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에서의 나날
어느 한낮에 나는 해먹에 누워 있다. 켄트가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다가와 과자 봉지를 내민다. 포장지에 일본어가 쓰여 있는 치즈 과자다. 그는 말한다.
"One!"
나는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고맙다고 말한다. 그는 또 말한다.
"Two!"
나는 하하 웃으며 과자 하나를 더 집어 가져간다. 그는 또 말한다.
"Three!"
나는 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과자 하나를 더 가져간다. 그는 웃으면서 멀어져 간다. 반마이삭에서의 기억 조각들 중 하나.
또 다른 조각: 아침 아홉 시쯤 나는 거실에 있다. 새로운 손님 두세 명이 찾아와 빈 침대가 있냐고 묻는다. 켄트는 답한다.
"오늘 아침에 체크아웃 예정인 손님들이 있긴 한데, 연장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어요. 그들이 지금까지 몇 번 연장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아직은 그 침대들을 내어줄 수 없네요. 미안합니다."
'그 사람들이 오늘 체크아웃한다고 하면, 새로운 손님을 돌려보낸 켄트는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을 별로 해본 적 없기에 그런 곳도 있나 보다 한다. 7년이 지나 여행 경험이 많이 쌓인 지금 생각해 보면 켄트 외에 숙소를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아침에 눈을 떠 거실로 나오면 켄트가 열심히 호스텔을 쓸고 닦는 중이었다. 그는 대걸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1년 전에 왔던 손님 마이클이야."
"불쌍하고 안 불쌍한 마이클...."
그가 청소를 하는 동안 나는 마루에 앉아서 그와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어떻게 5개 국어를 하게 된 거야?”
반마이삭의 소개 페이지에는 사용 가능한 언어가 영어, 태국어, 말레이어, 중국어, 일본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실로 켄트는 그 5개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는 현지인들과는 태국어로, 대부분의 게스트들과는 영어로, 수키와는 중국어로, 사코와는 일본어로 막힘 없이 대화했다.
“우리 엄마는 태국인이고, 아빠는 중국계 말레이인이야.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나고 자랐어. 그래서 말레이어는 당연히 잘하고, 엄마에게서 태국어를, 아빠에게서 중국어를 배웠어. 일본어는 일본 만화를 좋아해서 많이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배웠어. 영어는 숙소 운영하려고 배우기 시작했고 손님들이랑 얘기하다 보니 많이 늘었네.”
“와, 대단하다. 그럼 언제 태국에 왔어?”
“스무 살 때쯤.”
“왜 태국에 오게 된 거야?”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서 엄마는 태국으로 돌아와서 방콕에 살고 계셔. 나는 엄마를 자주 보려고 태국에 와서 살게 됐지.”
“오, 우리 부모님도 이혼했어. 근데 우리 부모님은 다 한국인이야. 부모님의 부모님도, 그분들의 부모님도, 이모, 이모부, 고모, 고모부, 삼촌, 사촌도 다 한국인이야.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다 한국인이야. 재미없지. 외국에 나와보니까 알겠더라고. 그게 재미없다는 거.”
“다양성이 재밌긴 하지. 말레이시아는 다양성이 있는 나라거든.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있고 그걸 서로 존중해. 난 그 점이 참 좋아.”
“얼마나 다양한데?”
“말레이시아에서 쭉 살아온 말레이계, 식민지 시절 이주한 인도계, 중국계 사람들이 있어. 무슬림이 제일 많지만 불교, 기독교, 힌두교도 꽤 있어. 히잡을 쓴 사람들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가지. 나는 불교야.”
“오 정말? 되게 좋다. 방금 내 다음 여행지가 말레이시아로 정해졌어.”
그는 웃으며 말했다.
“가 보면 좋아할 거야.”
그는 대만에서 유학하고 있는 여동생 이야기도 해주었다.
“똑똑한 애야. 널 보면 가끔 내 여동생이 생각나.”
그는 여동생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말했다.
“귀엽다. 몇 살이야?”
“스물한 살.”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나는 그 한국어 표현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켄트는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했다.
“나도 유학을 가고 싶었어. 근데 돈이 없잖아. 그래서 졸업하면 워킹 홀리데이를 갈까 생각했어.”
“어디로 가고 싶은데?”
“호주! 근데 사람들이 자꾸 워킹 홀리데이 갔다 오면 취업하기에 늦다느니 시간을 버린다느니 하잖아.”
“그런 말 들을 필요 없어. 그냥 가. 스물세 살이면 뭐든 할 수 있지. 우리나라 사람은 워킹 홀리데이 같은 거 갈 수도 없어. 넌 운이 좋은 거야.”
“그렇긴 해. 너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게는 그와의 대화가 어떤 관광보다도 재미있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마루에 앉아서 그와 대화할 기회만 노리기도 했다. 그러면 켄트는 왜 밖에 나가서 놀지 않고 여기서 시간을 죽이고 있느냐고 걱정하며, 갈 만한 곳들을 추천해 줬다. 그리고는 수키와 함께 사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생각했다. '수키가 여행 계획을 짤 때 빠이를 빠뜨렸었더라면, 내가 그 자리를 꿰찰 수도 있었을 텐데!' 진지하게 원하고 열망한 건 아니고, 그냥 가볍게 해 봤던 생각이었다.
마루에 앉아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켄트일 때도, 사코일 때도, 둘 다일 때도 있었다. 켄트와 내가 서로 일본어로 “바까(바보)”를 외치고 사코가 왜 둘이 일본어로 욕하고 있냐고 어이없어하는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느 날은 수키가 큰 배낭을 메고 화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켄트는 착잡한 표정으로 수키를 보기만 했다. 켄트는 수키가 자신에게 화가 나서 집을 나갔다고 설명해 주었다.
“내가 여자 손님들이랑 시시덕거리는 걸 싫어해.”
나는 수키에게 미안해졌다. 수키는 다음 날 돌아왔다. 어디에 있었던 건지 묻고 싶었지만 왠지 말을 걸기가 망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