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공대생이 쓰는 보통의 대학원 일기
지난 수십 년 동안 논문 박사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버렸다. 전에는 독자적으로 이런 종류의 논문을 대규모로 제출하여 짭짤한 수입을 올렸는데, 오늘날에는 이게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온 학교가 온통 논문 박사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루하루 논문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관심이 더욱 커져갔다. 다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논문 박사를 보려고 했다. 나중에 가서는 논문 박사의 랩 옆에 자그마한 책상을 신청한 다음 죽치고 앉아만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밤에도 효과를 높이기 위해 창백한 LED 등을 켜놓고 논문을 썼다. 날이 화창할 때는 책상을 건물 로비로 옮겨 놓았는데, 그러면 특히 학부생들이 논문 박사를 구경하러 많이 왔다. 유행 따라 가끔씩 구경 오는 대학원생들에게는 그가 흥미 거리에 지나지 않은 반면에, 학부생들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리고 안전을 기하기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박사의 초췌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계절에 맞지 않는 얇은 검은색 반팔티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창백한 팔이 앙상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는 쿠션 있는 최신식 의자마저 물리치고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학부생을 향해 한 번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긴장되고 피곤한 얼굴로 빙그레 미소를 띠며 논문을 썼다. 그는 낡아서 화면이 다 닳아버린 자신의 노트북을 만져 볼 수 있도록 테이블 너머로 손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다시 깊은 상념에 잠겨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는 연구실 안에서 유일한 가구라고 할 수 있는,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한 시계가 재깍 거리는 소리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모니터만 골똘히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 가다 입술을 적시기 위해 조그만 잔에 든 커피를 홀짝일 뿐이었다.
거기에는 들락날락하는 구경꾼들 말고도 지도 교수가 뽑은 감시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언제나 세 명씩 짝을 지어 논문 박사가 몰래 놀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일반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해 도입한 형식적인 일에 불과했다. 논문 박사란 논문을 쓰는 기간에는 결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강요를 당할지라도 조금이라도 놀지 않는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학자로서의 명예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하긴 그렇다고 모든 감시인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야간 감시인의 무리 중에는 일부러 멀찍이 구석 자리에 모여 앉아 클래시 오브 클랜을 하면서 감시 업무를 소홀히 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논문 박사에게 자기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몰래 준비해둔 것이 있으면 유튜브 영상이라도 좀 보라는 식이었다. 논문 박사로서는 이러한 감시인들을 만나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들은 그의 기분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의 지루함을 끔찍할 정도로 심하게 만들었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취약한 점을 극복해 냈고, 이러한 감시인들이 있는 동안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한 큰 소리가 나게 타자를 쳤다. 논문 박사에 대한 그들의 의혹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논문 작성과 절대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의구심 중의 하나였다. 어느 누구도 밤낮으로 논문 박사를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므로 정말로 논문이 끊임없이 쓰였는지 아무도 자신이 관찰하는 바로는 알 수 없었다. 논문 박사 자신만이 이를 알 수 있었고, 그러므로 그 만이 이와 동시에 자신의 논문 작성에 완전히 만족하는 구경꾼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그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결코 만족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가 좀 논다고 해서 그리 얼굴이 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므로, 어떤 사람들은 유감스럽게도 그의 자리를 멀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그들이 그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수척해진 것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논문 작성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 자신만이 알고 있었고, 그 밖에 사정을 알만한 어떤 사람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논문 작성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도 이런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좋게 본다 해도 그를 겸손하다고 생각했지만, 대개는 자신을 선전하려고 그런다든가, 또는 심지어 논문 작성을 쉽게 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물론 그것을 쉽다고 하여, 이를 넌지시 고백할 정도로 철면피하기도 한 사기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런 것에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이러한 불만족이 언제나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논문 작성이 끝난 후에도- 이러한 증명서를 그에게 발급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자발적으로 책상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도 교수는 논문 작성의 최대 기간을 40일로 정하고, 어떤 논문을 쓰든 그 이상은 작성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가령 40일이라는 기간 이후에는 논문이 지리멸렬 해지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질이 떨어져, 피인용지수의 숫자가 누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출판하는 학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40일을 최고 기간으로 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다가 40일째가 되면 모처럼 연구실에 창문이 열리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연구실을 가득 메우며,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팡파르가 울렸다. 두 명의 학부 연구생이 논문 박사의 기분을 물어보러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결과가 카톡으로 모두에게 퍼졌고, 마침내 추첨으로 뽑히는 행운을 누린 두 명의 젊은 석사생들이 나타나 그 논문 박사를 연구실에서 두서너 걸음 밖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작은 탁자 위에 정신 쇠약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가려 뽑은 술 따위의 음식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순간이 오면 논문 박사는 항상 거부하는 자세를 취했다. 사실 그는 순전히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자신의 팔을, 그를 도우려고 그 앞에 허리를 숙이고 서서 팔을 쭉 내뻗고 있는 석사생들에게 맡기기는 하지만, 일어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40일이 지난 바로 지금 왜 논문 작성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는 아직 오랫동안, 무제한으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논문 작성의 절정에,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작성의 절정에 있는 바로 지금 작성을 그만두어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왜 논문 작성을 계속하려는 그의 명예를 빼앗아가려고 하는가? 이것은 그가 이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논문 박사가 되어 있는 지금, 그러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가려는 명예였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논문 작성 능력에 어떠한 한계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에게 탄복을 금치 못하는 척하는 대중이 왜 그에 대해 그토록 참을성이 없는 걸까? 그는 참고 버티며 계속 논문을 쓰겠다는데, 왜 그들은 이를 참지 못한다는 말인가? 또한 그는 지쳐 있기는 했지만, 의자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노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일어났지만, 이제 벌떡 일어나 노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렇지만 석사생들을 생각해 구역질 난다는 표현을 간신히 참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겉보기에는 아주 친절해 보이지만 실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석사생들의 눈을 쳐다보고는, 가느다란 목 위에 달린 육중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항상 행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지도 교수가 와서 말없이 논문 박사 위에 두 팔을 치켜들었다. 이 모양은 마치 의자 위에 앉아 있는 현대 과학의 작품이 이 가련한 연구자를 좀 굽어 살펴달라고 하늘에게 호소하는 것 같았다. 그는 논문 박사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앉았다. 그러면서 지도 교수는 마치 부서지기 쉬운 물건을 만지는 듯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게 그를 다루었다. 그러고는 그를 -슬쩍 흔들기만 해도 논문 박사의 두 다리와 상체는 사정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그러는 사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진 석사생들에게 넘겨주었다.
이제 논문 박사는 이 모든 것을 그저 참고만 있었다. 머리는 아래로 굴러 내릴 것처럼 가슴 위로 축 늘어져 있어, 그곳에 붙어 있는 게 도무지 설명이 안 될 정도였다. 몸은 속이 텅 빈 껍데기 같았다. 자기 보존의 본능으로 두 다리는 무릎에 꼭 붙이고 있었지만, 발을 딛고 있는 지면이 마치 진짜 땅이 아닌 것처럼 헛발질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두 다리가 찾고 있는 것은 실제적인 지면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리 무겁지는 않지만 몸의 전체 중량이 한 석사생에게 쏠렸다. 석사생은 숨을 헐떡거리며 도움을 청하면서 – 그녀는 이러한 무보수 명예직을 얻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적어도 논문 박사에게 자신의 얼굴이 닿지 않게 하려고 우선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이 자신의 뜻대로 잘 되지 않고, 보다 운이 좋은 석사생은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흡족해하는 기색이었으므로, 곤경에 빠진 석사생은 부들부들 떨면서 뼈 밖에 남지 않은 논문 박사의 손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려고 하다가, 연구실의 관중이 열광하며 왁자지껄 웃어 대자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진작부터 대기하고 있던 박사과정과 교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회식이 시작되었다. 지도 교수는 실신한 것처럼 비몽사몽 중에 있는 논문 박사한테서 연구실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익살맞게 지껄여 댔다. 그러고 나서 논문 박사가 지도 교수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건배의 말이 외쳐졌다. 매장 스피커에서는 최신 팝송이 나와 이 모든 것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고, 사람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그리고 논문 박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신들이 본 것에 불만을 품을 권리가 없었다. 언제나 그만 불만족했다.
이렇게 그는 규칙적으로 조금씩 휴식 시간을 가지며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게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체로 기분이 울적했으며, 아무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침울해졌다. 그를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에게 해주어야 할 바람직한 일이 뭐가 남아 있었을까? 한 번은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 나타나 그를 가엾게 생각하면서 그가 우울한 것은 분명 논문 때문일 거라고 그에게 설명하려고 했다. 특히 그때는 논문 작성이 상당히 진행되었을 때였는데, 논문 박사는 그 말을 듣고 분노를 터뜨리면서 짐승처럼 연구실 바닥을 굴러대었기 때문에 다들 깜짝 놀라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도 교수는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 즐겨 사용하는 처벌 수단이 있었다. 그는 모여 있는 연구원들 앞에서 논문 박사를 위해 사과를 하고, 곧잘 놀곤 하는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논문을 쓰게 되면 곧잘 화를 내게 되니 논문 박사의 행위를 용서해 달라고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이와 관련해 지도 교수는 또한 지금 하는 논문 작성 기간보다 더 오래 작성할 수 있다는 논문 박사의 주장을 대변하는 연설을 하고는, 이러한 주장에도 분명 담겨 있는 비상한 노력과 선한 의지 및 가상한 자기부정을 칭찬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이 자리에 놓여있는 알 수 없는 필기 자국을 내보이면서 그러한 주장을 반박하려고 했다. 논문 작성 40일째에 A4용지 한쪽 구석에 갈긴 그의 필기는 다잉 메시지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논문 박사는 실상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 지나치게 진실을 왜곡해 자신의 기력을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그가 때 이르게 논문 작성을 끝내는 바람에 그러한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무지, 이러한 무지한 세상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언제나 다시 굳건한 믿음을 품고 창살에 기대어 지도 교수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였지만, 필기를 할 때마다 한숨을 쉬며 의자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면 마음이 진정된 연구원들은 다시 가까이 몰려들어 그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면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나중에 2,3년쯤 지나서 그때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자신들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앞서 언급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 버렸다. 그에 대한 보다 깊은 이유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버릇이 잘못 든 논문 박사는 어느 날 놀라움을 쫒는 대중들로부터 자신이 버림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구경거리를 찾아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것이었다. 지도 교수는 어디선가 옛날처럼 다시 관심을 보여 주는 곳이 없을까 하고 온 캠퍼스를 그와 함께 돌아다녔다. 그래 보았자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서로 몰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어딜 가나 논문 작성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갑자기 그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진 않았지만, 무시 못할 몇몇 징후가 나타났음을 기억에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이를 막을 예방책을 강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사실 언젠가는 논문 작성이 다시 인기를 누릴 때가 올 거라는 것은 확실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건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논문 박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수많은 연구원들에게 둘러싸여 환호를 받았던 그는 조그마한 연구소의 말석이라도 차지할 수 없었다. 다른 직업을 잡기에 그는 너무 나이가 들었을 뿐만 아니라 뭐니 뭐니 해도 논문이라는 것에 너무나 광적으로 빠져있었다. 그래서 그는 둘도 없는 인생의 동반자였던 지도 교수와 헤어지고, 다른 대학교의 어떤 대형 연구실에 박사 후 연구원(포닥)이 되었다. 불 같은 자신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는 인건비 협상 같은 것조차 하지 않았다.
대형 연구실에는 언제라도 갈아 치우고 보충할 수 있는 인원이며 장비며 실적이 있어서 누구를 막론하고 어느 때라도 쓸 수 있다. 게다가 이 특수한 경우에는 논문 박사 자신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그의 명성도 함께 고용된 것이었다. 사실 그의 특기는 나이가 들어도 기량이 줄어들지 않아서, 이제 전성기를 지나 한 물 간 박사가 안정된 직장으로 도망치려고 한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그와 반대로 논문 박사는 예전처럼 논문을 쓸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이는 전적으로 믿을 만한 이야기였다. 심지어 그는 만약 자신의 뜻에 따라 준다면 – 사람들은 이 말을 들어주겠다고 곧바로 약속했다 –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논문 박사가 흥분한 나머지 쉽사리 잊어버리고 만 세상 사람들의 분위기를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주장은 전문가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체로 논문 박사도 그런 실상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연구실에서 자신이 연구실의 가장 구석진 좋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바깥쪽의 문 근처에, 하여튼 사람들의 왕래가 꽤 낮은 곳에 들어가게 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출력된 논문과 기타 자료들이 논문 박사의 자리를 빙 둘러싸며, 그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 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실험 중 쉬는 틈을 타 최신 트렌드에 대한 발표를 들으러 가는 연구원들이 문쪽으로 몰려들 때,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논문 박사가 있는 데서 잠깐 멈추었다가 곧장 지나쳐 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옆에 좀 오래 있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렇게 멈추어 서 있는 이유를 모르고 뒤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비좁은 통로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차분하게 구경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것이 논문 박사가 자신의 삶의 목표로 방문객이 몰려드는 것을 당연히 학수고대했을 텐데, 도리어 그러한 시간이 오는 것이 두려워 다시 몸을 부르르 떠는 이유이기도 했다. 처음에 그는 안달이 나서 이 막간 시간을 기다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황홀한 기분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연구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곧장 – 아무리 완강하게, 거의 의식적으로 자신을 소경도 이러한 경험들과 맞서 이길 수는 없었다- 연구원들은 항상 거의 예외 없이, 순전히 최신 유행 연구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란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이러한 광경은 여전히 그야말로 더없이 멋진 장관이었다. 그가 있는데 까지 다가와서는 그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새로 편을 이루는 무리들의 고함과 욕설이 난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편안한 자세로 구경하려는 쪽들도 있었지만, 이들도 가령 무언가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일시적인 기분과 반항심 때문에 그랬으니, 이러한 사실이 논문 박사로서는 이내 더욱 곤혹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쪽은 곧장 프레젠테이션 룸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무리가 지니 가고 나면 뒤에 쳐진 사람들이 왔다. 그런데 물론 이들은 그럴 의향만 있으면 서서 지켜볼 수도 있으련만 거의 한눈도 팔지 않고, 제때에 프레젠테이션을 듣기 위해 성큼성큼 서둘러 지나갔다. 그런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늙은 박사 과정이 학부 연구원을 데리고 와서 손가락으로 논문 박사를 가리키면서, 여기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행운도 없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단다.」
그러면 학부 연구원들은 평소 학교에서나 기업에서나 이런 것에 대해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사실 뭐가 뭔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논문이 당최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무언가를 곰곰이 살피는 눈빛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새로 다가올 보다 은혜가 충만한 시대에 막연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가끔씩 논문 박사는 혼잣말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있는 장소가 이렇게 문 바로 옆이 아니라면 모든 사정이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연구실 사람들은 너무 가볍게 선택을 해버린 것이었다. 자리에 외풍이 들고, 밤중에 알코올 냄새가 풍기는 사람들이 신경을 밟아대고, 식사시간이면 배달음식이 풍기는 냄새 때문에 그의 기분을 무척 상하게 하고, 계속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는 것은 아예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교수에게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더욱이 정말이지 그는 최신 연구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연구원들이 몰려든다고 이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그를 보려고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잘 나가던 때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주려다가,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이 프레젠테이션 장으로 가는 장애물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그들에게 떠올려 주게 되어 그가 어느 구석에 처박히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는 하나의 작은 장애물, 점점 더 작아지는 장애물이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사람들은 주의를 끌려고 하는 논문 박사의 색다른 방식이 익숙해졌고, 이러한 익숙한 정도에 따라 그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껏 논문을 쓰고자 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지만, 아무것도 그를 구원해 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에게 논문 작성법을 설명하려고 해 보라! 이것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해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기다란 논문 실적 리스트는 더러워지고 읽을 수 없게 되어, 사람들은 그걸 찢어 버렸지만, 그것을 새로 인쇄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논문 작성 일수를 기록하기 위한 조그만 타이머도 처음에는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닦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새로고침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 몇 주일이 지나자 이 조그만 일을 맡은 석사 과정이 실증이 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논문 박사는 전에 자신이 꿈꾸었던 대로 이런 식으로 계속 논문을 써 내려갔고, 그때 자신이 예언했던 대로 별 어려움 없이 자신의 기록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작성한 논문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논문 박사 자신마저도 자신이 얼마 동안이나 논문을 썼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게으름뱅이가 그의 앞에 멈추어 서서는 낡은 논문 실적 리스트를 놀리면서 사기 짓거리라고 말했다면, 이러한 의미에서 그 일은 무관심과 타고난 악의로 꾸며 낼 수 있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거짓이었다. 성실하게 일했다는 사실을 논문 박사가 속인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의 보수를 가로채려고 그를 속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수많은 날들이 지나갔고, 그런 상태도 끝이 나게 되었다. 하루는 연구실 위생 점검을 하러 나온 교수의 눈에 띄어, 교수는 랩장에게 복사용으로 쓸 A4용지는 충분한데 왜 여기에 이렇게 종이가 방치되고 있느냐고 묻게 되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다가, 마침내 한쪽에 찌끄러져 있는 논문 실적 리스트를 보고 논문 박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막대기로 A4용지를 헤쳐 보니 그 안에 논문 박사가 있었다.
「아직도 논문을 쓰고 있는 건가?」 감독이 물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논문을 쓸 건가?」
「날 용서해 주세요, 여러분!」 논문 박사는 모기 같은 소리로 속삭였다. 귀를 그의 가까이에 갖다 댄 교수만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론 용서하고 말고.」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을 이마에 대면서 논문 박사의 현재 상태를 사람들에게 암시해 주었다.
「줄곤 난 논문으로 여러분이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려고 했소.」
「그야 우리도 경탄하고 있지.」 교수가 친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경탄해서는 안 됩니다.」 논문 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린 경탄하지 않도록 하지.」 교수가 말했다.
「대체 왜 우리가 경탄해서는 안 된다는 건가?」
「나는 논문을 써야만 하고, 달리는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오.」 논문박사가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교수가 말했다. 「왜 달리 어쩔 수는 없다는 건가?」
「나는 말입니다.」 논문 박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조그만 머리를 약간 치켜들고, 어떤 말도 헛되이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키스를 할 때처럼 뾰족한 입술을 교수의 귀에 바짝 갖다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놀이거리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놀이를 발견했다면, 이렇게 이목을 끌려는 짓을 하지 않았을 거고, 당신네들처럼 마음껏 놀았을 거요.」
이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하지만 흐려져 가는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자신만만한 확신은 아니라 해도, 계속 논문을 쓰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자, 이제 치워 버려!」 교수가 이렇게 말하자, 논문 박사는 A4더미와 함께 연구실 밖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그가 있던 자리에는 젊고 깔끔한 박사가 한 명 들어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황폐해져 있던 연구실 속을 이러한 멋진 사람이 늠름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자, 아무리 감각이 둔한 사람이라도 기분이 전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 이 젊은 박사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재잘거렸다. 이 박사는 자신이 누리던 자유마저도 그립지 않은 모양이었다. 폭발할 정도로 팽팽하게 모든 필요한 것을 갖추고 있는 이 고귀한 몸뚱이는 자유라는 것도 스스로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뇌의 주름 어딘가에 자유를 물고 있는 것 같았다. 연구실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연구에 대한 기쁨이 그의 목구멍에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이에는 아랑곳없이, 자리 주위에 몰려들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 카프카의 '단식광대'를 개작해보다
/ 그림 A bigger splash, David Hock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