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군 Sep 17. 2016

어쩌다보니 반성문

나의 변화는 대체로 어떤 것을 틀렸다고 확신하면서 시작됐다.

 얼마 전 팟캐스트 녹음하면서 <헤드윅>에 대해 떠드는데 너무나도 조심스러웠다. 어쨌든 나는 이 나라에서 남성으로 30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온갖 선입견과 편견과 빻은 생각들이 내재화되었고, 고민 없이 한 행동이나 말들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면서 살아왔다. “이정도면 많이 변화됐다”고 느꼈던 시기가 얼마정도 지난 후엔, 어김없이 그 때의 내가 부끄러워지더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시엔 몰랐던 부끄러움에 대해서 항상 깨닫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여전히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앞으로도 아마 계속될 것이고.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잘못된 생각을 인지한 후 그것에 대해 변화했다고 느끼는데 10년 넘게 걸렸다. (심지어 여전히 그것에 대해서 실수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나란 사람은 과거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타자화는 아니다) 그래서 종종 과거에 내가 했던 온갖 행동과 말을 떠올리면 당사자에게 일일이 사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사과는 사실상 상대를 위한 것이기 보단 나의 부채감을 덜기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에, 현재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이 낫다”라는 결론으로. 하지만 평생 잊지 않고 반성하면서 살아야한다.  


 나의 변화는 대체로 어떤 것을 틀렸다고 확신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 확신하는 순간 내가 틀릴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과거에는 어떤 것에 대해서 최대 판단을 보류하고 기계적 중립을 취하며 살았지만, 사실 그것은 판단을 유보하고 싶은 나의 비겁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설적이지만 무엇인가를 틀렸다고 확신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것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나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서 절대 확신하지 않은 채 평생을 고민하고 배우고 고치면서 살고 싶다. 그래야만 내가 되고 싶은 인간에 조금씩이라도 가까워질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대한민국 표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