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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May 08. 2020

나의 어려움에만 갇히지 않길

나이가 들어가면서 원치 않게 겪으리라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겪게 되며 예전보다는 비교적 무덤덤해져 간다.

처음에는 일 하나가 터지면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세상이 곧 무너질 것처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어찌어찌 살아간다는 것을 터득하며 더 그렇게 된다.

그런 시간을 견디는 게 고통스러운 건 여전하긴 하지만, 당장이라도 삶이 끝날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거나 어려움을 견뎌내는 내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 덤덤함이 나의 인간다움을 앗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의 어려움에 덤덤해질수록, 타인의 어려움에도 덤덤해져 간다.

때로는 그의 어려움이 내가 견뎌온 어려움에 비해 하찮은 것 같아서 속으로는 피식 웃는다.

좀 더 예전 같았으면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에도 공감하며 그를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텐데, 이제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지가 오래다.

‘나는 너보다 한참은 더 밑바닥을 찍어봤어’라는 우월감 비슷한 것이 비겁하게 고개를 든다.


겉으로는 공감하는 척하지만, 나의 말투나 행동에서 그는 그의 어려움에 완전히 공감 못하는 나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뒤틀린 속에서 이상한 보상심리가 작용해서, 100의 고통을 견딘 나이기에 10의 고통을 견디는 그를 우습게 여겨도 된다는 그런 못된 합리화 가득한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시간을 홀로 외로이 이해받지 못하며 견뎌냈으니, 너도 똑같이 그래 봐야 한다는 심보인 건가.

아니면 견뎌볼 생각도 하지 않고서 겨우 10의 고통을 가지고 생색내는 그가 얄미워서일까.

나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징징대는 그가 미워지는 것 같다.

어쩌면 그는 나약하고 나는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치사한 쾌감과 졸렬한 우월감을 진득하게 즐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감정이란 적나라하고 한없이 유치한 것이라서 벌거벗은 채로 나타난다.

어쩌면 작은 어려움도 나눌 수 있는 이가 이 사람에게는 있다는 사실에 질투가 나는지도 모른다.


사실 고통이란 주관적인 것이라서, 내게는 10으로 보이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 이상의 것을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100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 닥쳤기에, 모든 것을 견뎌낸 나에게는 하찮게 보이지만 그에게는 삶을 끝내버리고 싶은 만큼의 고통인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한 가슴으로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머릿속에서 납득시키려 애써본다.

나에게는 저 사람의 고통을 10이라 칭할 자격이 없다.

만약 그가 세상이 뒤집어진 것처럼 느낀다면, 만약 그가 삶이 당장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이 그의 현실이고 그에게는 사실이다.


‘나는 홀로 발버둥 치며 그렇게 이겨냈는데, 너는 왜 주변에 사람도 많고 환경도 좋으면서 왜 그것 하나 이겨내지 못해?’라는 말은 내게는 정당할지 몰라도, 타인에게는 삶을 끝내고 싶을 만큼 냉정하고 비수를 꽂는 말인지도 모른다.


또 내게 10이었던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100일 수도 있고, 내게 100이었던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10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만약 그런 100의 고통이 찾아와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내 삶을 짓누를 때, 내 무거운 짐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안 그래도 바닥인데 거기서 더 절망하고 복수심에 칼을 갈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게는 누군가에게 ‘내가 더 힘들기 때문에 너는 어리광 피울 자격 없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에게 공감해주고 그를 위로할 자격만 있을 뿐.

만약 그러기 힘들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세상을 보는 눈이 내 두 눈이 전부라지만, 나의 마음만큼은 내 고통에만 갇히고 제한받지 않기를.

점점 고통에 강해지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지는 않기를.

내가 그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의 마음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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