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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Jan 01. 2020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한 해가 되길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아내.


여태 살아오면서 내가 가졌던 정체성을 돌아보면 나를 위한 나보다는 늘 누군가를 위한 내가 있었다. 내 이익을 따지고 나를 위한 기반을 잡아가기보다는,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착한 이가 되기 위해, 또는 나를 희생해서라도 그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또는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대신 나를 억누르는 내가 있었다.


타인에게 평가를 받을 때, 나는 나만 그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등에 업고 있는 모두에게도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과도한 책임감을 졌다. 그래서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내 인생에서 다른 이를 선명하게 그리고 색칠까지 해준 뒤, 나를 희미하게 그려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게 웃긴 것이다.


그래서 나의 희생의 대가를 누린 누군가에게 느끼는 섭섭함도 컸다. 그들이 원해서 내가 희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서서 나를 지웠는데 뭐가 그리도 억울했을까. 그들을 향한 내 애정의 크기와 나의 표현방식이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었는데. 아주 똑같은 사람이 아예 없는 이 세상에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인데.


애초부터 그들의 입맛에 맞춰, 나보다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던 내가 미련했을 뿐.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렇게 내가 스스로를 희생해 피운 불로 인해 한 발짝 나아간 이들이 날 잊으면 나는 나를 그들에게 빼앗긴 것처럼 서운해하고 분노했다. 나 스스로 빛을 낼 줄 알아야 누군가의 길을 비출 수 있는 것인데, 나는 미련하게도 나를 장작으로 소모하며 누군가를 비춰주려 했다. 그래, 그냥 내가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되면 되는 것인데. 왜 되려 그들을 내 삶을 앗아간 도둑처럼 몰고 갔는지. 애초에 그들은 내 희생을 이용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주었기에 받았을 뿐.


이번 한 해는 누군가와 관계를 가짐으로써 나를 찾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곁에 두지 않고도 스스로를 빛낼 줄 아는, 스스로 두발로 서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올해에는 누군가의 딸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떠한 나를 찾기를.

누군가의 친구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 더 명확하게 알아내기를.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빛나는 구석이 많은지 찾아내기를.


그럼으로써 나의 가치가 타인에 의해 판단된다는 믿음을 버리고 나 스스로 그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나를 희생해서 남을 더 우선으로 놓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빛을 내서 주변 이들을 따스하게 비추는 사람이 되기를.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힘을 잃고 꺼지는, 모두 타고 나면 재가 되어버리는 장작불 말고, 스스로 빛을 내는 반딧불이 같은 사람이 되기를.


서툴렀던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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