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태국 빠이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
Buddha said: Shoes off in the house, or you will be born as a mop next life. (붓다는 말씀하셨지, 집에서 신발을 신으면 다음 생에 대걸레로 태어난다고.)
'반마이삭'의 거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반마이삭’은 태국어로 '나무로 만든 집'이라는 뜻이다. 나무로 지어진, 방 네 개짜리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호스텔.
그곳은 내가 빠이에서 두 번째로 갔던 숙소이다. 그 직전에 머물렀던 '짝짓기 금지' 호스텔을 3박 예약했었지만, 1박만 하고 나머지 2박은 환불받았다. 여성 전용 방이 있고 투숙객 평점이 10점 만점에 9점 초반대로 평이 좋았기에 반마이삭을 선택했다.
마루 딸린 나무집이 주는 평온함은 우중충하고 햇빛도 안 들던 '짝짓기 금지' 호스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작은 마당에는 이름 모를 푸릇푸릇한 식물들이 자라고, 윤이 반질반질 나는 마루에는 쿠션과 푹신한 좌식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해먹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소파와 테이블, 장식품이 놓인 장, 예쁜 조명이 있는 거실은 태국의 어느 가정집을 찾아온 듯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머무르던 7월 말, 8월 초의 빠이는 우기여서 매일 비가 왔다. 비가 세차게 내리다가도 다시 해가 쨍쨍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비가 쏟아지곤 했다. 하루종일 조금씩 추적추적 비가 오기도 했다. 나는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보다도 마루에서 머물기를 더 좋아했다. 비가 오면 비가 들이치고, 바람이 불면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고, 햇빛이 쨍쨍하면 땀이 나게 더웠다.
마루에 맨발로 앉아있다 보면, 체크인을 하러 온 서양인 여행자들이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며 외쳤다.
"Oh, you're gonna be born as a mop next life! (오, 당신은 다음 생에 대걸레로 태어날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잠시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화이트보드의 글귀를 읽어보고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신발을 벗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그 글귀를 쓴 호스텔 주인 켄트의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유머감각에 감탄하곤 했다. 자신이 매일 아침 윤이 나게 닦아놓은 나무 바닥을 새로 오는 손님들이 매번 신발로 밟을 때 그가 느꼈을 답답함과, 그것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한 그의 재치에 대해 생각했다.
실제로 붓다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구글에 영어와 한국어로 검색을 해봐도 전혀 그런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그가 지어낸 말일 가능성이 높다.
켄트는 인상이 좋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짐을 끌고 체크인을 하러 가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의 친절함과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장난기로 반짝거리는 쌍커풀 진 눈과 살짝 구부정한 등을 가진 2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그는 항상 헐렁한 나시티나 티셔츠에 통 큰 반바지를 입고 커다랗고 헤진 슬리퍼를 신고 다녔는데, 그 슬리퍼는 원래는 검정색이었지만 빛이 바래 회갈색이 된 것으로 보였다.
그는 태국어와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를 유창하게 했다. 한국인 손님도 많이 오는 탓에 약간의 한국어도 할 줄 알았다.
"캔차나?"
그가 제일 좋아하고 또 내게 가장 자주 했던 한국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발음이 귀엽고 물어봐주는 친절함이 좋아서 무방비로 웃음이 터지곤 했다.
그는 반마이삭의 네 개의 방들 중 한 칸에서 수키와 함께 살았다. 수키는 까무잡잡하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켄트 또래의 중국인 여성이다. 그곳에 게스트로 왔다가 켄트를 만나 몇 달째 눌러앉아 있다고 했다. 켄트는 장을 볼 때든, 동네 마실을 나갈 때든 수키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다녔다. 수키는 켄트 외의 사람들에겐 말이 거의 없는 편이었고, 나를 볼 때마다 인사 대신 싱긋 웃었다.
마을은 아주 작아서 자전거를 타고 10분이면 가로지를 수 있었다. 호스텔에서 만났던 사람을 길에서, 자전거 대여점에서 만났던 주인을 식당에서, 아까 길에서 봤던 사람을 바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수키를 태우고 다니는 켄트도 자주 마주치곤 했다.
사코를 만난 것은 내가 반마이삭에 처음 온 날 저녁이었다. 4인실 내 방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의 ‘One summer’s night’이었다. 켄트가 음악을 틀었나보다 생각했는데, 거실로 나와보니 거실 테이블에 키보드가 놓여있고 단발 머리의 아시안 여자가 그것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연주가 끝나자 박수를 치고 나서 말했다.
"음원을 틀어놓은 줄 알았어!"
사코는 활짝 웃으면서 과찬이라고 손사레를 쳤다. 그는 히사이시 조의 곡 몇 개를 더 쳤고, 나는 옆에 서서 열심히 감상했다. 이후 우리는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일본에서 왔고 3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그만둔 후 키보드와 앰프를 메고 여행을 다니며 연주를 한다고 했다. 여행 짐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호리호리한 몸으로 키보드와 앰프를 메고 다니다니! 나는 감탄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사코가 나보다 영어를 못 하기도 했고 같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편해서 영어가 술술 나왔다. 사코가 내 영어를 잘 못 알아 듣고, 내가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대화를 하다가 서로 되물어야 할 일이 많았다. 나는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서 사코에게 번역된 일본어를 보여주었다. 그마저도 번역이 잘못되면 사코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예를 들어 내가 사코에게 "너 참 외향적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서 사코를 가리키며 'Outgoing'이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여주면, 사코가 "나가고 싶다고? 한밤중에 어딜 가려고?" 하고 되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아웃고잉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하지?" 가까스로 서로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나서는 깔깔 웃음이 터졌다.
사코는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길거리나 작은 바에서 공연했던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짧은 일본어로 외쳤다.
"스고이!"
그러자 그는 일본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내 억양이 정확하다면서 말했다.
"스고이!"
각자 자신의 나라가 싫은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했다. 발음이 비슷한 한국어와 일본어 단어 목록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발음해보며 "헤에에" 놀라기도 했다. 우리에게 제일 웃겼던 표현은 "미묘한 삼각관계," 일본어 발음으론 '비묘나산카쿠칸케'라고 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뜬금없는 단어가 비슷하다고!"
우리는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기 시작하는 새벽 두 시까지 서로의 번역기 화면을 들여다보며 깔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