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_시간을 달리는 소녀 _2006
예전에 <실험주의보> 여름호에 맞춰서 썼던건데 보내고 나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글로 다시 보냈었다. 다시 봐도 왜 안보냈는지 알 것 같지만 나름 열심히 썼던건데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한게 조금 미안해서 여름도 다 끝난 마당에 조금 수정해서 올려본다.
여름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작렬하는 태양?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하게 해주는 에어컨?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그럼 여름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번 호의 주제인 “여름의 주인”이라는 문구를 듣자마자 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 애니메이션이 떠올랐어요. 매미소리, 뜨거운 햇살, 아늑한 그늘, 바닷 빛을 띈 하늘, 풍성한 뭉게구름,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까지 청춘의 활기와 빛나는 순간들을 너무나도 잘 포착해 곳곳에 예쁘게 담아두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빛나는 점은 보고 나면 짧지만 행복했던, 그런 연애를 하고 난 기분을 들게 한다는 점이에요. 이 영화를 보며 울고 웃고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것과 같았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에는 콧등이 찡하긴 하지만 웃으며 보낼 수 있는 그런 이별을 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10대만이 뿜어낼 수 있는 특유의 감정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여름에 가장 빛나구요.
이번 글을 위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다시 봤습니다. 2007년에 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봤으니 8년이 지났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전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난 뒤 저의 여름이 점점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어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뿐만 아니라 제 안의 활기도 줄어들은 느낌이랄까요? 감정의 밀도도 전과 같지 않구요. 나이 먹는 것이 좋고 멋지게 늙어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항상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젊음을 선망하며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꼰대가 되버리거나 재미없는 아저씨가 될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합니다.
앞으로 몇 번의 여름이 더 지나간 후에 저는 어떤 모습일까요? 또 여러분은 어떤 모습일까요?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지고, 시간은 더 쌓였을 것이며, 새로운 사람을 만났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냈겠네요. 부디 열 살, 스무 살의 저를 떠올리며 서른 살의 제가 그랬듯이, 마흔 살의 저 또한 지금의 저를 떠올리며 피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른살의 내가 싫어했던 사람만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