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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군 Sep 24. 2015

나의 사랑 나의 할머니

브로콜리 너마저 - 할머니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었다. 어린 시절 나는, 집에 있다가 부모님이 오시면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쪼르르 나와서 "안녕하세요"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던 아이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부모님과의 기억보다 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있었던 기억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후 이래저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분명 어떤 '선'을 넘을 수 있는 기회들이 적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았던 건,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할머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꽤 컸었다. (물론 안 걸린 일도 꽤 많다만)

 시간이 흘러 난 공부기계가 되길 강요받는 고3이 되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른 등교, 늦은 하교시간마다 항상 웃으며 나를 배웅하고 맞이해주시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그럭저럭 잘 버텼다는 생각도 든다.

 서울에 올라와서 종종 할머니 댁에 내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꼭 할머니를 안아 드렸다. 그러고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가는 내 뒷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고 있자면 뭔가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요즘도 매달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보내드릴 때마다 항상 전화해서 고맙다고 말해주신다. 그때 전화기 너머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떠올리면 내가 다 행복해지는 게 이게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듯 자타공인 정 없는 내게도 어떤 종류의 따뜻함이란 게 있다면 그건 할머니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인연이 아니다. 태어나 보니 이미 맺어져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 애틋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더 끔찍할 때도 있다. 이러한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할머니와의 기억 중에 나쁜 것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많은 것 바라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가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고,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비록 할머니가 항상 말씀하시는 "교회 다니고 참한 처자 데리고 와서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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