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허지웅의 옛 글이 떠올랐다.
앞으로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나는 나의 변화가 자연스럽고 창피하지 않은 것이길 바란다. 그러나 대개 사람은 망가져 늙는다. 구리다. 구린 것을 어른스럽다 부른다. 살기에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누가 말했던가.
허지웅의 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던 시기가 있었다. 어떤건 너무 과격하다 싶기도, 어떤건 너무 치기어리지 않나 싶기도, 어떤건 너무 피해의식에 가득차 있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에어컨 좌파"라고 조롱 당하던 시기 그의 글에는 "대한민국을 표류"하며 "버티는 삶"에 대한 치열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20대를 지탱했던 <대한민국 표류기>는 절판되었다. 그 책에 있던 글과 새로운 글을 엮어서 <버티는 삶에 대하여>가 출판 되었고 과거 심형래 빠들이 폭격을 했던 그의 이글루스는 텅 비어있다. 그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이제 그의 글을 예전만큼 찾아 읽지 않는다.
이제 나도 그도 모두 변했다. "새벽부터 오전까지 일하고 수업을 듣고 저녁 일을 하고 새벽에는 고시원 총무를 보아야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끔찍했다.” 고 말했던 허지웅의 글을, 나 또한 반지하를 전전하며 탐독했다. 배수진을 친 채 살아왔던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는 내 삶을 한걸음 정도 떨어진 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글을 찾아읽던 20대 중반과 30대 초반의 지금,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나는 성숙해진걸까, 아니면 닳아버렸을까? 간만에 집에 있는 <대한민국 표류기>를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