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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Jul 17. 2020

있는 그대로의 나를 거절당할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유독 예민하고 소심해서 그런가.

상대방이 보인 어떤 반응 하나에 기분이 바닥을 친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대놓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보다 조금 더 싸늘한 그의 반응에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실수했나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초조해진다.


이로 비롯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기분이 울적해진다.

나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 노력해도, 사람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잘 풀어낼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싶다.

남들은 너무나도 쉽고 수월하게 해내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럴까?

단순히 나의 타고난 성격이 워낙 모나서, 사람들과 섞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는 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그래, 이 세상에는 관계를 맺는데 남들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성격이 있다.

그리고 만약 내 행동 중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당연히 용서를 구하고 그것을 고치려 노력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의 문제는 내 성격에 있지 않았다.


내 타고난 성향이 주원인이라기보다, 타인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거절 감은 나에게 어깨를 툭치고 지나가는 충격이 아니라, 고통 때문에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수준의 충격을 주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보다 가장 먼저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공포에 젖은 질문이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상황을 객관적이게 바라보고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거절당했다는 데서 느낀 절망감에 내 전체가 부정당한 기분이 들고는 했다.

그럼 그때까지 겨우겨우 쌓아 올렸던 자존감이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무조건 잘못된 것이고, 마치 내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어진 것 같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거절감을 느끼는 게 너무 두려워서 나는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만 온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거슬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고, 밉보이기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 주관을 가지고 나만의 색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기보다는, 흉내쟁이처럼 상대방의 색을 파악해서 그 색을 내게 입히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내 모든 초점이 그에게 향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은 반응에도 나는 크게 상처를 받고는 했다.

그것은 더 큰 거절감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이유 없이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거절감을 두려워하는 나의 심리 깊숙한 곳에는 모두가 나를 좋아해야만 한다는, 그 누구도 나를 미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때로는 누군가로부터 거절감을 느끼면 ‘그럼, 그렇지.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자기혐오에 빠지고는 했는데 말이다.


상반되는 두 생각이 내 안에 공존했다.


그때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타인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오롯이 내 안에서 비롯되는 튼튼한 자존감과 타인은 누구든지 나를 싫어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뻔하디 뻔한 말이지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을 연습해야 했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만 모든 신경을 쏟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을 연습했다.

어떤 사실을 사람들은 각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듯이, 사람들은 나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단 사람을 만나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전에는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신경을 쏟느라 초조했고, 또는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불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결국 그 초조함과 불편함은 나로 인해 깊고 오래가는 관계를 맺도록 이끌고 간 게 아니라 회피하도록 만들었다.


나 혼자서 타인에게 나를 싫어하거나 마음에 안 들어할 수도 있는 자유를 선물하고 나니, 오히려 내가 자유롭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나를 조금이라도 탐탁지 않게 여기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편안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타인이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으로 관계를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관계에도 회색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에게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되어도 조금 불편해도 좋은 부분이 있는 사람이나, 어떤 부분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 정도만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적당한 친밀감이 더 힘이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신도 아니고, 내가 뭔 짓을 해도 그 사람의 생각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래, 나에게 우울증이 있어서 아니면 내 타고난 성향 때문에 나는 미움받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면 나의 외모 때문에 나는 외면받던 게 아니었다.


거절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나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던 것이었다.

내가 반사회적인 성격이라서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던 게 아니었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 목을 매고 있던 나의 태도가, 그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던 나의 반응이 그들을 부담스럽고 지치게 만들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인기 많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다수의 인정을 받는 인싸가 되지 못하고 소수의 관심만 받는 아싸가 되어도 괜찮다.

나를 싫어하거나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해도 괜찮다.


이제 타인에 의해 내 가치가 결정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나는 그들의 평가 없이도, 이미 존재 자체로 귀한 사람이기에 괜찮다.

타인이 어떤 평가로 내게 꼬리표를 붙이려 해도 내가 떼어내면 그만이기에 나를 향한 그들의 가벼운 거절이 나의 묵직한 존재를 부정하지 못한다.

거절감 때문에 조금 기분은 나쁠 수는 있겠지만, 먼지 묻은 것은 툭툭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으로 사람을 진실되게 대하며, 그 진실된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없다한들, 뭐 어떠한가?

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즐겁게 삶을 살아가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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