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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군 Nov 15. 2015

민중총궐기

2015년 11월 14일의 한국

 현장에는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도착했다. 치과를 가기 위해 12시쯤 시청에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광화문 광장은 차벽으로 완벽히 폐쇄되어 있었다. 근처에 가기만 해도 목과 눈이 따가워 기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차벽 위에서 경찰들은 물대포와 최루액을 계속 쏘고 있었다. 다친 사람들이 계속 나왔고 구급차가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계속 들려왔다. 어쩌다 보니 어제 점심 이후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질 못했고,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어서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그곳에서 나왔다.


 나는 언제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선두에서 물대포에 맞서는 사람들, 단식하는 사람들,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 밤새 시위 현장을 시키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물대포가, 벌금이, 연행이 두려워 나를 지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가 지지하는 단체나 현장에 얼마간의 돈을 보내는 건 이런 부채감을 덜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이 나라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2013년에 대선 결과를 듣곤 나를 위한 나라는 없는 것만 같아 조금 울고 난 뒤였던 것 같다. 현장에 종종 나가기는 했지만 무엇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부채감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회만 닿는다면 어떻게든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면 안 될 것 같다.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를 지나 이제 겨우 한 장의 투표권을 얻어냈다. 여전히 나는 물대포를 피해 다니고 연행과 벌금을 두려워하겠지만 마음가짐만은 다르고자 한다. 회의와 냉소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서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부끄럽진 않아야 한다. “나의 삶은 내가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맥락에서, 무엇보다도 나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우리 삶의 환경이고, 우리가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저와 이웃의 행복을 가꾸어가는 터전이다. 물론 우리가 완전한 민주주의를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 정의가 올바르게 실현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자신이 정말로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도 우리의 민주적 의지를 제약하고, 여러 가지 물질적 조건도 우리를 가로막는다. 우리 개개인의 민주적 자질이 충분히 성숙한 것도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인격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이 점은 우리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다. 어디에서건 민주주의 이상이 실현된 적은 없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저마다 제 마음대로 행동해도 옳은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조건이 이러저러하니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까지만 실현하자는 식으로 민주주의에 선을 긋는 것은 현실의 압제를 인정하자는 것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에는 우리가 어떤 난관에 부딪히고 어떤 나쁜 조건에 처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장 가깝게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고 노력한다는 뜻이 포함될 뿐만 아니라, 그 뜻이 거기 들어 있는 다른 모든 뜻보다 앞선다. 민주주의에 다른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이유가 그와 같다.”

황현산 - <밤은 선생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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