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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군 Nov 11. 2015

2004, 수능

2015 수능을 앞두고

 나는 수능 전날에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떨리지가 않아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푹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에 먹은 것을 다 토했다. 갑자기 그동안 내가 밀쳐두었던 압박감과 두려움이 한 번에 밀려왔었나 보다. 삼촌 차를 타고 수능시험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온몸이 떨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어서 김기훈의 ‘수능 대박송’을 크게 불렀다. 그리고 시험은 시작했고, 그렇게 끝이 났다.


 시험을 보고 나왔을 때는 기분이 꽤 홀가분했다. ‘시험을 너무 잘 봤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족들이 모여 있었고 나는 엄마에게 가채점만 하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잠시 동네 PC방에 갔고 메가스터디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가채점을 마친 직후의 기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멍한 표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그렇게 PC방을 나왔고 마냥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놀이터 미끄럼틀이 보였고 그 밑에 들어가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을 숨죽여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저녁 모임엔 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말 잘 들으면서 살았으니 오늘 하루만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라고 했고 난 식당에 잠시 들렸다 친구 집으로 갔다. 꾹꾹 참던 눈물이 친구 녀석을 보니 다시 터져나왔다. 이번엔 소리 내어 울었다. 친구 녀석은 "니가 이렇게 울면 난 뭐가 되느냐"라고 했지만 괜찮다며 나를 계속 토닥여주었다. 그렇게 내 수능 날이 끝났다.




 매년 수능이 끝난 뒤엔 수험생의 자살 기사를 볼 수 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자살을 결심한 수험생에게 '각자의 삶은 긁지 않은 복권 같은 것이니 그냥 조금만 더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나는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라는 말장난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어릴 적 '왜 난 살아있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래도 살아있으니 이런 즐거움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수능 따위 망쳐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말을 쉽게는 하지 못하겠다.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렇지 않다. ('망친다'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세상이 가하는 지독한 희망고문에 언젠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수능 때문에 삶을 놓진 않기를 바란다. 수능 따위 망쳐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내 자리에서 노력할 테니, 조금만 더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냥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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