우리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설명하는 교수의 눈에 좀처럼 볼 수 없는 안광이 떠오른다. 그는 대학원 길을 밟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하지만 밟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폭넓은 지원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연구실에 쭈볏쭈볏 들어오는 학부생의 모습이다

    공책이나 연필, 펜 사주는 걸 가지고 지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혹은 점심을 자주 사준다거나, 한 학기에 한 번 학회 비용을 대주는 것 역시 지원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학술적인 형태(재료비나 분석료 같은 거)의 지원은 당연히 연구실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연구실을 들어가기 전에 고려해야 할 숙지 할 사항은 '지원 = 돈'이라는 공식이다.

    화기애애하게 연구실에 관한 이야기를 마쳤다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당신이 만약 '지원'이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폭넓은 지원을 약속한다느니, 애매한 단어를 써가며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다면 최대한 공손하게 손절각을 보는 것이 좋다. '그런 건 네가 들어와서 하는 걸 보고 줘야지'라고 말한다면 최악일 것이다. 그럴 땐 뒤도 돌아보지 나올 것을 추천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은 '음, 그건 연구실 실장이랑 상의해봐야겠는데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이다. 만약 진짜 학생에게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대게 교수는 자세한 액수까지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랩의 돈을 관리하는 학생과 상의한다. 이러쿵저러쿵해서 남는 돈이 얼마나 있고, 이 프로젝트에는 사람이 얼마나 필요하고-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 액수와 범위가 설정된다면, 다른 기회에 당신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교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우리는 이 정도에서 저 정도까지 줄 수 있고, 일단 이 범위에서 시작해서 너의 성과를 보고 저 범위까지 줄 수 있을 거 같아.'

하지만 진짜 원하는 것은 이런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좀처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대학원생에 대한 최저임금이 보장돼도 모자랄 판에 최고 임금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사생이라면 올해 기준 1,800천 원이다(물론 이 금액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지만, 그건 당신이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전제하에서다. 2,400천 원을 주고 한 사람을 쓰느니 1,200원씩 주고 두 사람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두 후자를 선택한다). 여기에 등록금이 있으니 이것 또한 염두에 두면 다음과 같은 공식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들어가고자 하는 랩이 엄청나게 인기가 많고, 취업도 잘 되며, 석사든 박사든 그 랩만 들어가면 인생이 핀다는 전제가 있으면 돈을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4학기의 등록금은 몇 년 안에 충분히 회수가 가능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랩이 하고 있는 연구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무급으로라도 일하고 싶다면, 그것 또한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곳은 많지 않다. 실제로 랩에 들어가면 취업길이 더 막막해지기도 하고(주변에서 여럿 봤다),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연구에 실망하기도 한다. 또 일전에도 투덜거린 적 있지만 '연구 : 잡무 = 3 : 7' 수준이라 자신이 연구원인지, 기업 신입사원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자.

  

        3. 랩의 성향을 대충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하자

    어느 대학원생을 잡고 물어도, 자신이 속한 연구실은 개판, 노답이라고 말한다. 교수님은 까탈스럽고, 선배는 하는 일 없이 노닥거리고 있고, 후배는 자기 발목이나 잡고 있다고 말이다(만약 만족스럽다는 대학원생을 찾았다면 바로 그 사람이 연구실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예비 신입생으로 선배에게 연구실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면 십중팔구 거짓된 정보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을 믿지 말자. 그들은 당신을 연구실로 들이려는 검은 속셈을 갖고 덫을 놓는다. 

    일반적인 연구실 평판이라면 커뮤니티를 찾자! 검색 몇 번 만 하면 금방 나온다. 솔직히 나도 꽤 놀랐는데 그런 커뮤니티는 생각보다 객관적인-좀 더 과장된 방식으로 비판적이다. 다른 연구실을 평판(점수)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내 부모의 원수의 자식이 들어간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랩'이라는 평가나 '칼부림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한 랩'과 같은 평가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와는 다른 별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유형별 교수님 짤

    하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연구실 전체에 대한 평가나 교수에 대한 평가는 중요하기는 하나 대처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런 건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에 가까운 것이다. 태풍이 불어서 차가 막히면 짜증은 좀 나지만 화를 낼 수는 없는 것 같이 말이다.

    연구실 평판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은 '연구실의 성향'이다. 성향이 와 닿지 않는다면 문화라고 생각해도 좋다. 위계질서는 어떻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냐,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관한 문제 말이다. 다년간의(그래 봤자 2년이지만) 관찰 및 조사 결과 나는 다음과 같은 연구실의 종류가 있음을 발견했고, 이때의 대처 방법에 관해 짧게 서술해보았다(사실 엄청 길다).


분량 실패로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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