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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May 31. 2020

관계라는 것이

그것은 굵고 튼튼하게 잘 엮어진 밧줄처럼 굳건하게 이어지다가도 단 한번 불어온 바람에 툭하고 끊어진다.

그에 반해 어떤 것은 보이지 않을만큼 얇은 실처럼 이어지며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제 자리를 오래오래 지킨다.


상대방이 너무 좋아서 그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그것이 튼튼하도록 줄을 엮고 또 엮었는데, 한번에 싹둑 잘려버리니 허무하다.

그에 반해 어떤 것은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것 스스로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다.


나에게 삶의 이유를 더해주는 그런 이유가 되어 주다가도,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나를 밀어버리는 그런 게 되기도 한다.

어제는 삶을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그런 따스한 햇살 같다가도, 모든 것을 젖게 만드는 폭풍우처럼 그렇게 나를 어둡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나를 내어주면 그만큼 잃으면서도 얻고, 나를 내어주지 않으면 그만큼 얻으면서도 잃는다.

너무 소중히 여기면 그것이 나를 우습게 알고, 너무 괄시하면 내가 너무 오만해진다.


너무 연연해하면 내가 괴롭고 상처 받는 그런 것이다가도, 너무 놓아버리면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멀어진다.

마음을 열고 신뢰를 쌓는 것은 오래 걸리는데, 마음이 닫히고 신뢰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내 삶의 전부로 여기다가 외로워지는 것도 한순간이고, 내 삶의 일부로 여기다가 즐거워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내 마음에 너무 크고 무겁게 여겨서도 안 되고, 너무 작고 가벼이 여겨서도 안 된다.


그것이 너무 귀찮고 버겁다가도 가끔은 너무 외롭고 필요하다 느껴지니 말이다.


깊어지고 싶어하면 멀어지기도 하고, 멀어지고 싶어하면 가까워지기도 한다.

날이 갈수록 관계의 두얼굴, 모순, 그리고 의외성에 혼란스럽다가도 무언가 확실해지기도 한다.

관계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튼튼해 보이다가 한순간에 끊어지기도 하면서, 약해 보이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진다.

노력해도 잘리는 게 있는 반면에, 신경쓰지 않아도 스스로 깊게 뿌리를 내리는 것도 있다.

나를 웃게 만들다가도, 사무치게 외롭고 가슴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당기면 멀어지다가도, 밀면 가까워지기도 한다.


어떻다고 감히 쉽고 명쾌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그저 이 혼돈 속에서 어떤 길을 내며 앞으로 나아갈까 생각해 볼 수 있을 뿐.


하지만 이것이 너무 멀리할 수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건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정의 내릴 수 없는 이 모순 투성이의 단어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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