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마츠코는 정말 행복했을까?

나카시마 테츠야_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_2006

by 도군
그래서 마츠코는 정말 행복했을까? 죽어서야 안식을 얻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나서야 그토록 바라던 사랑을 받게 되었는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제목 그대로 마츠코라는 한 여자의 일생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여기서 주인공인 마츠코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다. 그간 내가 봤던 영화 속 인물들을 대상으로 애정결핍 경연대회를 연다면 TOP3 정도는 가뿐하게 차지할 정도로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이다. 결국 그녀는 53세의 나이로 길에서 죽는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낙서를 집 앞에 가득 남긴 채.


여기서 잠시 ‘혐오스런’ 마츠코의 어린 시절을 간단히 살펴보자. 마츠코는 어린 시절부터 외로웠다. 그녀가 바랐던 것은 그저 아버지의 작은 관심, 사랑이 담긴 미소였을 뿐인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대신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마츠코의 동생에게만 모든 사랑을 준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 마츠코는 아버지가 원하는 학교에 가고 직업을 택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산다. 아버지가 자신을 봐주길 바랐고,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노력은 실패하지만 말이다.


이후 마츠코는 단지 사랑받기 위해 존재한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하고 심지어 맞기까지 하지만 자신의 모든 삶을 상대에게 맞춘다. 상대가 자신을 떠날 때마다 절규하듯 "왜"냐고 외치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 나지막이 “다녀왔습니다.”를 읊조리지만, “아무리 지옥이라도 혼자인 것보단 나아.”라며 다시 상대에게 자신을 던진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조건 없이 사랑만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마츠코가 부러웠고 빛나 보였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제목은 반어법이라고 생각했다.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사랑받기를 원하던 그녀와 나를 동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봤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인간의 가치란 무엇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었느냐로 판단된다."라는 대사가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일 것이다. 사랑을 주면 줄수록 마츠코의 삶은 점점 망가지지만, 마츠코가 사람들에게 준 사랑만큼 결국 그녀의 삶도 빛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타인에게서 사랑을 갈구하기에 사랑을 준 것뿐이다. 그토록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던 마츠코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본 뒤에 남긴 말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무리 "성녀"라거나 "사랑의 신"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서 포장하려고 해도, 결국 이 영화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이 타인에게서 행복을 갈구할 때 얼마나 불행해지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영화가 끝난 후 마츠코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녀는 ‘What is a Life?’라는 질문에 “난 사랑을 위해 살아. 사랑이 있으면 난 살아갈 수 있어. 사랑이 삶이야.”라며 노래했다. 찰나였겠지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겐 타인의 행복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 따윈 없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이기에 다시금 물어본다. 그녀는 정말 행복했을까?


“이 사람과 함께라면 지옥에라도 갈 거야. 그게 나의 행복이야.”


(66100 2014년 가을호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