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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Nov 15. 2020

복잡하고도 간단한 오해

툭 던진 말 한마디, 시선 하나, 그리고 표정 하나에 오해가 피어오른다.

상대방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 묻기 뭐할 정도로 사소한 것이라 그 순간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조각조각 주어진 사실들을 모으고 그 중간에 빈 공간은 나의 상상력과 추측으로 채워간다.

그것들이 사실 확인이 전혀 안 된, 날 것의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확신하기까지에 이른다.


하나의 작은 씨앗으로 인해 깊게 뿌리내린 오해는 내 생각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내 생각을 좀 먹고 나를 괴롭게 만든다.

이쯤 되면 당사자에게 사실 확인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또 뒤늦게라고 묻기에는 내가 치졸한 것 같다.


깊게 뿌리내린 오해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옅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고 그 안에 뒤섞인 나의 추측이 더 강하게 힘을 발휘한다.

그럼 나는 더 괴로워진다.


이게 스스로를 무의미하게 괴롭게 하는 미련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번 각인된 오해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되려 짙어지는 느낌이 든다.


괴로움이 극에 달하다 보면 결국 관계를 포기하게 되거나, 아니면 자존심 세우는 걸 포기하게 된다.

관계를 통째로 포기하는 게 싫어서 자존심을 포기하고 결국 ‘나는 이런 작은 것까지 신경 쓰는 치졸한 인간입니다’라고 항복 선언을 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그렇게 느껴진다.


나만 관계에 매달리는 것 같고, 나만 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하는 사람처럼 비치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그런데 당사자에게 사실 확인을 하는 순간 주어지는 자유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사실 그 당시에 이렇게 느꼈어’라고 말했을 때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하거나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놀라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 오해로 인해 나락까지 떨어졌던 마음이 조금 회복된다.

진솔한 모습으로 대답하는 상대의 모습에 긴 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던 것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마치 쇠로 된 무거운 족쇄를 차고 있다가 그 차꼬를 상대방이 풀어준 느낌이다.


힘들어했던 긴 시간이 무색하게도 순간적으로 사실 확인이 끝나고 나서의 기분이란.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있던 죄수가 자유를 찾은 기분이다.

끝도 없이 펼쳐지던 오해의 향연이 드디어 깔끔하게 싹둑 잘린다.


나 혼자 생각할 때는 너무 복잡했는데, 의외로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은 간단하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내가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용기.

그것뿐이다.


순간의 용기를 냄으로써 오해로 인한 걱정을 모두 떨치고 두발 편히 뻗고 잘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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