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문장을 잘 구현해낸 것 만으로도

이치카와 준_토니 타키타니_2005

by 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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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알았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렉싱턴의 유령>에서도 "이제 <토니 타키타니>를 원작소설로 즐긴다"라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영화의 성격은 그 반대에 가깝다. 영화는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들을 위한 자그마한 소품 같은 느낌이랄까. 원작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겐 조금 곤욕스럽기까지 할 영화의 형식과 전개는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겐 자그마한 탄성으로, 적지않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나즈막히 읊조리는 나레이션의 목소리는 정말 영화를 한층 더 서정적으로 만들어주며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선율은 영화를 완성시킨다.

캐스팅에서는 절반의 만족. '토니 타키타니' 역할의 남자배우는 원작을 읽었을 때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보기좋기 빗나갔다. 약간 오달수의 느낌까지 드는 이 남자배우는 도시적이고 말끔한 이미지를 상상했던 나에겐 적잖은 실망으로 다가왔다. 그에 비해 '에이코' 역할을 맡은 미야자와 리에는 원작의 한 구절처럼 "원래 그녀의 옷인것 처럼 꼭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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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새벽의 아스라한 안개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한가로이 유영하듯 천천히 흘러가는 <토니 타키타니>. 심심하다 못해 약간은 지루하기까지 한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을 영상으로 매우 탁월하게 옮겨낸 것 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실망하지는 않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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