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창조주가 될 수 있을까?

by 도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던 때만 해도 ‘레고’가 대부분의 아이들의 로망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자성’, ‘마왕성’과 같은 성 시리즈가 대 유행이었죠. 그렇게 레고에 대한 로망을 키우던 어린 시절의 저는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결국 레고를 얻어내고야 맙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죠. 제 부모님이 사가지고 오신 레고는 ‘마을’시리즈 이었던 것입니다. 레고의 세계에서 마왕을 무찌르고 천하통일을 꿈꾸던 저에게 평화로운 ‘마을’시리즈는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명서를 무시한 채 외계인과 군대, 전투기를 만들어서 제 멋대로 ‘전쟁’시리즈를 만들어 버렸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2x4 사이즈 브릭 6개로 만들 수 있는 모양이 9억 가지”라는 레고는 거대한 우주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는 창조주가 될 수 있죠. 물론 저에게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상상력이 남아있을 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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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무비>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레고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처음 예고편을 보곤 그냥 그런 홍보영화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꽤 신뢰하고 있는 외국 사이트인 rottentomatoes.com에서 엄청나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자주 방문하는 영화 커뮤니티에서도 좋은 입소문을 타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봤습니다. 근데 세상에나. 방학을 맞아 상영관을 수 놓은 초등학생들보다 제가 더 깔깔 웃으며 신나게 봤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엔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어요.

이 영화의 큰 재미는 영화 속 거의 모든 등장인물, 장소, 물건, 이 모든 것들이 레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 폭발, 파도, 불 같은 표현까지요!! 게다가 많은 부분에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지요. 덕분에 어린 시절 제가 딸그락 거리면서 레고를 가지고 놀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또한 모건 프리먼, 엘리자베스 뱅크스, 윌 페렐, 리암 니슨의 목소리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죠. 깨알 같은 패러디는 덤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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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레고 무비>가 제 마음에 이렇게나 큰 울림을 준건 이 영화가 저에게 던져준 질문 때문이었어요. ‘사실 나라는 삶에는 어떠한 설명서나 설계도가 없는데 나 스스로 세상이 던져준 설명서에 끼워 맞추려는 건 아닐까?’ 뭐 이런 질문이요. 게다가 회사에 다니면서 어느샌가 “오늘은 어제고 내일은 또 오늘”이 되어버리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는 저를 발견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이러다 보면 어느새 타성에 젖어 규격에서 벗어난 것을 보면 접착제를 붙여서라도 ‘올바르게’ 만들려는 꼰대가 되어버리겠죠. 뭐 다행히도 이런 영화들을 볼 때마다 다시금 저를 다잡고 있지만요.

재미도 감동도 없는 뻔한 광고영화일 줄 알았던(광고영화가 맞긴 하지만) <레고 무비>가 2014년에 봤던 영화 중 top 10에 뽑힐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개인적으론 <토이스토리 3>보다 더 좋았어요. 이 좋은 영화가 안타깝게도 개봉 당시 수익배분 문제로 매우 적은 극장에서만 상영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에 제가 가졌던 것과 같은 선입견 탓인지 보신 분들이 별로 없더라구요. 부디 많은 사람들이 챙겨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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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볼게요. 지금의 저에게 설명서 없는 레고 브릭이 주어진다면 과연 어릴 때와 같이 나의 우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저는 다시 창조주가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떨 것 같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