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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Nov 28. 2020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뻔하디 뻔한 말

죽을 만큼 괴롭다.

불이 꺼진 천장을 보고 있자면, 나는 왜 사나라는 물음부터 시작해 결국 내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떠오른다.

내가 왜 이 세상에서 쓰레기 같은 존재인지에 관한 이유만 수만 가지 떠오른다.


종종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까에 대한 고민도 한다.


죽음 너머에 마주하게 될 내세의 삶 따위에는 관심 없다.

그저 숨을 마시고 내쉴 때마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마음의 고통이 속히 끝나기를 바랄 뿐.

이 고통이 끝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내 목숨이라 할 지라도.


수많은 심리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고, 나 스스로도 수없이 노력을 했다.

이 지긋지긋한 늪에서 몸부림이라도 쳐보기 위해서.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조금 더 나아져보기 위해서.

그런데 차도는 없고, 오히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럴수록 나는 더 무기력해져 간다.

죽음을 바라는 마음은 더 짙어져 간다.


이곳저곳에서 뻔하디 뻔한 말을 듣는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해결해 준다’.


분명 나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내고 지금은 활짝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 해주는 조언인데, 왜 이리 마음에 와 닿지 않을까.

하지만 이 뻔하디 뻔한 말에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걸어보기로 한다.


나아지려 애를 쓰는 걸 멈췄다.

그냥 내키는 대로 몇 년을 버텼다.

어떤 이는 그 시간을 ‘버렸다’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에 도움될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거창한 꿈 없이 나 하나 먹고 살 정도만 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오늘을 살아내는 것만 생각했다.


1년, 2년.... 그리고 더 긴 시간이 흘렀다.

마음의 변화는 한순간 찾아와 나를 통째로 뒤집어 놓은 게 아니었다.

짜잔 하고 나를 고쳐줄 치료법은 없었다.


그저 하루는 침대에만 누워 있는 걸 그만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산책을 나가보았고,

하루는 굶지 않고 나에게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주기로 했고,

하루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했다.


무력감에 휘둘려서 출근하는 걸 피하지 않고 무거운 몸을 이끌어 집을 나섰고,

아무것도 안 하기를 택하기보다는 웃긴 예능을 하나 봤고,

혼자 있기보다 사람을 마주하고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느리게 몇 년에 걸쳐 나는 짙은 어둠에서 빠져나왔다.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있을 때만 해도 다시는, 절대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행복과 우울의 비율이 반반 정도가 되었다.

오히려 지금은 밤에 잠이 들기 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일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면 행복이 끝날 것만 같아서 죽는 게 한편으로는 두려워졌다.


거창한 변화는 없었다.

사회적으로 보자면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태, 아니 오히려 퇴보한 상태다.

치열하게 살지 않았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나의 몸을 맡겼고 나는 이전보다 나이를 먹었다.

새로 도전하기에는 꽤나 늦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삶이 꽤 괜찮다 느낀다.


누군가 보기에 내가 시간을 허비했다 할 수 있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행복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나는 큰 보람을 느끼고 내가 꽤나 자랑스럽다.

넘어졌던 나를 스스로 일으켰기 때문에 나는 만족하고, 내가 한층 더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나같이 나약한 인간이 지나온 시간이라면 나보다 더 강하고 아름다운 당신도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당장 숨구멍이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이 아픔이 가시지 않더라도 괜찮다.

당신이 아픈 게 괜찮다는 게 아니다.

당신이 아픈 것은 분명 큰 일이고, 나도 당장 해결이 되어 당신이 자유를 얻고 훨훨 날길 바란다.

하지만 당장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는 밝은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홀로 흐느끼며 괴로워하던 날들이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행복한 나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냥 판타지 소설에 나온 인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듯이, 그저 허황된 말이라고 생각되어도 조금 믿고 내일을 살아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일이 쌓이고 쌓여 몇 년이 지나 당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당신이 웃는 모습을 나는 보고 싶다.

그리고 ‘그때 안 죽고 살아있길 잘했다’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당신의 찬란한 날을 나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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